[이두수 작가]
뒤돌아보니 내가 건설노동자로 살아온 것이 7년이나 되었다. 이 기간은 단순히 한 막노동꾼의 경력이 아니라 한국 건설업의 구조적 현실과 맞닿아 있는 궤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첫 발걸음 – ‘노가다판’이라는 세계
현장에 들어선 첫날, 나는 ‘노가다’라는 단어가 왜 이렇게 무겁게 쓰이는지를 곧 알게 되었다. 건설노동에는 처음부터 정규직도 장기고용도 없었다. 아침마다 노무시장에서 혹은 인력 소개소를 통해 노동을 팔고. 공사가 끝나면 곧바로 해산되는 삶.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건설업의 출발부터 이어져온 구조였다.
빨리빨리 문화와 안전의 외주화
‘빨리빨리 문화’는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대표적인 집단적 행동 양식으로, 그 형성 배경은 1960~1970년대 압축적 고도성장과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정책에서 기인한다. 당시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전방위적 산업화·근대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빠른 실행과 단기적 성과, 목표 달성을 사회 전반에 강하게 요구했다. 기업과 현장, 국민 모두가 “계획에 맞춰 빨리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생산성과 속도를 최우선 가치로 삼게 되었고 이는 공사, 제조, 수출, 도시 인프라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 같은 분위기는 개별 현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구호로 확산됐다. 공무원, 기업인, 현장 노동자, 시민 모두가 신속 대응과 단기 목표 달성, 업무 효율화를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습관처럼 실천하게 되었고, 품질이나 안전보다 ‘빨리 처리하는 것’이 더 중요한 풍토가 자리 잡았다. 이는 한국 특유의 동원체제와 맞물려 모두가 한꺼번에 빠르게 움직여 단기간에 합심 완성하는 분위기를 강화했고,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빨리빨리’가 내면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빨리빨리 문화는 산업현장뿐만 아니라 행정, 서비스, 식당, 병원 등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되며 사회적 효율성과 경쟁력, 위기 대응력 등 장점도 만들어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품질 저하, 스트레스, 안전 문제, 소통 단절 등 부정적 측면도 낳았다. 결국 오늘날 빨리빨리 문화는 한국 산업의 성장 동력과 더불어 한국인의 사회적 습관의 내면화라고 하는 하나의 아비투스가 되었다. 이러한 속도 중심의 문화는 필연적으로 노동자를 장기적으로 육성할 장인(匠人)이 아닌 필요할 때 쓰고 해산하는 ‘부품’으로 취급하는 구조를 고착화시켰다.
성찰의 시간 – 개인에서 역사로
노동의 무게가 때로는 나를 지치게 했지만 동시에 나는 그 길 위에서 질문을 품게 되었다. 왜 건설노동자는 늘 불안정해야 하는가, 왜 우리의 숙련과 땀은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는가. 이 질문을 붙잡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생각을 이어가면서 나는 깨달았다. 나의 체험은 결코 개인의 고생담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 건설노동자의 집단적 역사와 맞닿아 있으며 동시에 노동의 가치와 존엄을 되찾기 위한 목소리이기도 하다. 이제 건설노동자는 국가 성장의 그림자 속에서 묻힌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서술하고 미래를 제안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누가 건설업에 뛰어드는가.
건설업에 누구나 쉽게 진입할 수 있다는 인식은 실제로 현장과 사회에 넓게 퍼져 있다. 실제 건설업은 '정규 교육, 전문 자격, 경력' 없이도 ‘일용직’이나 ‘기능공 보조’ 등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타 직종에 비해 진입장벽이 매우 낮은 대표적 산업이다. 대부분 현장 근로자는 특별한 자격증이 없더라도 단기·일용직으로 고용된다. 대규모, 단기 현장에 수시로 많은 인력이 필요해 때로는 신분, 경력, 나이 등 제한도 크게 없다.
건설업에는 여러 직업에서 실패를 경험했거나 진로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일단 돈을 벌기 위해’ 혹은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가족의 생계와 생활비 등 긴급한 경제적 필요에 의해 빠르게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건설 현장이 선택되는 것이다. 그만큼 건설노동에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 '고등교육이 필요 없는 생계형 직업' '육체노동=비숙련 노동'이라는 뿌리 깊은 이미지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진입장벽이 낮다고 해서 능력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반복 경험과 현장 숙련, 팀장·기능공의 암묵지(현장기술) 전수, 안전 및 책임의식이 중요하다. 일정 기술력, 자격증(기능사, 장비자격 등)이 있으면 더 높은 임금과 안정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인식도 점차 확산 중이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 건설업에 진입할 때와 실제로 몸을 담고 난 후 느끼는 점이 크게 다르다. '할 일이 없어 시작했다'는 출발점도 현장에서의 반복된 경험·관계·자율성·자기 성장 등 삶의 다양한 ‘참 뜻’을 발견하는 계기로 전환된다. 육체적인 노동, 동료와 협업, 직접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경험은 다른 사무·지식노동과 다른 성취감, 즉각적인 피드백의 특성을 제공한다. 건설의 결과물이 눈에 보이게 남으면서 '나 역시 사회를 만들고 구축하는 과정에 기여한다'는 자기 가치와 의미를 느끼게 된다. 새로운 분야에서 일하며 예기치 않게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깨달을 때가 많다. 생존·협력·숙련·책임의 과정이 곧 삶의 깊은 성찰로 이어지는 것이다.
국제개발협력, 사무, 연구,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경력을 쌓다가 건설업으로 이동한 사람들도 많다. 그러한 이직은 단순 ‘생계 수단의 이동’이 아니라 사회 변화와 개인 성장의 새로운 장을 여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아무나 해도 되는 일인가
처음에는 '건설일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 현장에 뛰어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건설일은 ‘아무나’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되는 작업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진입장벽은 낮지만 현장은 높은 전문성, 숙련, 책임, 협동, 안전의식을 요구한다. 겉보기엔 '단순한 육체노동' 같아도 실제로는 각종 장비 운용, 복잡한 단계별 협업, 공정 이해, 작업 순서의 원리, 현장 규칙 준수, 위험 예측 등 다양한 숙련이 필수다.
안전은 단순히 간단한 장비와 헬멧 착용처럼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현장 위험을 체감·예측하고, 동료와 협력해 예방 조치를 실행하며, 작은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음을 항상 인식하는 깊은 책임감과 숙련이 필요하다. 미숙련자나 경험 없는 사람, 조심성이 없거나 안전의식이 낮은 사람이 투입되면 본인은 물론 전체 현장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그래서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건설은 생명을 다루는 ‘위험 산업’이기 때문에 아무나, 아무렇게나, '그저 돈 때문에' 투입된 미숙련자보다는 근본적 책임감과 안전의식이 갖춰진 사람이 일을 해야 하며 이에 대한 체계적 교육과 현장 적응, 반복 실습, 숙련자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아무나, 아무 때나 가능한 일은 노동력의 대체 가능성과 저임금 구조에 놓이게 되고 사회적으로도 '일시적 생계 수단, 비숙련 일거리'로 취급받다 보니 기술 축적, 개인의 성장, 장기적 비전 등 고유의 발전 가능성이 억제된다.
건설업이 지금까지 '누구나, 아무 때나 가능'한 구조로 유지되어왔지만 최근에는 숙련, 자격, 안전교육, 직업의식, 공동체적 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산업안전, 기술혁신, 인적 자본 형성, 직업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핵심 조건이 될 것이다.
절차탁마의 의미
‘절차탁마’는 원래 구슬(玉)을 만드는 전통 공정, 즉 '자르고, 깎고, 쪼고, 가는' 물리적 노동의 반복과 숙련을 뜻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학문·인격·지식인을 의미하는 '추상적 완성과 자기 연마'의 비유적 용어로 쓰이면서 노동의 실제 과정과 그 의미는 거리가 먼 말이 되어버렸다.
실제 노동자들은 매일 ‘구슬을 깎는’ 자기 손의 행위와 과정을 반복하지만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내가 만드는 결과의 사회적 가치, 인격, 공동체의미는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자기 행위의 주체성, 즉 ‘내가 의미를 만들고 있다는 감각’ 대신 ‘수동적 노동력’으로 머무르는 현실이 만들어진다.
절차탁마(노동의 반복과 노력)는 학문적 의미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노동 자체가 사회와 나를 빚고, 내가 주체가 될 수 있는 통로임을 스스로 자각할 때 행위의 결과뿐 아니라 과정, 내면의 성장, 자부심, 책임감 모두를 온전히 성취할 수 있게 된다.
'막노동꾼'을 넘어 '전문건설인'으로
이러한 노동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연마한다는 자각(절차탁마)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막노동꾼'을 넘어 '전문건설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아무나,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막노동꾼'이라고 낮게 부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 건설노동은 기술, 역사, 창조, 협력, 책임, 성취가 담긴 매우 복합적이고 전문화된 작업이다. 스스로를 '막노동꾼'이 아닌 ‘전문건설인’으로 인식하고 '내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만든다, 공동체의 기반을 만든다'는 자부심을 가질 때 직업의 가치와 삶의 성장, 안전의식까지 모두 한 단계 높아질 수 있다.
매일, 어떤 기술을 익히고, 오늘 새롭게 배운 것을 내일의 작업에 적용하며, 삶의 한 부분이 '역사적 건축물'로 남게 된다는 의미를 느낄 때 단순 노동이 아니라 '남겨지는 삶, 잊히지 않는 흔적'으로 승화될 것이다. 이런 고민이 바로 노동자의 전문성을 높이고, 성장의 토대가 된다.
'나는 막노동꾼이 아니라 역사의 장인을 꿈꾼다.' 이 한 문장이 나를 바꾸고, 우리의 현장을 바꾸고, 세상의 시선을 바꿀 수 있다.
필자 주요 이력
idoosoo@naver.com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왔다. 현재는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에서 빈곤지역 교육지원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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