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전날 미국 워싱턴DC로 출국했던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4일 새벽 귀국한다. 두 사람은 22일(현지시간) 도착 직후 상무부 청사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과 약 두 시간 동안 관세 관련 논의를 진행한 뒤 귀국길에 올랐다.
러트닉 장관과의 회담에서는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방안에 대한 세부 조율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김용범 실장은 협상 후 기자들과 만나 “남아 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며 “일부 진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말 미국의 상호관세와 자동차·자동차 부품 품목 관세를 15%로 낮추고, 한국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에 나서는 내용으로 협상의 큰 틀을 매듭지었다. 다만 미국이 전액 현금 투자를 요구하면서 구체적 협상안 마련에 난항을 겪어왔다.
최근 협상이 속도를 내는 것을 두고 미국이 전액 현금 투자 요구를 일부 철회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그동안 한국이 강조해온 ‘무제한 통화스와프’ 주장이 한풀 꺾인 점도 이를 방증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공개된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통화스와프보다는 투자 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한국 외환시장의 어려움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내부적으로 대응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또 “통화스와프가 필요할지,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는 전적으로 투자가 어떻게 구성될지에 달렸다”며 “아예 필요 없을 수도 있고, 소규모로 체결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우리 외환시장이 견딜 만큼의 직접 투자·대출·보증 등이 포함된다면 별도의 통화스와프 체결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구체적 방안을 두고는 양측의 견해차가 여전하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김 실장 역시 잔여 쟁점에 대해 “논의를 더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핵심 쟁점은 직접 투자 비중과 투자 기간으로, 한국은 5% 내외의 직접 투자를 주장해왔지만 미국 측은 절반 이상의 현금 비중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이 한 해 조달할 수 있는 외환보유액은 최대 200억 달러 수준이다. 이에 미국의 요구대로 거액의 자금을 투자하려면 분할 지급이 불가피하다. 미국도 분할 투자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분할 지급 기간이다. 사실상 협상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동안 ‘선불’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설령 트럼프 대통령이 분할 지급을 받아들이더라도 자신의 임기인 2029년 1월 이전에 투자가 완료되길 바랄 가능성이 높다.
이에 시선은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으로 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방한해 이 대통령과 회담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각국과의 관세 협상을 주요 치적으로 삼고 있는 만큼, 한·미 정상회담에서 협상이 최종 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CNN 인터뷰에서 APEC 정상회의 계기로 한·미 관세 협상을 마무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조정·교정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결과에 결국 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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