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춘구 언론인]
우리는 여러 단계의 공동체 생활을 한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얘기한 대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의미는 두루 이해하는 바와 같이 공동체 생활을 하며 그를 통해 자신의 성장을 도모하고 종족 보존을 하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사회는 가족과 마을, 읍·면, 시·군, 도, 국가 등 여러 단계 공동체로 이뤄지며, 그 안에서 계와 두레, 절과 교회, 학교와 기업 등 직능단체가 지속가능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우리나라의 마을공동체, 읍·면 공동체가 주민자치를 바탕으로 민주적으로 작동해야 하는 당위성과 주민이 주권자가 되는 주민주권주의 원리를 살피는데 초점을 맞춘다.
주민자치제라 함은 정치적 의미의 지방자치라고도 하며, 직업공무원이 아닌 지역주민(명예직 공무원)이 국가의 지방행정청에 참여해 그 지역사회의 정치와 행정을 자신의 책임하에 처리하는 자치제를 말한다. 이러한 의미의 지방자치제는 영국과 미국에서 발달했으며, 행정에 참여하는 지역주민은 명예직 공무원으로서 보수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비해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단체자치제가 발달돼 왔다. 단체자치제는 일정한 지역을 기초로 하는 지방자치단체가 국가 밑에서 국가로부터 독립된 법인격과 자치권을 인정받아 국가로부터 독립한 단체자치의 기관을 가지고 자주적으로 단체의 의사를 결정하며, 그 사무를 처리하는 지방자치제를 말한다. 단체자치는 법적 능력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공공업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법률적 의미의 지방자치라고도 한다.
단체자치에서 주민자치로 중심축의 이동
우리의 지방자치는 단체자치형을 주로 하며, 주민자치형이 보완된 혼합형이라 보는 것이 다수설이다. 헌법재판소는 현행 헌법상 지방자치제도는 대의제 또는 대표제 지방자치를 보장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공화국별로 지방자치제를 살피면 다음과 같다. 지방자치에 관한 규정은 제1공화국 건국헌법에서부터 존재했으나, 1952년에야 최초의 지방의회가 구성됐다. 제2공화국에서는 시·읍·면장까지 주민이 직접 선거했으나 단명에 그쳤다. 제3공화국 제5차 개정헌법 부칙은 지방의회의 구성시기를 법률로 정하도록 했으나, 구성하지 못했다. 제4공화국 제7차 개정헌법에서 구성을 조국의 평화통일시까지 미루어 사실상 지방자치를 폐지했다. 제5공화국 제8차 개정헌법에서는 지방의회의 구성을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를 감안해 순차적으로 하되 법률로 규정하도록 했으나 지방의회가 구성되지 않았다.
제6공화국으로 들어서서 1991년부터 지방의회 선거를 실시한데 이어, 1995년부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 연혁으로 볼 때 읍·면과 마을공동체 단위에서의 주민자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읍·면장은 시장·군수에 의해 임명되고 있다. 1998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공무원의 정원을 축소하는 행정 개혁 과정에서 읍·면·동사무소별로 주민자치위원회를 구성 운영했다. 2019년 12월 기준으로 총 3, 491개의 읍·면·동 중 3,119개 읍·면·동에 주민자치센터가 설치돼 있고, 주민자치위원은 6만 8177명이다. 주민자치위원회는 위원 구성에서 공정성과 민주성,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주민자치위원회의 역할과 자율성이 미흡하고, 주민자치위원들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점 등이 지적된다. 이와 같은 한계와 문제점을 인정하면서 주민자치위원회는 점차 주민자치회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
이재명정부, 주민자치권 확대·자치분권 역량 제고
이재명정부는 그동안 주민자치제도상 문제점을 진단하고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자치분권 역량 제고’를 123대 국정과제 중 52번 과제로 채택했다. 과제 목표는 주민자치 활성화이다. 주요 내용은 주민자치권 확대이다. 구체적으로 주민자치회 법적 근거 마련, 주민 선택 읍·면·동장 임용제 시범 실시, 주민소환제 개선, 주민자치 강화를 위한 종합계획 마련 등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먼저 「지방분권균형발전법」 제40조 제6항을 개정해 주민자치회를 명실상부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읍·면·동장은 현재 공무원(행정직)으로 임명되고 있지만 주민 추천 또는 직접 선출 방식을 시범적으로 도입하겠다는 구상이다. 읍·면·동장 임명 방식이 바뀌면 주민 대표성이 강화되고, 책임 행정이 구현될 것으로 기대한다. 주민소환제의 발의 요건을 완화하고 투표율 기준을 조정하는 등 지방자치단체장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중앙-지방-주민 간 권한 재배분 로드맵을 수립하고 재정 지원, 교육·역량 강화, 디지털 기반 참여 확대 등 주민자치 강화를 위한 종합계획도 세울 예정이다. 이재명정부의 대안들은 속도를 조절하는 점진주의적 입장 같다. 보다 근본적으로 주민자치 제도를 확립하고 시행하는 용기를 보여야 할 것이다.
타운홀미팅과 연계한 주민자치회 발전 대안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하는 타운홀미팅은 주민과 직접 소통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주민자치회의 제도적 확립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 타운홀미팅을 주민자치회의 제도적 플랫폼으로 확대하는 연계 전략이 필요하다. 주민자치회가 정기적으로 타운홀미팅을 개최하고, 대통령·지자체장과 연결하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것이다. 주민자치회에서 발굴한 안건을 타운홀미팅에서 공개 토론하고 정부 정책에 반영하는 안도 추진될 수 있다. 즉 의제 발굴-논의-정책화 과정의 일원화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주민자치회 안건을 공개·토론하며 대통령의 타운홀미팅과 연계하는 디지털 타운홀 도입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타운홀미팅에서 논의된 안건과 성과를 전국 주민자치회 네트워크와 공유하는 성과 공유·확산이 따라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의 지금 타운홀미팅은 ‘국가 단위 주민자치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것이 제도화가 되면 주민자치회와 대통령 소통 창구가 연결되고, 풀뿌리-중앙 연계 거버넌스가 완성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재구성
이재명정부의 주민자치권 확대 정책은 단순한 지방행정의 효율성 제고를 넘어선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를 다시 세우는 과정이자, 중앙집권적 정치 구조를 분권적 구조로 전환하는 시도다. 물론 제도적 미비, 주민 인식 부족, 정치적 리스크 등 많은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제도의 안정성, 참여 확대, 재정 자율성, 책임성 확보라는 조건이 충족된다면, 주민자치회는 ‘민주주의의 학교’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타운홀미팅과 주민자치회의 연결은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열쇠다. 풀뿌리에서 시작한 주민의 목소리가 지방정부를 거쳐 대통령에게 도달하고, 다시 국가 정책으로 환류되는 구조가 마련된다면, 한국형 풀뿌리 민주주의는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제도와 참여, 책임이 함께할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우리 민족의 오래된 전통인 계와 두레, 향약, 집강소 등의 기능을 보면 마을공동체 주민자치회를 중심으로 주민자치가 실시되면 효율성을 높이고 마을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편으로 면 지역의 인구소멸과 지역소멸 현상을 고려한다면 면 단위의 주민자치회 형태가 유용한 제도가 될 것이다.
요컨대 국민주권정부는 주민주권공동체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마을공동체에서부터 공동체의 일반의지를 확인하고 이를 실천해간다면 그 자체로 주민주권공동체를 확립하는 것이다. 주민주권공동체가 전국적으로 통합되고 국민의 일반의지가 확인되고 실천된다면 국민주권정부는 튼실해질 것이다. 더욱이 이재명대통령이 선구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타운홀미팅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주민자치는 더욱 더 진화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세계 민주주의를 선도하는 선진 민주국가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이춘구 필자 주요 약력
△전 KBS 보도본부 기자△국민연금공단 감사△전 한국감사협회 부회장△전 한러대화(KRD) 언론사회분과위원회 위원△전 전라북도국제교류센터 전문 자문위원△전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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