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중국에 대한 조급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1일 로이터,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2030년까지 첨단반도체 생산량을 대만에 이은 세계 2위로 끌어올리고 2나노(nm) 파운드리 공정을 접수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불과 4년여 남은 기간 동안 목표 달성을 위해 더욱 기상천외한 방법도 동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 상무부는 현재 미국에 투자를 진행 중인 반도체 기업에게 보조금을 주는 반대급부로 지분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인텔에 109억 달러(약 15조원)를 지원하는 대신 전체 가치의 10%에 해당하는 지분을 제공할 것을 요구 중이다. 이를 마이크론과 해외 기업인 삼성전자, TSMC 등으로 확대하겠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말 확정된 삼성전자 보조금은 47억5000만 달러(약 6조6415억원)로, 시가총액 대비 약 1.6% 수준이다. 이를 지분으로 달라는 주장이다.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현실화하면 한국 반도체 기업의 진을 빼고 있는 고무줄 관세와는 차원이 다른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의결권 없는 주식'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2030년까지 반도체 패권을 쥐어야 중국에 밀리지 않는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미국은 반도체 설계는 최강국이지만 제조는 취약해 외국 기업을 자국 내로 끌어오고 있다"며 "세계 반도체 제조 능력을 미국 정부에서 컨트롤하기를 원하고, 또 실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2030년까지 세계 최첨단 반도체의 20%를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총 527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반도체법(칩스법)을 시행했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삼성전자, TSMC 등 유력 기업의 미국 내 공장 구축이 필수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 정부에서 확정된 보조금을 유인책으로 해외 기업의 공장을 유치하고선 이제 와서 지분으로 되돌려받겠다는 심산이다.
최첨단 파운드리인 2나노 공정에 대한 욕구도 궤를 같이한다. 미국은 삼성전자가 테일러 공장에서 2나노 반도체 양산을 이끈 데 이어 TSMC에도 압박을 가하고 있다. 기술력에서 뒤처졌으나 18A(1.8나노급) 공정에 집중하는 인텔에 대한 지배력도 강화하며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
이 교수는 "미국이 반도체에 집착하는 이유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중국을 견제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중국 반도체가 설계나 제조 측면에서 미국을 능가하는 시점을 2030년 경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반도체 기업들로서는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지만 큰 틀에서의 미국 전략을 파악하고 기술력을 바탕으로 실익을 챙기는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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