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시마 유조(川島雄三, 1918~1963)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천재라 불린 감독이다. 그는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을 앓으면서도 1944년 데뷔 이후 19년 동안 51편의 영화를 찍었고 마흔다섯에 숨졌다. 쇼치쿠와 닛카츠, 도호, 다이에이를 오가며 희극과 풍속영화를 만들었고 나카히라 코우와 이마무라 쇼헤이, 우라야마 기리오 등이 그의 밑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다. 집 없이 도쿄의 여관을 전전하다 닛카츠 아파트에서 살았던 그가 즐겨 입에 올린 구절은 '사요나라만이 인생이다'였다. 이는 친구와의 이별을 앞두고 술잔을 권하며 읊은 당나라 시인 우무릉의 시 <권주>를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가 옮긴 말로, 인생은 이별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고향 무쓰시 도쿠겐지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이 구절이 새겨져 있다.
1918년 아오모리현 시모키타반도의 다나베초(현 무쓰시)에서 술 장사를 하던 집안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1930년 노헤지중학교에 들어갔고, 1935년 도쿄로 올라가 메이지대 전문부 문예과에 입학해 영화연구부에서 활동하다 쇼치쿠의 첫 조감독 공모를 통과해 1938년 오후나 촬영소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시마즈 야스지로와 오즈 야스지로, 기노시타 게이스케, 시부야 미노루 같은 감독 밑에서 조감독으로 일했고, 1943년에는 감독 시험을 수석으로 통과해 이듬해 오다 사쿠노스케 원작의 <돌아온 남자>로 데뷔했다.
데뷔작 <돌아온 남자>(1944)는 전시에 소집 해제된 군의관이 돌아온 직후 일주일을 그린 영화다. 오다 사쿠노스케가 각본을 맡았으며 전시에 만들어졌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밝은 분위기로 일관한 작품으로, 가와시마 영화 세계의 출발점이 됐다. 그는 이를 계기로 오다와 함께 '일본경조파'를 자칭했다. 경조는 가볍고 들떠 있다는 뜻으로, 그는 이 경박함을 일부러 내세웠다. 오다는 다자이 오사무, 사카구치 안고와 함께 무뢰파(전후 기성 질서에 반항한 작가들)로 불린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패전 뒤에도 쇼치쿠에서 주로 희극 장르 작품을 23편 만들었고, 1946년에는 일본 영화사상 최초의 키스신이라 평가받기도 하는 <쫓고 쫓기고>를 찍었다. 1954년 그는 제작을 재개한 닛카츠로 옮겼고 이듬해 <사랑의 수하물>(1955)을 내놨다. 후생대신(한국의 보건복지부 장관에 해당)이 국회에서 인구 증가를 막는 법안의 필요성을 호소하지만 정작 집에서는 아내가 임신하고 아들과 비서 사이에도 아이가 생기는 풍자 희극이다.
가와시마의 조감독 자리는 훗날 이름을 알린 감독들의 출발점이었다. 쇼치쿠 시절 노무라 요시타로에 이어 나카히라 코우가 수석 조감독을 맡았고, 닛카츠로 옮긴 후에는 이마무라 쇼헤이가 수석 조감독이 됐으며, 우라야마 기리오가 두 번째 조감독을 맡았다. 이마무라는 가와시마를 존경하는 선배이자 '나의 선생'이라 불렀고, 천재라고도 평했다. 그는 가와시마가 숨진 뒤 추모집 <사요나라만이 인생이다-영화감독 가와시마 유조의 생애>(1969)를 엮었다. 또한 1972년에는 요미우리TV의 여행 프로그램 <멀리 가고 싶다>의 한 편으로 가와시마의 고향 시모키타반도를 찾아가는 다큐멘터리 <멀리 가고 싶다-나의 시모키타>를 만들었다. 이 다큐에는 아오모리 사람들이 믿는 오소레산의 환생관이 담겼는데, 생명은 50년쯤 지나 환생하고 그전까지는 오소레산의 무녀 이타코의 몸을 빌려 뜻을 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가와시마는 1956년 도쿄 고토구에 있던 유곽 지대 스자키의 말기를 실제 로케이션으로 담은 <스자키 파라다이스>를 만들었다. 시바키 요시코의 소설이 원작으로, 미하시 다쓰야와 아라타마 미치요가 고향에서 도망치듯 나와 도쿄를 떠돌던 부부 요시지와 쓰타에로 나온다. 가진 돈이 60엔만 남은 날 쓰타에는 말없이 버스를 타고 스자키에 내리는데, 그곳은 쓰타에가 예전에 몸을 팔았던 유곽 지대다. 요시지는 "다리를 건너면 옛날의 너로 되돌아가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고, 부부는 다리를 건너지 않고 유곽 입구 선술집 '지구사'에 자리를 잡는다. 쓰타에는 선술집에서, 요시지는 근처 메밀국수집에서 일하지만 쓰타에가 부유한 라디오 상인의 눈에 들어 떠나면서 둘은 엇갈린다. 카메라 역시 끝내 다리를 건너지 않아 유곽 안쪽은 화면에 담기지 않는다. 이 유곽 지대는 영화가 나온 2년 뒤인 1958년 4월 매춘방지법이 시행되면서 70여 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사라졌다.
이듬해인 1957년 개봉한 <막말태양전>은 이마무라 쇼헤이, 다나카 게이이치와 함께 각본을 썼고 프랭키 사카이가 주연했다. 일본 전통 만담 라쿠고에서 소재를 가져온 희극으로, 에도 말기 시나가와 유곽에서 돈 없이 놀다 대금을 못 내 남아서 일하는 '이노코리' 신세가 된 사헤이지가 입담으로 유곽 사람들 사이를 헤쳐 가는 이야기다. 이시하라 유지로가 조슈 번(현 야마구치현) 출신 막부 말기 지사 다카스기 신사쿠를, 미나미다 요코와 히다리 사치코가 유녀를 연기했다. 이 작품은 1957년 일본 영화 전문지 키네마 준보 선정 베스트텐 4위에 올랐고, 영화인이 뽑은 일본 영화 올타임 베스트100에서도 1999년 5위, 2009년 4위를 기록했다.
가와시마는 영화 만들기를 오로지 생활을 위한 것이라고 여겨, 정말 찍고 싶은 작품이 아니면 저예산으로 손쉽게 끝냈다. 그러나 어느 정도 평가를 얻어 자유로워진 뒤에는 세부적인 것에 집착해 예산은 얼마가 들어도 좋다고 선언했고, 이 때문에 윗선과 다투는 일이 잦았다. <막말태양전>도 제작 과정에서 닛카츠 윗선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1957년 그는 도호 계열의 도쿄영화로 옮겨 <셋방>(1959) 등을 만들었다. 이부세 마스지의 소설 원작 <셋방>에서는 배우 가쓰라 고킨지가 '사요나라만이 인생이다'를 대사로 말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다이에이에서도 연출을 맡아 여배우 와카오 아야코와 <여자는 두 번 태어난다>(1961), <기러기 절>(1962), <정숙한 짐승>(1962) 세 편을 함께했다. <여자는 두 번 태어난다>는 도미타 쓰네오가 1959년 낸 소설 <고엔 일기>가 원작으로, 가와시마가 와카오 아야코를 '여자로 만들어 보이겠다'고 선언하고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와카오 아야코가 연기한 재주 없는 게이샤 고엔은 본능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천의무봉의 성격으로, 길에서 마주친 대학생 마키에게 연정을 품으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고독을 안고 살아간다.
<정숙한 짐승>은 신도 가네토가 각본을 쓴 블랙코미디다. 무대는 도쿄 하루미 단지의 한 아파트로, 이토 유노스케가 연기한 전직 해군 중령 아버지는 아들에게 회사 돈을 빼돌리게 하고 딸을 유명 작가의 첩으로 만들어 그 돈으로 산다. 야마오카 히사노가 아내를 맡았고, 이 가족과 얽히는 와카오 아야코는 여러 남자에게 돈을 대게 해 여관 개업 자금을 모으는 연예기획사 회계 직원으로 나온다. 카메라는 집 안을 벗어나지 않다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밖으로 나간다. 인물들은 쉴 새 없이 대사를 주고받으며 만담 같은 리듬을 만들고 그 사이사이에는 정적이 끼어든다. 창밖으로는 미군 전투기 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전후의 밑바닥을 겪은 가족은 '옛날로는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며 남의 돈을 뜯어서라도 지금의 생활을 지키려 한다.
그의 작품은 이마무라 쇼헤이의 작품과 함께 '중희극'으로 불린다. 가볍기만 한 웃음 대신 인간의 본성을 파고드는 묵직한 웃음을 뜻하는 말로, 이마무라가 경희극을 비틀어 만든 것이다. 같은 중희극이라도 이마무라가 이후 지방의 토착 사회로 관심을 옮겨 간 것과 달리 가와시마는 <스자키 파라다이스>와 <정숙한 짐승>에서 보듯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을 주로 주제로 삼았다. 또 오사카 출신의 친구 오다 사쿠노스케의 영향으로 데뷔작 <돌아온 남자>를 비롯해 <셋방> 등 오사카를 무대로 한 작품도 여러 편 만들었다.
앞서 언급했듯 그는 루게릭병을 앓았다. 입사 무렵 이미 병이 시작됐고 감독이 될 즈음에는 걸음걸이에도 장애가 생겼다고 한다. 병 때문에 매달 20종이 넘는 약에 직장인 월급만큼의 돈을 쏟아붓기도 했다. 그는 "이런 병을 안고 유명해진 사람은 나와 루스벨트 정도"라며 자조하곤 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중에도 밤마다 스태프와 어울려 술을 마셔 한 달 술값이 50만엔에 달했고, 조감독 월급이 만엔이던 시절에 5만엔짜리 수입 양복을 입고 다녔다고 한다.
그는 유작 <모 아니면 도>(1963) 개봉을 닷새 앞둔 1963년 6월 11일 도쿄 시바의 닛카츠 아파트 자기 방에서 급사했다. 직접 사인은 폐 질환 때문에 생기는 심장병인 폐성심이었다. 침상 곁에는 인터뷰가 실린 잡지 <주오코론>과 다음 작품으로 구상하던 <간세이태양전>을 위한 에도 풍속 자료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에도 시대 화가 도슈사이 샤라쿠를 주인공으로 삼으려던 이 영화는 만들어지지 못했지만, 샤라쿠 역을 맡을 예정이었던 프랭키 사카이가 32년 뒤인 1995년 기획 총지휘를 맡아 시노다 마사히로 감독의 영화 <샤라쿠>로 구상을 이었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부터 가와시마 특집이 이어졌다. 2007년 6~7월에는 도쿄국립근대미술관 필름센터가 <막말태양전> 발표 50년을 맞아 센터 첫 가와시마 특집전을 열었다. '영화감독 가와시마 유조'전에서는 가와시마 특집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39편이 상영됐다. 탄생 100주년인 2018년에는 닛카츠가 기념 프로젝트를 꾸리고 위성방송 채널 '위성극장'이 현존하는 50편을 18개월에 걸쳐 방영했으며, 2019년 말 오사카 시네누보와 2023년 도쿄 라퓨타 아사가야에서도 특집 상영이 이어졌다.
국내에서는 2014년 4월 19일부터 27일까지 한국영상자료원이 일본국제교류기금, 일본 국립필름센터와 함께 서울 상암동 시네마테크KOFA에서 '가와시마 유조 감독전'을 열었다. 데뷔작 <돌아온 남자>와 <스자키 파라다이스>, <막말태양전> 등 9편이 무료로 상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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