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 (77) 천리 밖에서 보내온 거위털 - 천리아모(千里鵝毛)

유재혁 칼럼니스트
[유재혁 칼럼니스트]



일찌기 경험해 보지 못한 여름이었다. 거리로 나서면 온 세상이 펄펄 끓는 가마솥 같았고 집에 들어오면 에어컨 리모콘부터 허겁지겁 찾아야 했다.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더운 팔월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올여름이 가장 덜 더운 여름이 될 거라고들 하니 기후 때문에라도 남은 생이 참 고달프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대급 폭염에 '처서 매직'도 신통력을 잃었고 백로 지나 추분을 코앞에 두고서야 아침저녁으로 선선함이 느껴진다. 기세등등한 여름의 위세에 눌려 가을의 존재감은 갈수록 쪼그라든다.

더위와 씨름하는 사이 추석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이제 곧 방송사들은 귀성 행렬을 화면에 띄우고 민족의 대이동이니 뭐니 하면서 호들갑을 떨 것이다. 추석은 본시 '농민들의 명절'이라 예전 서울 사대문 안에 살던 사람들은 추석을 쇠지 않았다고 한다. 가을걷이를 하고 그 수확을 조상과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게 추석이었기 때문이란다. 김훈의 말이다. 김영하가 산문집 《보다ㆍseeㆍ見》에 인용했다. 그렇다면 추석은 언제부터 '국민적 명절'이 되었을까? 그 계기를 김영하는 70년대 산업화에서 찾았다. 일자리를 찾아 대거 서울로 유입된 전국의 청춘남녀들이 추석을 맞아 양손에 선물 보따리 가득 들고 고향으로 돌아가면서부터란다. 지명도 높은 작가들의 말이니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닐 것이다.

여하튼 추석은 국민적 명절이 되었다. 비록 요즘 젊은이들 상당수가 취직, 결혼 등 근황에 대한 과도한 관심으로 야기되는 이른바 '명절 스트레스' 때문에 고향에 가기를 꺼리고 공항 출국장이 북새통을 이룰 만큼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귀성열차표는 여전히 구하기 어렵고 마이카 시대의 도래 이후 고속도로는 으레 귀성차량들로 호된 몸살을 앓는다. 짧은 연휴가 끝날 새라 서둘러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명절 귀성은 고달플지언정 가슴 설레는 여정이다. 평생 가져볼 수 없는 그 설렘이 나는 부럽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서울은 '꿈엔들 잊힐 리 없는' 고향과는 거리가 멀다. 얼룩빼기 황소가 게으른 울음을 울어대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을 건너본 기억도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아 있던 유년의 흔적도 재개발 열풍 속에 대부분 사라졌다. 한적한 시골에 며칠 가 있으면 서울의 복작거림이 살짝 그리워지긴 해도 서울로 돌아갈 때의 감회는 타 지역 출신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어쩌면 고향이란 태어난 곳이 아니라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곳인지도 모른다.

추석 즈음에는 나훈아의 '고향역'이 전파를 많이 탄다.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 첫 구절부터 괜시리 마음이 설렌다. 그러니 타향살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언젠가 동네 단골 미용실 원장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전남의 한 소도시가 고향인 원장이 그런 말 말라며 손사래를 친다. 처녀 시절, 명절 때마다 귀성열차표 사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고 어쩌다 운 좋게 입석표를 구해도 기쁨은 잠깐, 그 긴 시간을 바닥에 신문지 깔고 앉아 가야 했기에 설렘보다는 고생스러웠던 기억밖에 없단다. 그러면서도 이런 말을 덧붙인다. 열차 출발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좌석 승객들과 입석 승객들이 안면을 트고는 싸가지고 온 음식을 나눠먹으며 수다를 떨었다고. 감칠맛 나는 전라도 사투리로 왁자지껄하며 정을 나누었을 귀성열차의 훈훈한 풍경이 한눈에 그려진다. 비좁은 열차칸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말을 섞고 음식을 나누는 정서, 그 밑바탕에 흐르는 건 바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설렘 아니었을까? 

명절 귀성이 비단 우리만의 풍경은 아니다. 많은 풍속을 공유하는 이웃나라 중국도 명절 때면 고향으로 가기 위한 전쟁을 한바탕 치른다. 중국은 우리만큼 중추절, 즉 추석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지 귀성전쟁은 음력 설인 춘절(春節)에 집중된다. 개발 연대에 우리가 그러했듯 돈벌이를 위해 타지에 나와 있던 수억 명의 중국인들이 만원열차에 몸을 싣고 드넓은 대륙을 몇 날 며칠을 달려 고향으로 돌아간다. 

우리든 중국이든 귀성객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설렘으로 가득찬 들뜬 표정과 양 손 가득 들려 있는 선물 꾸러미다. 즐거워할 고향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선물 꾸러미가 아무리 크고 무거워도 마음은 새털처럼 가볍다. 현금을 선호하는 세태라지만 손에서 손으로 묵직하게 전해지는 선물의 충만감을 대체하긴 힘들다. 인기 선물 품목은 시대에 따라 변해 왔고 그 변천사는 나라 경제 수준과 궤를 같이 한다.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던 80년대, 회사에서 추석 선물로 나눠 준 큼지막한 설탕 한 통을 낑낑대며 집으로 들고간 기억이 선하다. 그 시절엔 설탕이 각 가정에서 환영받는 인기 품목이었다. 요즘은 어떤 선물이 대세일까?

선물을 비단 명절 때만 주고받는 건 아니다. 살다보면 선물을 해야 할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런데 이 선물하기가 은근히 까다롭다. 우선 너무 과하지도 않고 너무 소소하지도 않아야 무난하다. 받는 사람에게 필요 없는 선물은 피해야 하고 경우에 맞지 않는 선물은 최악이다. 중국에는 선물에도 금기(禁忌)가 많다. 배(梨)와 우산은 이별을 연상시킨다고 꺼리고, 시계는 '끝날 종(終)'과 발음이 같아 피한다. 그런가 하면 술이나 담배를 선물할 때는 보통 짝수로 한다. '좋은 일은 짝으로 온다(好事成雙)'고 믿기 때문이다. 선물을 주고받을 때도 금기와 예법을 세심하게 따지니 ‘선물하기도 하나의 학문’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그래서일까, 중국인들은 우리와 달리 선물과 예물을 구분하지 않고 '리우(禮物)'라고 한다. 

값나가거나 인기 있는 품목을 선물하는 것도 좋고 금기를 피하고 예법을 살피는 일도 필요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중요한 건 선물에 담긴 정성어린 마음일 것이다. 이를 잘 대변하는 성어가 '천리송아모(千里送鵝毛), 예경정의중(禮輕情意重)'이다. '천 리 밖에서 거위털을 보내왔으니 선물은 보잘것없으나 그 정성이 갸륵하다'란 뜻이다. 

한 지방 관리가 우연히 희귀한 백조(天鵝)를 손에 넣어 면백고(緬伯高)라는 심복을 시켜 황제에게 진상하기로 했다. 면백고가 면양호(沔陽湖)라는 호수에 이르렀을 때, 문득 흙먼지에 찌든 백조를 씻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물에 내려놓는 순간 백조가 날아가버렸다. 손에 깃털 한 올만 남긴 채. 황제의 처벌이 두려운 면백고가 즉흥시 한 수를 지었다.

"백조를 조정에 바치고자 수많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면양호에 이르러 그만 백조를 잃어버려 비통함을 금할 길이 없사옵니다.  천자께 고하옵나니 면백고를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선물은 가벼우나 사람의 정성은 무거우니 천리 밖에서 보내 온 백조의 깃털을 바치옵니다(禮輕人意重, 千里送鵝毛)."

감동한 황제가 죄를 묻지 않고 오히려 큰 상을 내렸다. 명나라 후기 문인 서위(徐渭)의《노사(路史)》에 실린 설화다. 이후 '천리송아모 예경정의중'은 선물은 마음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은 성어로 자리잡았다. 흔히 줄여서 '천리아모(千里鵝毛)'라고 한다.

중국 고사에서 거위털은 '가볍고 하찮은 것'을 상징하지만 오늘날엔 고급 방한용 패딩 재료로 대접받는다. 오리털로 만든 덕 다운보다 거위털로 만든 구스 다운이 가볍고 풍성하고 복원력이 좋아 더 비싸다. 과학 문명의 발달이 거위털 팔자를 바꿔놓았다. 그러나 선물의 값어치가 물건 자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세상살이의 이치엔 변함이 없다. 천리 길을 달려온 것은 거위털이 아니라 그 털에 실려 온 사람의 마음이었다. 그렇기에 보잘 것 없는 거위의 깃털이 '정성이 담긴 선물'이 되고 황제를 감동시킨 것이다. 

추석을 앞두고 두서없이 떠오르는 단상들을 추스르며 '고향역'을 다시 들어본다. "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 안고~ 눈 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고향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내 마음도 어딘가를 향해 달려간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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