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대의(大義)가 고수(高手)다
정치가 매일 아침 헤드라인을 만들어내는 나라가 있다. 불행하게도 그 나라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정치가 국민을 걱정해야 할 판에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기묘한 역전현상, 이것이 오늘 우리의 자화상이다. 여의도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진흙탕 싸움은 국민의 피로감만 쌓고,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만 갉아먹는다. 정치혐오는 높아지고 투표율은 낮아지는 이 악순환, 그 본질은 '꼼수'다.
노자(老子)는 “최고의 통치는 백성이 통치자가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편안히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정치 현실은 저자거리의 사람들이 지도자 이름을 낮춰 부르고, 거리에서 탄핵을 외치고, 밥상머리마다 정치 이야기로 싸운다. 이것은 정치의 실패가 아니라 문명의 퇴보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링컨을 기억하는 이유는 공화당 대통령이면서도 민주당 인사를 내각에 앉힌 '팀 오브 라이벌스(Team of Rivals)' 정신 때문이다. 자기 편만 챙기는 것이 권력을 지키는 길이라 착각하지만, 역사는 정반대를 가르친다. 내 편 열 명보다 상대편 한 명을 끌어안는 것이 지지율을 더 높이고, 국가 발전의 에너지를 배가시킨다.
말 위에서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다
삼국지를 읽은 사람이라면 안다. 유비에게 관우와 장비가 있었다면, 제갈공명도 있었다. 관우와 장비는 전쟁터에서 적진을 부쉈지만, 나라를 설계한 것은 공명이었다. 강을 건너고 나면 타고 온 배는 버려야 한다. 선거판에서 이기게 해준 전투형 참모와, 나라를 경영할 행정형 전략가는 다르다.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결국 강을 건넌 뒤에도 배를 끌고 산을 오르는 우를 범한다. 힘만 들고 정상에는 영원히 닿지 못한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은 그냥 고사(故事)가 아니다. 사랑하는 부하도 잘못이 있으면 베어야 조직이 산다는 뼈아픈 진리다.
5,200만 인구 중에 흠결 없는 장관 몇 명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지도자의 안목이 내각을 결정하고, 내각의 안목이 나라의 방향을 결정한다. 문제는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없는 것이다. 중국 한(漢)나라에 '백락(伯樂)'이 없었다면 천리마도 그냥 짐마차를 끄는 말로 늙어 죽었을 것이다.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의 지혜, 지금 지도자의 참모진에 그 역할을 하는 인물이 있는가.
더 심각한 문제는 예스맨(Yes-Man)의 함정이다. 나에게 편한 말만 하는 참모들과 작전회의를 하다가 지지율 하락과 레임덕에 직면한 트럼프(Donald Trump)가 바로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교과서다. 이란전쟁의 수렁에 빠진 트럼프를 보라. 진짜 레드팀(Red Team), 즉 자기 이익을 커버하는 가짜 비판이 아닌 진짜 독립적 비판자가 있어야 최고 권력자도 오판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귀는 두 개, 눈도 두 개, 입은 하나다. 이 신체 구조에는 이유가 있다. 두 배로 듣고 절반만 말하라는 조물주의 경고다.
미·중의 현장에서 배워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은 달라지고 있다. 중국을 직접 보지 않고 한국제조업 정책을 논하는 것은 이젠 넌센스다. AI와 로봇, 반도체에서 중국이 얼마나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고 추월해오는지, 추격자였던 중국의 현장을 한 번이라도 눈으로 확인하고 한국은 산업정책을 논해야 한다. 여의도에서 말싸움을 해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베이징에 가서 보라. 그래야 4년 뒤 한국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조금이라도 보인다.
중국의 AI와 제조업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불꺼진 공장(Dark Factory: 완전무인화공장)' 혁명의 최대 희생자는 한국 제조업이다. 그런데 정치권은 이 거대한 쓰나미를 보고나 있는가. 80년대식 사고로 2020년대를 헤치고, 2000년대식 사고로 2030년대를 준비하는 것은 고속열차에서 말 안장을 찾는 것만큼 어리석다.
미국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실리콘밸리는 중앙정부가 만든 것이 아니다. 스탠퍼드라는 대학, 벤처캐피털이라는 생태계, 이민자 천재를 빨아들이는 이민제도, 세제 혜택과 상장 특구가 결합해 자생적으로 탄생했다. 정부가 전국 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예산을 1/N로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은 어떤가. 지역 균형이라는 명목 아래 예산을 뿌리고, 점선면(點線面)의 전략 없이 전국에 산업단지를 흩뿌리고, 결국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클러스터가 나오지 않는 '모두가 조금씩 불행한' 구조를 만들고 있다.
호남반도체 클러스터 구상은 전력, 용수, 부지, 인재, 공급망 생태계, 정책 일관성의 여섯 가지 전제조건을 제대로 충족하지 못한 채 선언부터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더 키워야 할 판에, 그 거위 배를 갈라 단기 이익을 나눠 먹으려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배 밭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면 도둑으로 의심받는 법이다.
역사를 교과서가 아닌 거울로 삼아야
미·중 전쟁과 K자형 양극화, 그리고 AI라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동시에 한국을 덮치고 있다. 이 세 가지 메가 트렌드가 맞물리는 지점이 바로 지금이다. 이 파도를 헤쳐 나갈 선원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 정치는 파도의 방향조차 읽지 못한 채 갑판 위에서 서로 멱살을 잡고 있다.
트럼프의 이란전쟁은 미국에게 독이었지만, 한국에게는 방산과 조선특수라는 반사이익을 주었다. 그러나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면 크게 다친다. 트럼프 이후 세계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외교를 해야 한다. 캐나다와 EU가 미국에 압박을 넣고, 유럽이 미국채에 넣었던 돈을 빼 가고, 미국 연방은행에 금괴를 가지러 가고 있다. 사자의 이빨이 빠지는 것은 숲 속의 모든 동물이 다 안다. 한국만 홀로 미국의 봉이 되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적당히 시간을 끌며 판을 읽는 것도 외교의 기술이다.
민심의 온도계는 주가가 아니라 소비다. 잘살면 쇼핑하고, 못살면 혁명한다. 강성 지지자 30-40%가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 60-70%를 두려워해야 한다. 그 침묵하는 다수가 투표장에서 입을 여는 순간, 역사는 뒤집힌다. 정책 오류는 반드시 지지율로 나타나고, 지지율 하락은 반드시 레임덕으로 이어진다. 민주주의의 위대함은 완벽한 지도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빠르게 수정하는 시스템에 있다. 고칠 줄 모르는 지도자는 결국 사고를 낸다. 전쟁에서 지는 자는 항상 전임자가 이긴 방식으로 싸우다 진다
리더는 이끄는(領) 자가 아니라 읽는(讀) 자다. 부하를 읽고, 적(敵)을 읽고, 민심을 읽어야 한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전복시키기도 한다". 당 태종의 이 말은 1,4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민심을 읽는 데 실패한 정권은 예외 없이 역사의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전병서 필자 주요 이력
▷칭화대 석사·푸단대 박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도체IT 애널리스트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겸임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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