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방어권 보장을 권고한 의결을 폐기하고 대국민 사과를 하자는 안건을 상정했지만 표결에 이르지 못한 채 논의를 중단했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14일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열린 제15차 전원위원회에서 해당 안건을 상정한 뒤 제3자 전문가 의견을 조회하고 재상정하겠다고 결정했다.
안 위원장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지난해 방어권 보장 권고가 서부지법 난입 사태와 그에 따른 인신 구속 등의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헌법의 핵심 원리인 적법 절차를 지키라는 전원위 의견표명 및 권고는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마땅히 존중돼야지, 폐기되거나 대국민 사과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한석훈·강정혜 비상임위원도 이미 관계 기관들이 인권위 권고를 수용한 상황에서 과거 의결을 소급해 폐기하는 것은 불가능한 법률 효과를 목적으로 하는 안건이라며 상정 자체가 위법하다는 의견을 냈다.
반면 안건을 발의한 위원들은 지난해 의결이 인권위의 독립성과 역할에 비춰 잘못됐다며 폐기와 사과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안건은 이숙진·오영근 상임위원과 소라미·오완호·조숙현 비상임위원 등 5명이 지난 7월 10일 발의했다. 이날 2시간여의 격론 끝에 다수결 찬성으로 정식 안건으로 상정됐다.
인권위는 지난해 2월 10일 전원위에서 '윤석열의 탄핵심판 방어권을 보장할 것'을 수사기관 등에 권고하는 안건을 찬성 6명, 반대 4명으로 의결했다.
오완호 비상임위원은 당시 의결이 "그 시기에 교묘하게 내란을 옹호하는 형태, 비호하는 형태의 기술로 보인다"며 "그 엄중한 시기에 인권위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란범의 방어권을 강조하는 그런 결정이 인권적이었나"라고 비판했다.
조숙현 비상임위원도 당시 의결이 헌정 위기와 대통령 탄핵 상황에서 인권위의 책무를 저버린 것이며 "국가인권기구를 권력자인 대통령 윤석열의 변호 기관으로 전락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숙진 상임위원은 "과거 의결이 인권위의 역할이나 독립성에 비춰 잘못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재평가해서 더 이상 인권위의 현재 입장으로 유지하지 않겠다"며 국민에게 사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건 상정 이후 80분가량 논의가 이어졌지만 안 위원장이 전문가 의견을 조회한 뒤 재상정하겠다고 결정하면서 표결 절차는 진행되지 않았다.
안건 발의 위원 5명과 김민문정 비상임위원은 안 위원장의 결정이 표결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며 토론을 계속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안 위원장은 찬성·반대 측이 각각 2명씩 전문가 의견을 조회한 뒤 한 달 안에 안건을 처리하자고 제안했지만 반대 측 위원들은 이날 표결해야 한다고 맞섰다.
논의 과정에서는 전문가 의견 조회 대상과 위원장의 의사 진행 권한을 둘러싸고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결국 안 위원장은 오후 7시 9분 폐회를 선언했고 안 위원장을 포함해 안건에 찬성하지 않는 위원 5명이 자리를 떠났다.
이숙진·오영근·조숙현·소라미·김민문정 위원은 회의 직후 백브리핑을 열고 안 위원장의 폐회를 비판했다.
이들은 "표결 시 통과될 가능성이 높고 반대표 행사의 역사적 책임이 기록으로 남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독단적 꼼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달 28일 또는 10월 12일 전원위에서 안건 표결을 진행하겠다는 안 위원장의 약속을 마지막으로 믿고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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