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이유 있는 레드테크의 질주…한국에 보내는 경고

오주석 기자
오주석 기자
중국 선전 거리를 걷다 보면 낯선 자동차와 끊임없이 마주친다. 엠블럼을 보고도 어느 회사 차량인지 쉽게 알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그만큼 많은 자동차 브랜드가 한정된 시장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는 의미다. 늦은 밤까지 선전 대기업 사옥을 빼곡하게 밝힌 불빛을 보고 있으면 자동차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레드테크'를 체감하게 된다.

세계가 놀랄 만한 속도로 신차와 새로운 기술을 쏟아내는 중국 전기차의 성장세 뒤에는 높은 노동강도와 치열한 인력 경쟁이 자리하고 있다. 투입에 대한 결과물이 분명한 제조업의 '정직함'을 생각하면 오늘날 중국차 성장세는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이면에는 중국 청년들의 희생이 있었다.

선전 현지에서 만난 한 취재원은 "30대 중·후반부터 직장에서 살아남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한국에선 한창 일을 할 30대가 밀려 퇴직 대상이라고 혀를 찼다. 40대가 되기 전 고향으로 돌아가 '35세의 저주'라는 말까지 있다고 한다. 이들의 빈자리는 매년 쏟아지는 신입 대졸자들로 채워진다. 중국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지난해 기준 48.6시간에 달한다.

중국이 강도 높은 노동을 이어가는 사이 한국의 노동시간은 꾸준히 줄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간한 '한국의 사회동향 2025'에 따르면 한국의 주당 근로시간은 1988년 55.8시간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24년 37.7시간까지 감소했다. 일과 삶의 균형과 고용 안정성을 중시하는 흐름이 자리 잡은 영향이다.

중국이 한국을 쫓아오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이제 우리가 중국을 쫓아가야 하는 분야가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해 발표한 '한·미·일·중 기업경쟁력 현황 및 전망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62.5%가 최대 경쟁국으로 중국을 꼽았다. 자동차·부품을 비롯한 5개 업종에서 중국의 경쟁력이 한국을 앞선 것으로 평가됐다. 2030년에는 국내 10대 주력 업종 모두에서 중국이 한국을 앞설 것으로 전망됐다.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생산성과 정부 지원에서도 중국이 한국을 앞섰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의 노동 시간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속도와 치열함이다. 기술을 개발해 제품으로 만들고 시장에 내놓는 속도, 수많은 기업이 경쟁하고 살아남은 기업에 다시 자본과 인재가 몰리는 중국의 전기차 생태계는 분명 한국 산업계가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과거로 돌아가자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그들의 경쟁력을 만들어낸 속도와 기술, 과감한 투자는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현재의 강점을 지키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대비 높은 경쟁력을 인정받는 하이브리드 기술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생산성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현대자동차가 인공지능(AI)을 일부 사업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전사적으로 활용하겠다고 강조한 건 생산성과 업무 효율을 동시에 잡기 위한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열린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호세 무뇨스 사장은 글로벌 업체들과 파트너십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첨단 사양 확대 등으로 차량 가격 인상 압력이 커지는 가운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겠다는 구상이다. 노동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차가 선택한 'AI'와 '파트너십'이 중국의 거센 공세에 맞설 해법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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