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기초연금 개편 무산, 미래 세대에 또다시 빚더미 부담 떠넘기나

기초연금 하후상박형 개편안 발표를 앞둔 지난달 26일 서울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종합상담실을 찾은 시민이 직원과 상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초연금 하후상박형 개편안 발표를 앞둔 지난달 26일 서울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종합상담실을 찾은 시민이 직원과 상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보건복지부가 지난 1일 발표한 기초연금 개편안은 국가 백년대계를 외면한 ‘정치적 미봉책’에 그쳤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당초 공언했던 지급 대상 축소와 본격적인 ‘하후상박(下厚上薄)’ 구조 전환은 실종됐다. 기존 ‘소득 하위 70% 지급’ 기준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소득 하위 30% 저소득층 노인에게만 월 3만원을 얹어주고 나머지 구간은 사실상 동결하는 땜질 처방에 멈춰 섰다. 이는 심각한 노인 빈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못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 부담을 방치한 ‘무늬만 개편’에 불과하다.

개편안 발표를 앞두고 빚어진 정책 혼선은 이번 연금 개혁의 퇴행을 여실히 방증한다. 지난달 27일 예정되었던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의 기초연금 개편안 사전 언론 브리핑이 개시 1시간을 앞두고 돌연 취소된 배경 역시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정부 안팎에서는 국정 지지율 하락세를 의식해 고통 분담이 따르는 구조개혁을 회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당초 복지부 전문위원회는 재정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급 범위를 소득 하위 50~60% 선으로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극빈층에게 지급액을 대폭 몰아주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했다. 그러나 정부는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인 ‘기초연금 40만원 단계적 인상’에 얽매이고 노인 유권자 표심 이탈을 우려해 제도 개혁의 고삐를 풀어버렸다. 선거 표심을 의식한 포퓰리즘이 연금 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업을 삼켜버린 셈이다.

이번 발표를 둘러싸고 시민사회단체와 학계에서는 거센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 시민사회단체는 성명을 통해 “소득 하위 30%에 대한 고작 월 3만원 핀셋 인상으로는 OECD 최고 수준인 노인 빈곤율을 단 1%포인트도 유의미하게 낮출 수 없다”며 전형적인 조삼모사 행정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재정학회와 연금 전문가들 역시 “재정 절감의 핵심 장치인 ‘수급 기준 70% 룰’을 건드리지 못한 채 혜택만 일부 덧대는 식으로는 재정 파탄을 결코 막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결국 가장 취약한 빈곤 노인의 삶도 실질적으로 구제하지 못하고 국가 재정의 건전성마저 내팽개쳤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제 내년도 기초연금 예산은 올해 23조1000억원에서 25조7000억원으로 11% 이상 급증하며 단숨에 25조원을 돌파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현 상황에서 지급 대상을 줄이지 못한다면 2030년대 기초연금 재정 지출은 40조~50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이번 개편안을 국회에서 법제화하는 과정 역시 험로가 예상된다. 야당은 포퓰리즘 예산 증액이라며 현미경 검증을 벼르고 있고 수급액이 동결된 소득 하위 45~70% 구간 노인층의 상대적 박탈감과 불만 역시 거세질 수밖에 없다.

기초연금은 복지의 외피를 쓴 선심성 돈 풀기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급 대상을 중위소득 이하 절대 빈곤층으로 단계적 압축하되 최하위 계층에는 실질적인 생계 안정이 가능하도록 급여액을 두텁게 몰아주는 과감한 구조개혁이다. 표 계산에 매몰돼 기득권 세대의 반발을 피하고 개혁의 짐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청년과 미래 세대에게 갚을 길 없는 빚더미 청구서를 떠넘기는 무책임한 처사다. 정부와 국회는 지금이라도 당리당략을 내려놓고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고 국가 재정의 영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기초연금 개혁에 다시 착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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