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내년 820조 예산안, 국회가 합리성·타당성 꼼꼼히 따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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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어제(1일) 내년도 나라 살림살이 계획안을 내놨다. 820조900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보다 12.8%(93조원)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 예산안이다. 반도체 초호황에 힘입어 국세수입이 194조원 넘게 급증한 게 슈퍼 예산안을 편성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잠재성장률 반등, 양극화 완화, 반도체·AI 등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반도체발 세수 여력을 과감히 투자하겠다는 정부의 문제의식에는 수긍할 대목이 적지 않다. 다만 이례적으로 큰 폭의 지출 증가인 만큼,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챙기는 균형 잡힌 접근이 병행돼야 한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세수 증가분의 상당액을 떼어 162조3000억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하기로 한 것은 나름의 합리성을 갖는다. 반도체 경기 특성상 세수 변동성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호황기 세수를 곧바로 소진하기보다 별도 계정으로 묶어 미래 투자와 충격 흡수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발상 자체는 새겨볼 만하다.

다만 기금 주요 항목의 지출 금액을 30% 이내에서 대통령령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재정법 개정 방향에 대해서는 국회 심사 과정에서 좀 더 세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신속한 재정 대응이라는 실익과 국회의 예산통제 기능이라는 원칙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지혜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청년 지원(43조3000억원, 53.5%↑), 반도체·AI 인프라(21조3000억원, 97.2%↑) 등 미래 성장기반에 대한 투자 확대는 시의적절하다. 다만 기초연금 소득 하위 30% 추가 지급 등 현금성 복지성 지출이 함께 늘어난 만큼, 미래 투자와 이전지출 사이의 우선순위를 좀 더 선명하게 가져가는 편이 재정의 효율성 측면에서 바람직할 것이다.

정부는 107조6000억원 규모의 지출구조조정도 함께 추진한다고 밝혔다. 다만 절감액의 상당 부분(69조원)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내국세 연동제 폐지, 교부세 산정 방식 개편 등 의무지출 조정에서 나온다는 점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순수한 재량지출 절감(38조6000억원)과 구분해, 지방·교육 재정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짚어보는 과정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도 고민할 지점이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연평균 지출을 8.4%씩 늘려 총지출이 1005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연평균 국세수입이 13.4%씩 늘어난다는 다소 낙관적인 세수 전망을 전제로 한 계획이다. 반도체 경기는 사이클을 타는 만큼, 지금의 호황이 예상만큼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재정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 관리재정수지가 내년 -0.1%로 개선된다는 전망 역시 일회성 성격이 짙은 반도체발 세수 호황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는 점을 함께 감안해야 한다.

예산안은 늘 논쟁의 대상이다. 성장과 재정건전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정부가 추진하려는 정책목표의 타당성에 대한 설득과 합의, 숙의가 필요하다. 그게 법률로 정부안 발표, 국회 심사과정을 반드시 거치도록 규정한 이유다.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절대 과제가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양극화 완화라는 건 분명하다. 또한 미래세대에 전가될 빚 부담을 덜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앞으로 석 달여 동안 정부가 목표로 제시한 예산안의 효과를 내면서도 재정 규율을 촘촘히 갖추는 방안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국회 심사 과정에서 미래대응기금의 견제 장치를 보완하고 지출의 우선순위를 다시 한번 점검하는 생산적인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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