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과 일본의 채권시장이 최근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였다. 미국 30년물 국채금리가 최근 5.3%대로 올라서 2007년 이후 19년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한 바 있다. 그리고 미국 10년물 금리도 4.7%를 넘어 있다. 일본 역시 10년물 국채금리도 최근 2.9%를 넘어 상승한 바 있다. 30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왜 이렇게 주요 선진국의 채권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것일까? 채권시장의 발작과 충격은 미일 경제, 나아가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우려와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이다.
미국 장기금리 급등에는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첫째는 미국 경제의 누적되어 온 재정 악화다. 2026 회계연도의 미국 재정적자는 7월까지의 누적액만으로도 전년도 연간 재정적자 1조 7,750억 달러를 넘어섰다. 피치는 미국의 재정적자가 GDP의 7.4%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재정적자가 확대될수록 국채 발행은 증가하고 시장은 증가하는 신규 국채를 소화하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한다. 간단한 시장의 원리이다.
그런데 최근의 상황은 미국 정부만이 자금을 빨아들이는 주체가 아니다. 민간기업도 그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AI와 데이터센터 투자의 급증이 그 원인이다. 올해 데이터센터 관련 자금조달 규모는 약 2,690억 달러로 전년의 두 배에 달한다. AI 투자가 미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기업들이 막대한 자금을 채권시장에서 조달하면서 미국 국채와 자금을 놓고 경합하고 있다. 정부는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쏟아내고 기업은 AI와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해 회사채를 쏟아낸다. 경제 전체의 자금 수요가 급증하면서 장기금리가 상승하고 있다.
한편, 일본의 사정은 미국보다 더 복잡하다. 일본은 GDP의 2배를 훨씬 넘는 막대한 정부부채를 안고 있다. 금리가 거의 제로였던 시기에는 이처럼 거대한 부채도 어느 정도 관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물가 상승과 엔저 가속화로 금융 정상화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일본은행과 일본 정부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은 정부의 채무상환 비용을 극적으로 상승시키기 때문이다. 시장금리가 오른다고 이미 발행된 고정금리 국채의 이자가 곧바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국채의 표면금리는 정해져 있다. 문제는 만기가 돌아오는 국채를 새로운 국채로 차환하고 재정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신규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는 데 있다. 일본처럼 국채 잔액과 매년 차환해야 하는 물량이 막대한 국가에서는 저금리 국채가 만기를 맞을 때마다 더 높은 금리의 국채로 대체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금리 상승의 충격이 정부의 이자 지급액에 누적되는 구조다.
그렇다면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은 잘못된 정책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금리를 올리면 엔화 약세를 완화하고 수입 물가와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킬 수 있다. 정부에도 더 이상 저금리에 의존해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하기 어렵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 재정 규율이 강화되고 물가와 환율이 안정된다면 장기적으로는 일본 국채에 대한 신뢰가 높아져 장기금리가 오히려 안정되는 선순환도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다. 이러한 선순환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물가 안정과 재정 건전화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충분히 형성되어야 한다. 반면 시장금리 상승에 따른 국채 차환 비용 증가는 훨씬 빠르게 현실화된다. 시장은 먼 미래의 재정 건전화보다 당장 늘어날 국채 발행과 이자 비용에 먼저 반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이 장기적으로 경제 정상화에 기여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국채 가격 하락과 장기금리 상승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장기적인 ‘신뢰의 선순환’과 단기적인 ‘재정 부담·수급 악화’가 충돌한다.
미국과 일본 정책당국의 복잡한 상호작용도 딜레마이다. 미국은 지나친 엔저를 원하지 않는다. 엔저가 지속되면 일본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미국의 제조업 부활 정책에도 부담이 된다. 일본의 엔화 방어에 필요한 달러 자금 조달의 증가는 미국 채권시장에 부담을 준다. 미국은 이것도 원하지 않는다. 미국이 일본의 엔화 방어에 협력하고 일본은행의 금융정책 정상화를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리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일본의 장기금리가 상승하면 미국 국채에 투자했던 일본의 은행·보험사·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는 환위험까지 부담하면서 미국 국채를 보유할 이유가 줄어든다. 일본 국채의 수익률 자체가 상대적으로 더 매력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결국 해외에 투자됐던 일본 자금이 국내로 돌아오는 엔 캐리 자금의 본국 환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의 정책금리 인상→일본 장기금리 상승→일본 자금의 국내 환류→미국 국채 수요 감소→미국 장기금리 상승이라는 연결고리가 형성된다.
바로 이것이 미국이 직면한 딜레마다. 엔저를 막으려면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본 금리가 올라갈수록 일본 투자자의 미국 국채 투자 매력은 낮아진다. 특히 일본의 10년물 금리가 이미 2.9% 수준에 도달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가상적인 시나리오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은 엔저 방지를 위해 일본의 금리 정상화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일본 자금의 이탈로 자국 장기금리가 상승하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엔저와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금리를 올릴수록 국채 차환비용과 정부의 이자부담이 커진다. 그렇다고 금리를 계속 낮게 유지하면 엔화 약세와 수입 물가 상승을 막기 어렵다. 세계 1위와 4위의 거대 선진 경제가 서로 다른 이유로 비슷한 ‘부채와 금리의 함정’에 빠져 있는 셈이다.
이 딜레마를 단기간에 해결할 묘책은 많지 않다. 우선 단기적으로 중요한 것은 중동 정세의 안정과 국제유가의 하향 안정이다. 에너지 가격이 안정되면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낮아져 장기금리 상승 압력을 완화할 수 있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높은 일본에서는 그 효과가 더욱 크다. 유가 하락은 수입 물가를 낮추고 무역수지를 개선해 엔화 약세 압력을 완화한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행이 환율 방어를 위해 급격하게 금리를 올려야 할 필요성도 줄어든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단기 처방이다. 근본적인 해법은 결국 실물경제에서 찾아야 한다. 미국은 재정적자와 국채 발행에 의존하는 성장에서 벗어나 AI와 데이터센터에 투입되는 막대한 자금이 제조업 경쟁력과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반도체, 에너지, 첨단제조업을 중심으로 자국의 생산 기반을 강화하여 성장과 세수 증가를 통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일본 역시 금리와 환율이라는 금융 변수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기업 투자와 생산성을 높이고 임금 상승이 소비 확대로 연결되는 성장 구조를 만들어 명목 GDP와 세수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 막대한 정부부채를 감당하면서 금융정책도 정상화할 수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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