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최대 150조원에 달하는 역대급 주주환원 정책을 공식화했다. 인공지능(AI) 메모리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거둬들인 막대한 이익을 주주들에게 환원하겠다고 나섰다. 한국 자본시장에 유례가 없던 일이다.
파격적인 행보 뒤에는 '돈 잔치'라는 비난이 따라붙고 있다. 미래를 위한 설비 투자(CAPEX)나 연구개발(R&D) 동력을 약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냉소적 질문도 나온다.
주식회사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 중 하나는 벌어들인 이익을 주주와 나누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주주가치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신뢰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호황기의 주주환원은 불황기를 견디는 원동력이 된다.
과거 아이폰 이후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인 애플은 2012년부터 대대적인 자사주 매입·소각과 배당 확대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당시에도 "혁신이 멈추고 R&D 투자가 줄어들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결과는 달랐다. 애플은 자사주 소각을 통해 주당순이익(EPS)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고, 주주들의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장기 자금을 유입시켰다. 애플의 기업가치가 사상 최초 3조 달러를 돌파하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2000년대 중반 PC 시장의 정체와 모바일 전환 실패로 성장통을 겪었지만 오히려 대규모 주주환원에 나섰다. 주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MS는 클라우드 중심으로 체질 개선에 나설 수 있었다.
단단한 주주들의 신뢰는 기업의 기초 체력이 된다. 업황의 불황이나 예기치 못한 대외 악재로 흔들릴 때 주주들의 신뢰는 주가 하락을 방어하는 가장 튼튼한 버팀목이 된다. 반대로 기회가 왔을 때는 신속하게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고 혁신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준다.
150조원에 달하는 주주환원은 한국 증시를 오랫동안 짓눌러온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글로벌 최고 수준의 주주 신뢰를 구축해 기업의 진짜 체력을 다지기 위한 첫걸음이다. 주주 신뢰라는 가장 강력한 자산을 확보한 기업이야말로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
다만 분배에만 급급해 성장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선심성 이벤트로 전락하지 않도록 회사의 재무구조를 단단히 다지고 회사의 미래 비전을 위한 혁신 방안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인공지능(AI) 시장 역시 언젠가 성숙기를 지나 침체기로 접어들 수 밖에 없다. 반도체 초 호황 이후에 대한 두 회사의 고민은 이제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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