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담] 관광객 4000만명 시대 외치는 정부, 재울 곳은 마련했나

경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첨성대 일원에서 봄꽃과 신라 문화유산을 둘러보며 관광을 즐기고 있다 사진경주시
경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첨성대 일원에서 봄꽃과 신라 문화유산을 둘러보며 관광을 즐기고 있다. [사진=경주시]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 4000만명 시대를 공언했다. 당초 3000만명 수준이던 외래객 유치 목표를 크게 높여 잡은 구상이다. 대형 아레나를 짓고 초대형 축제를 만들어 한국을 찾을 유인을 늘리겠다고 한다. 관광객 유치 목표는 치솟는데, 정작 이들이 밤에 머물 숙소를 어떻게 확보할지에 대한 대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내년 12월 서울 창동 서울아레나와 고양 킨텍스에서는 대규모 K-컬처 축제 '패노메논(FANOMENON)'이 첫선을 보인다. K-팝 콘서트와 시상식을 비롯해 영화·드라마, 게임, 웹툰, 패션, 뷰티를 한데 묶은 '한국판 코첼라'다. 대중문화교류위원회는 11일간 외래 관광객 20만명을 포함해 52만명이 찾고, 1조원 이상의 경제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1만8269석 규모의 전문공연장인 서울아레나도 내년 문을 연다.

외래객 증가세만 놓고 보면, 단순히 장밋빛 기대만은 아니다. 실제 올해 상반기 방한 외래객은 1071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3% 늘었다. 6월 한 달에만 199만명이 한국을 찾았다. 지난해 연간 방한객이 역대 최대치인 1894만명을 기록한 데 이어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을 수용할 숙박시설이다.

숙박시설 수급 전망에서는 허점이 드러났다. 감사원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정기감사에서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숙박시설 수급 분석이 부실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객실 수 증가율(1%) 대신 사업체 수 증가율(4.79%)을 적용해 수급을 산정했고, 문체부는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승인했다고 감사원은 꼬집었다. 

서울시와 문체부의 전망도 엇갈렸다. 서울시는 2026년 외래객 숙박시설이 남을 것으로, 문체부는 부족할 것으로 각각 내다봤다. 감사원이 객실 증가율과 객실점유율을 반영해 다시 산출한 결과, 외래객이 1911만명에 이를 경우 서울 시내 관광호텔 객실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해 방한객이 이미 1894만명에 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숙박시설 확충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도 호텔 공급 확대에 팔을 걷어붙였다. 명동 등 주요 거점을 포함한 63개 구역을 관광숙박 특화구역으로 묶고,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숙박시설에는 용적률을 최대 1.3배까지 완화하기로 했다. 일반상업지역이라면 800%인 용적률을 최대 1040%까지 높여주겠다는 복안이다.

외래객을 지방으로 유도하는 정책도 병행 중이다. 지방공항 국제노선을 확충하고 '방한관광 골든루트'를 조성한다는 전략이다. 올해 상반기 지방공항 입국 외래객은 196만여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42.1% 늘었다. 수도권 공항 증가율(17.3%)을 크게 웃돈다. 2분기 외래객의 지역 방문율도 34.2%로 전년 동기 대비 2.8%포인트 뛰었다.

지방 분산은 가야 할 길이다. 외래객 4000만명이 명동과 홍대, 성수동에만 몰려서는 진정한 관광대국도, 지역관광 활성화도 어렵다. 하지만 지역 분산만으로 서울의 숙박난을 해소할 수는 없다. 첫 방한 외국인에게 서울은 여전히 핵심 목적지다.

패노메논을 비롯한 대형 문화행사와 K-팝 공연 인프라 상당수도 수도권에 쏠려 있다. 그렇다고 호텔을 무작정 짓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호텔은 부지 매입부터 인허가, 착공, 준공까지 수년이 걸려 급증하는 관광 수요를 적기에 맞추기 어렵다. 공유숙박 제도를 현실에 맞게 손질해야 하는 이유다.

현행 외국인관광 도시민박업은 도시지역 주민이 자신이 거주하는 주택을 활용해 외국인 관광객에게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전국 외국인관광 도시민박업은 9800여개소에 이른다. 최근 정부는 화재·폭발·붕괴 사고 시 대인 1인당 최대 1억5000만원, 대물 사고당 최대 10억원을 보상하는 재난배상책임보험 의무 가입을 추진하며 안전망 보강에 나섰다.

무작정 빗장을 풀자는 뜻은 아니다. 주택가 소음과 쓰레기 무단 투기, 주차난은 철저히 막아야 하고 화재·피난 등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업소는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세금과 각종 규제를 감당하는 기존 호텔업계와의 형평성도 놓쳐선 안 된다.

핵심은 제도권 안에서 제대로 관리하고 활용하는 것이다. 영업 신고와 안전시설, 보험 가입, 세금 납부, 주민 갈등 대응 등 기준을 명확히 하고 이를 충족하는 숙소는 관광객을 수용할 숙박시설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불법 숙소는 강력히 단속하되 기준을 지키는 숙소까지 낡은 규제 틀에 묶어둘 필요는 없다.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것만이 관광정책의 전부는 아니다. 얼마나 많이 오느냐 못지않게 이들이 어디서 머물고, 얼마나 편하게 여행하느냐도 관광 경쟁력이다. 4000만 관광객 시대를 현실로 만들려면 유치 목표에 걸맞은 숙박 인프라부터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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