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직전 스마트폰을 몇 번 터치하면 다음날 새벽 문 앞에 신선식품이 쌓이는 시대다. 하지만 정작 우리 동네 한복판에 있는 대형마트는 한 달에 두 번 굳게 문을 닫고 불을 꺼둔다. 2012년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며 도입된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제도가 만든 낯익은 풍경이다.
잘못된 문제 진단은 잘못된 해법을 낳기 마련이다. 당시 정부와 정치권은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침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대형마트를 지목하고, 영업시간과 영업일을 법률로 제한했다. 규제 도입 후 14년이 지난 지금 과연 골목상권은 되살아났는가. 그 성적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최근 실증연구들은 오히려 대형마트 규제가 골목상권에 실질적 도움이 되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대형마트는 단순히 주변 자영업자의 경쟁자가 아니라 유동인구를 끌어들이는 '앵커 스토어' 역할을 수행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 2024년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에서 폐점한 대형마트 주변 반경 2㎞ 이내 상권 매출은 평균 5.3% 감소했다. 반면 의무휴업일을 주말에서 평일로 전환한 대구와 청주 등에서는 대형마트 주변 요식업과 편의점 매출이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대형마트 방문객이 인근 소매점과 음식점에서 추가 소비를 하는 상권 파급 효과가 확인된 것이다.
해외의 유통 규제도 변화하고 있다. 일본은 중소 소매업 보호를 명분으로 운영해 온 대규모소매점포법을 폐지하고 생활환경과 입지 조정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규율 체계로 전환했다. 프랑스 역시 대형 점포의 진입 규제를 완화하고 마크롱법을 통해 일부 지역의 일요일·야간영업 제한을 완화했다. 소비 환경 변화에 맞추어 대형 유통업 규제를 완화하거나 재설계하는 흐름은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다.
물론 대형마트 영업규제를 논의할 때 근로자의 휴식권과 건강권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근로자 보호는 점포 전체의 문을 닫게 하는 획일적 방식보다 근로시간 관리, 교대제 운영, 휴일 보장 등 노동법적 수단으로 세밀하게 규율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전통시장 보호라는 명분도, 근로자 보호라는 명분도 변화한 유통 환경에 맞는 방식으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최근 정치권에서도 의무휴업일 온라인 배송 허용 등 규제 완화 논의가 시작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온라인 배송만 허용하는 수준의 부분적 처방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제도 자체가 오늘날에도 유효한지 근본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대형마트 대 전통시장'이라는 낡은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형마트를 전통시장의 대척점에 세워두는 동안 정작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거대 온라인 생태계는 빠르게 오프라인 상권을 잠식해 왔다. 오늘날의 경쟁 구도는 더 이상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싸움이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과 오프라인 상권 전체의 경쟁에 가깝다.
e커머스 시대에 오프라인 상권을 지키는 길은 규제의 기계적 유지가 아니다. 지역 여건에 따른 자율성을 넓히고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공동 마케팅, 상권 연계 행사, 지역 특산물 판매 확대와 같은 구체적인 상생 모델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14년 전의 낡은 잣대로 오늘의 유통 현장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동네 상권 전체를 진짜 살리기 위해서라도 해묵은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는 이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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