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용산 초대형 청년단지'…공급 숫자 앞에 지킬 곳은 있나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서울 용산어린이정원 약 30만㎡에 대규모 청년임대주택 단지를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유지여서 토지 매입이 필요 없고 도심 접근성도 뛰어나다. 소형주택을 고밀도로 지으면 최대 2만가구까지 공급할 수 있다는 업계 추산도 나온다.

듣기에는 솔깃하다. 그러나 한 꺼풀 벗겨보면 국유지는 공짜 땅이 아니다. 토지 매입비를 내지 않는 대신 공원과 녹지, 역사공간이라는 공공자산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 구상에는 2만가구라는 숫자는 있지만 왜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용산공원까지 주택 공급 후보지가 된다면 다음은 어디인가. 서울숲은 왜 안 되는가. 현충원처럼 추모와 기억의 가치로 지켜온 공간도 공급 논리 앞에서 언제까지 예외일 수 있는가. 김포공항 이전이 현실화하면 그 자리도 가능한 만큼 집으로 채워야 하는가.

기능도 다르고 법적 성격도 다르다. 하지만 법과 도시계획은 정부가 필요하면 바꿀 수 있다. 시민이 묻는 것은 정부가 무엇을 우선하고 어디에서 멈출 것인지다. 그 공포는 단순하다. 공급 숫자가 충분히 크면 우리 삶의 터전 어디라도 본래의 가치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원은 아직 집을 짓지 않은 땅이 아니다. 지어지지 않은 상태 자체로 시민의 삶을 지탱하는 공간이다.

구상이 등장한 과정도 석연치 않다. 정부는 지난 13일 수도권에 23만가구 이상 공급 기반을 추가로 확보하는 대책을 발표했지만 용산어린이정원은 빠졌다. 다음 날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용산공원 전체를 주택 후보지로 거론했고 사흘 뒤 청년·신혼부부용 초대형 임대단지 구상이 알려졌다. 공급대책에 없던 부지가 며칠 만에 ‘2030 주거난을 풀 카드’로 바뀐 셈이다.

용산공원은 속도전에 적합한 땅도 아니다. 본체 부지에 주택을 지으려면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과 공원 종합기본계획을 바꿔야 한다. 토양·지하수 조사와 정화도 필요하지만 주거지 전환을 전제로 한 오염 범위와 정화비, 기간은 제시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복합개발이 가능했던 인근 캠프킴도 오염 정화와 문화재 조사 등으로 사업이 지연됐다. 2020년 12월 반환됐지만 착공 목표는 2029년이다. 목표를 지켜도 첫 삽을 뜨기까지 9년이다. 특별법과 공원계획까지 바꿔야 하는 용산공원이 당장의 전월세난을 풀 신속 공급 카드가 되기는 어렵다. 그사이 지금의 20대는 30대가 되고 30대 일부는 정책상 청년의 범위를 벗어난다.

그런데도 정부 구상에서는 ‘용산’과 ‘청년’만 보이고 ‘주택’은 보이지 않는다. 최대 2만가구를 채우려면 소형·고밀 개발이 전제될 수밖에 없다. 청년에게 좋은 땅을 내준다는 명분으로 작은 집을 빽빽하게 짓는다면 기존 청년주택을 크게 복제하는 데 그친다.

공공임대인지 공공지원 민간임대인지, 임대료와 거주 기간을 어떻게 정할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결혼하거나 아이가 생기면 더 넓은 집으로 옮길 수 있는지, 아낀 주거비를 자산으로 축적할 수 있는지도 빠져 있다. 일정한 연령을 넘으면 나가야 하는 단지라면 주거 사다리가 아니라 거대한 임시숙소에 불과하다.

용산에 청년주택을 짓겠다면 땅보다 주거 경로부터 설계해야 한다. 소득에 따라 임대료를 정하고 결혼이나 출산에 맞춰 더 넓은 집으로 옮겨갈 수 있어야 한다. 임대 기간 중 저축이 내 집 마련으로 이어지는 장치도 필요하다.

좋은 국유지에 청년 집을 많이 짓겠다는 말은 쉽다. 어려운 것은 무엇을 지킬지, 그 집에 들어간 청년에게 무엇이 남을지를 설계하는 일이다. 정부는 용산공원을 주택용지로 바꿔야 할 이유도, 그에 걸맞은 청년주택 모델도 아직 보여주지 못했다. 청년의 이름이 공원의 문을 여는 통행증이 돼서는 안 된다.

정부가 답해야 할 것은 2만가구라는 숫자가 아니다. 왜 이곳이어야 하는지, 어디까지는 지킬 것인지, 그 집에 들어간 청년이 10년 뒤 무엇을 남길 수 있는지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