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가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를 둘러싼 친일 논란에 대해 "친일 행적은 명백하다"며 역사적 성찰과 반성을 촉구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 당시 축적된 자료로는 수록 기준에 못 미쳐 등재가 보류됐을 뿐 안상호의 친일 행적 자체가 부정되거나 면죄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4일 입장문을 내고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 곧 친일 행적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한 시민단체다.
연구소는 최근 언론과 온라인에서 안상호의 친일 행적과 후손 언행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자 일제강점기 전문 연구기관으로서 사실관계를 정리해 달라는 시민과 회원의 요청에 따라 입장문을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대한제국 관립일어학교와 도쿄 자혜의원 의학전문학교를 나온 의사 안상호는 1909년 이토 히로부미 추도를 위해 민간에서 조직된 국민대추도회 준비위원으로 참여했다. 이후 경성부 협의회원(1914·1918·1920년)과 경성 종로금융조합 조합장(1922~1927년)을 지내며 식민통치·수탈기구에 관여했고, 내선융화 단체인 대정친목회 평의원(1916년)과 동민회 평의원(1925~1927년)으로도 활동한 것으로 기록됐다.
연구소는 또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1918년 12월 10일자 기사에서 안상호가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일본 사람과 똑같다", "조선 사람과 상관이 없다"고 말한 것을 들며, 그를 일제의 동화정책을 전면적으로 내면화한 대표적 인물로 소개했다.
안상호가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이름을 올린 것에 대해서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친일 행위"로 규정했다. 연구소는 "대정친목회는 고문 이완용·민영휘, 회장 조중응 등 거물 친일파를 중심으로 결성된 단체로, 3·1운동을 전후해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협력기구로 기능했다"고 설명했다.
일부 방송에서 제기된 '친일인명사전이 전문직을 모두 뺐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연구소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2009년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원은 4389명이며, 거론된 708명은 2002년 광복회와 국회 의원모임이 발표한 별개 명단이라는 것이다.
연구소는 "안상호가 2009년 사전 발간 당시 축적된 자료 기준으로는 선정 기준에 못 미쳐 수록이 보류됐을 뿐"이라며 "이후 새 사료가 확인되면 보유편·개정증보판을 통해 추가 검증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다만 "이번 논란의 본질은 배우 개인이 친일파 후손이라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역사적 성찰 없는 발언에 있다"며 후손에 대한 연좌제적 비난에는 선을 그었다. 이어 "연좌는 안 된다는 한 문장에 막혀버릴 때 가장 크게 손해 보는 쪽은 친일 청산이라는 의제 자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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