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 장기화로 원유 수급 차질이 이어지는 가운데 세계 1위 산유국인 베네수엘라산 원유가 20여 년 만에 한국에 들어왔다. 국가 경제와 에너지 주권에 가장 큰 약점으로 꼽히는 호르무즈·홍해 병목을 해소할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26일 산업계에 따르면 GS칼텍스는 지난달 베네수엘라산 원유 11만 배럴을 국내에 들여왔다. 수입 금액은 1201만5000달러, 배럴당 평균 도입단가는 109.23달러 수준이다.
한국이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수입한 것은 약 20년 만이다. 지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중유를 대체하려는 목적으로 베네수엘라산 역청(오리멀전)을 수입한 바 있으나,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자원 민족주의를 강화하면서 거래가 끊겼다. 이후 미국이 마두로 정권을 상대로 경제 제재에 나서면서 베네수엘라산 원유 도입은 선택 불가능한 옵션이 됐다.
다만 올해 초 마두로 정권 붕괴로 미국 제재가 풀리고 중동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면서 정부와 정유업계가 베네수엘라산 원유 도입의 경제성과 국내 설비 적용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문신학 산업통상부 1차관도 지난 5월 "베네수엘라 원유 수입과 관련해 업체들이 접촉하고 있으며 조만간 실적이 나올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가장 발 빠르게 나선 곳이 GS칼텍스다. GS칼텍스 지분 50%를 보유한 셰브론은 현재 석유 메이저 중 유일하게 베네수엘라에서 원유 시추 사업을 전개하며 일일 약 20만 배럴을 생산 중이다. 단기 증산에 유리한 여건을 갖춘 만큼 GS칼텍스에 대한 수출 물량 배정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을 전망이다.
SK에너지와 HD현대오일뱅크도 베네수엘라산 원유의 경제성과 정제 가능성 검토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베네수엘라산 '메레이 16' 원유는 중동산 두바이유보다 API(미국석유협회) 비중이 낮은 초중질유라 점도가 높고 황과 금속 등 불순물 함량이 많아 정제 과정이 복잡하다. 휘발유나 경유 등 고부가 제품으로 전환하려면 추가 공정이 필요해 운송비와 정제 비용을 포함한 경제성 확보가 관건으로 꼽힌다.
실제 GS칼텍스의 이번 원유 도입도 당장 수익을 내기보다는 안정적으로 정제마진을 확보할 수 있을지 확인하려는 차원이다. GS칼텍스 관계자는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수입한 것이 맞다"면서도 "품질이 낮기 때문에 테스트 용도로 들여왔다"고 설명했다.
정제마진 확보가 가능한 것으로 확인되면 내년부터 수입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홍해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보니 캐나다·호주·카자흐스탄 등으로의 원유 공급망 다각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베네수엘라산 원유 도입도 수입처 다변화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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