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AI의 진화는 책상 위 모니터 안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의 경쟁을 넘어섰다. AI는 이제 물리적인 공간, 전력망, 도시 인프라와 결합하며 문명의 전환을 이끌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약 4700조원의 막대한 자본이 AI 문명 구축을 위해 투입되고 있으며, 국가의 생존은 이 자본을 어떤 물리적 공간에 집약하느냐에 따라 갈리고 있다. 해외의 성공적인 AI 클러스터 사례도 집적의 힘을 강조하고 있어, 한국도 도시·산업적 해법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대만의 신주과학단지는 AI 하드웨어의 물리적 심장부가 어떻게 국가 경쟁력으로 직결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모델이다. 반도체 설계, 제조, 패키징, 그리고 많은 협력업체가 물리적으로 밀집하여 강력한 생태계를 형성한 결과, 전 세계 AI 인프라의 핵심인 파운드리 시장에서 독보적 지위를 구축했다. 성공의 본질은 인프라와 인력, 공급망이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집적의 힘'에 있다. 파운드리 생태계의 고밀도 집적은 생산 단가를 낮추고 혁신 속도를 극대화하여, 작은 영토에서 글로벌 기술 패권을 잡은 원동력이 되었다. 이는 AI 하드웨어 기반 조성에는 분산 투자가 아닌 강한 물리적 집중이 필수적임을 방증한다.
미국의 피츠버그는 전통 제조업의 쇠락을 첨단 기술과 도시 재생으로 극복한 역사적 전환 사례다. 과거 미국 철강 산업의 메카였던 이 도시는 사양산업의 폐허 속에서 카네기멜론대학(CMU)을 비롯한 최고 수준의 연구 역량을 결합하며 로보틱스, 자율주행, 하드웨어와 AI가 결합하는 피지컬 AI의 글로벌 성지로 거듭났다. 이 사례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AI가 현실 세계의 물리적 노동, 제조 공정, 도시 공간과 어떻게 융합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과거의 공장과 연구소 부지는 로봇과 AI를 실험하고 실증하는 테스트베드로 재탄생했다. 도시계획에 산업 유산과 최첨단 기술을 채택하여 새로운 일자리와 인재를 불러 모은 사례는, AI가 가상의 공간을 넘어 우리의 도시와 산업 현장을 재편하는 이정표를 제시한다.
이처럼 거대한 클러스터가 작동하려면 막대한 재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AI 문명 구축을 위한 종자돈은 수천조원이나 된다. 이는 데이터센터, 대규모 전력망, 초고속 통신망, 자율주행과 로봇이 원활히 작동하는 도시 인프라 구축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막대한 자본이 파편화되어 개별 기업의 보조금으로 흩어진다면 대만이나 피츠버그 같은 시너지를 기대할 수 없다. 자본은 명확한 공간 전략과 결합할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발휘한다. AI 문명의 주춧돌은 결국 연산 자원과 전력, 인간의 정주 환경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도시계획형 AI 클러스터'의 형태로 설계되어야 한다.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은 명확하다. 첫째, ‘분산’에서 ‘집중’으로 클러스터 전략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동안 국내 정책은 첨단 산업 인프라를 분산 지원하는 경향이 있었다. 우리도 대만처럼 핵심 기업, 연구소, 반도체 및 AI 연산 인프라가 물리적으로 밀집하여 효율을 낼 수 있는 고밀도 하이테크 특구를 국가적 차원에서 육성해야 한다.
둘째, 기존 제조업 도시를 활용한 '피지컬 AI' 실증 도시를 구축해야 한다. 피츠버그처럼 울산, 창원, 구미 등 글로벌 경쟁력이 강한 제조업 기반 도시 인프라를 개조하여 AI 기반 로보틱스와 스마트팩토리가 결합하는 피지컬 AI의 테스트베드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셋째, AI 인프라를 위한 공간적·에너지 지향적 마스터플랜을 세워야 한다. 자본이 기술 R&D에만 머물지 말고, 대규모 전력과 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면서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의 신산업 거점과 연결되는 데이터·에너지 자족 도시를 건설하는 데 투입되어야 한다.
AI 시대의 국력은 뛰어난 알고리즘 하나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하드웨어 생태계와, 기술이 숨쉬고 실증되는 물리적 도시 공간의 결합, 즉 도시계획을 통한 '집적의 힘'에서 탄생한다. 대만과 피츠버그가 증명한 혁신의 역사를 거울삼아, 우리도 자본과 공간, 산업을 하나로 묶는 도시·산업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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