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의 '긴무기', 기린맥주의 '혼기린', 아사히맥주의 '클리어아사히'. 일본 여행 중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흔히 마주치는 이 제품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겉모습도 맛과 향도 맥주와 빼닮았지만, 법적으로는 맥주가 아닌 이른바 '제3의 맥주'라는 점이다.
맥주면 맥주지, '제3의 맥주'는 또 무엇일까. 그 답은 일본의 독특한 주세 제도에 있다. 일본은 맥주류를 맥아 사용 비율과 원료·제조법에 따라 구분해, 맥아 비율이 높을수록 높은 세율을 매겨왔다.
이에 주류업체들은 맥주와 비슷한 맛을 유지하면서도 낮은 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는 대체품 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발포주다. 맥아 사용 비율을 낮춰 맥주와 비슷한 맛을 내면서도 세 부담을 줄인 술이다.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 이후 가격에 민감해진 소비자들이 몰리며 빠르게 성장했다.
정부가 세법으로 뒤쫓고 주류업체가 신제품으로 달아나는 추격전이 일본에서 약 30년간 이어진 셈이다. 그 과정에서 제3의 맥주는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주력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2020년 판매 비중은 46%로 맥주(41%)를 넘어섰다. '맥주가 아닌 맥주'가 진짜 맥주보다 더 많이 팔리는 시장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오는 10월이면 이 추격전도 막을 내린다. 일본 정부가 2020년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해온 주세 개편이 마무리되면서, 10월부터 맥주와 발포주, 제3의 맥주에 붙는 주세는 350㎖ 한 캔당 54.25엔(약 496원)으로 통일된다. 세율이 같아지면 제3의 맥주를 따로 만들 이유도 사라진다.
실제로 산토리는 16일 긴무기를 제3의 맥주에서 일반 맥주로 전환해 오는 10월 6일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기린도 혼기린을 일반 맥주로 전환해 11월 4일 출시한다. 두 제품 모두 맥아 사용 비율을 높여 일반 맥주 요건을 맞춘다. 아사히도 클리어아사히의 원료와 제조법을 바꿔 일반 맥주로 판매할 방침이다. 낮은 세율을 적용받기 위해 맥주가 아닌 형태로 개발됐던 제품들이 주세 통일을 계기로 마침내 진짜 맥주가 되는 것이다. 긴무기와 혼기린, 클리어아사히라는 이름은 남지만 '제3의 맥주'라는 상품군은 사라진다.
소비자의 관심은 가격에 쏠린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집계 기준 긴무기 350㎖의 현재 평균 판매가는 약 155엔(약 1417원)이다. 맥주 전환 뒤 세금 인상분을 반영해도 162엔 전후로, 기존 주요 맥주의 평균 가격인 196~197엔보다 낮다. 반면 기존 맥주는 감세로 가격이 약 188엔까지 내려갈 수 있어 양측의 가격 차이는 20엔대로 줄어들 전망이다. 가격 차이가 줄면서 소비자들 역시 제3의 맥주에서 맥주로 이동하고 있다. 두 차례의 맥주 감세와 제3의 맥주 증세를 거치며 전체 맥주류에서 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41%에서 2025년 57%로 높아졌다.
다만 소비자가 감세 효과를 그대로 체감하기는 어렵다. 맥주 세금은 2020년 이후 약 23엔 내렸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업체들이 두 차례 출하 가격을 올리면서 감세분의 약 80%가 상쇄됐다고 닛케이는 분석했다. 한편 주류 업체들은 세금상 이점이 사라지는 기존 제3의 맥주 브랜드를 저가형 일반 맥주로 바꿔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를 붙잡으려 하고 있다. 산토리는 이 제품군을 일상적으로 마시는 맥주라는 뜻의 '데일리 비어'로 내세울 계획이다.
10월 이후 맥주 시장은 기존의 '맥주 대 제3의 맥주' 구도에서 가격과 품질을 기준으로 한 경쟁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물론 맥주가 제3의 맥주를 밀어낸다고 맥주류 시장 전체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맥주류 판매량은 정점이었던 1994년과 비교해 2025년 기준 46% 줄었다. 인구가 줄고 소비자들이 츄하이 등 저도수 캔 주류(RTD)나 무알코올 음료로 이동하면서 앞으로도 맥주 판매량이 매년 1~2%씩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세금을 피해 태어난 술은 30년 만에 이름만 남기고 진짜 맥주가 됐다. 그러나 이 제품들이 경쟁해야 할 맥주 시장 자체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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