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직구를 가장한 되팔이와 탈세를 찾아내고 복잡한 무역외환 범죄를 추적하는 데도 AI가 활용된다.
이 변화의 중심에 이종욱 관세청장이 있다.
이종욱 청장이 추진하는 AI 정책의 특징은 분명하다. 거대한 AI 시스템을 외부에서 들여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관세 업무를 가장 잘 아는 현장 공무원이 직접 문제를 찾아내고 AI를 활용해 해결책을 만든다.
한마디로 ‘현장에서 시작하는 관세행정 AX(AI Transformation)’다.
관세청은 2017년부터 관세 업무 전문성과 빅데이터·AI 분석 능력을 함께 갖춘 융합형 인재를 양성해 왔다. 2026년에는 전국 세관에서 50명의 AI 분석관을 선발해 AX 추진단을 구성했다.
2026년 상반기 ‘관세청 AX 챌린지’에는 현장 AI 분석관을 중심으로 22개 사례가 출품됐고 8개 사례가 본선에 올랐다. 관세청은 기존 ‘AI·빅데이터 어워드’를 확대해 올해부터 AX 챌린지를 연 2회 개최하고 있다.
AI 정부의 답은 현장에 있다
AI 혁명 시대를 맞아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마다 AI 도입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AI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정부가 혁신되는 것은 아니다.
수십억원을 들여 AI 플랫폼을 만들더라도 실제 현장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반대로 작은 AI 프로그램 하나라도 공무원의 업무 시간을 줄이고 국민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AI 혁신이다.
이종욱 청장이 주목하는 것도 이 지점이다.
그는 2026년 상반기 관세청 AX 챌린지에서 “AI 정부 실현을 위해서는 국민 접점에 있는 현장 세관공무원 개개인이 기술을 활용해 정책과 현장 행정 집행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AI 혁신은 장관이나 청장의 지시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장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AI를 이해하고 자신의 업무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종욱식 AI 행정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AI 전문가에게 관세 업무를 가르치는 것보다 관세 전문가에게 AI를 가르치는 것이 빠를 수 있다는 것이다.
5분 걸리던 일을 AI가 5초 만에 해결했다
관세청 AI 혁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사진 한 장으로 막는 해외 불법 식·의약품’ 모델이다. 해외에서 국내로 반입되는 식품과 의약품은 국민 건강과 직결된다. 세관 직원은 제품명과 성분표 등을 확인해 위해 식품과 의약품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기존에는 확인하는 데 5분 이상 걸렸다.
AI를 활용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제품명과 성분표를 휴대전화로 촬영하면 AI가 정보를 분석해 위해 식·의약품 여부를 실시간으로 조회하고 판정한다. 5분 이상 걸리던 업무가 약 5초로 줄었다. 이 모델은 광주세관 이병석 주무관이 개발해 2026년 상반기 관세청 AX 챌린지 최우수상을 받았다.
AI 혁신은 반드시 거대한 프로젝트일 필요가 없다.
현장에서 매일 반복되는 불편함을 찾아내고 AI로 해결하는 것. 작은 혁신이 수천 명의 공무원에게 확산되고 수백만 명의 국민이 혜택을 받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부가 추진해야 할 AI 대전환이다.
AI가 무역외환 범죄와 탈세를 찾아낸다
AI의 역할은 업무시간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갈수록 지능화되는 범죄를 찾아내는 데도 활용된다. 서울세관에서는 AI 기반 무역외환 범죄 추적 시스템을 개발했다.
인천세관에서는 개인이 사용할 물건처럼 해외직구로 들여온 뒤 국내에서 판매하는 이른바 ‘되팔이’와 탈세를 AI 주소 판독으로 찾아내는 모델을 만들었다. 과거에는 세관 직원의 경험과 직관에 크게 의존해야 했다.
하지만 사람이 수많은 거래와 데이터를 일일이 분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AI는 다르다. 수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하고 사람이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이상 징후와 패턴을 찾아낼 수 있다.
세관 공무원의 경험과 AI의 데이터 분석 능력이 결합하면서 새로운 국경관리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관세청이 ‘AI 인재 50명’에 주목한 이유
AI 대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기술을 이야기한다. GPU가 필요하고 데이터센터가 필요하며 거대언어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조직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관세청은 이 점에 주목했다.
2017년부터 관세 업무 전문성과 AI·빅데이터 분석 능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했다.
그리고 2026년 전국 세관에서 50명의 AI 분석관을 선발했다.
이들은 단순한 AI 전문가가 아니다.
관세행정을 이해하면서 AI를 활용할 수 있는 융합형 인재다.
조직 혁신의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AI 시대에는 모든 공무원을 AI 개발자로 만들 필요가 없다.
대신 각 조직에 AI를 잘 이해하는 핵심 인재를 육성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50명의 AI 분석관이 100명이 되고, 500명이 된다면 관세청이라는 거대한 정부 조직의 일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관세청 AX 정책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혁신의 방향이다. 전통적인 정부 혁신은 대부분 톱다운(Top-down) 방식이다. 본청에서 정책을 만들고 지방 조직에 지시한다.
그러나 관세청의 AX 챌린지는 다르다. 현장에서 문제를 찾는다. AI를 활용해 해결책을 만든다. 우수 사례를 발굴한다. 성과가 검증되면 조직 전체로 확산한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AI 혁신’이다.
이 방식의 장점은 분명하다.
현장 공무원이 가장 잘 아는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실제 업무에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또 자신의 아이디어가 조직을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은 공무원들의 자발적인 AI 활용을 촉진한다.
관세청은 2026년 상반기 AX 챌린지 이후에도 우수 사례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국민과 공유한다는 계획이다.
AI 시대, 관세청의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세계 경제는 빠르게 디지털화되고 있다. 전자상거래와 해외직구가 급증하고 글로벌 공급망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마약과 불법 물품의 밀수 방식도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다. 사람의 힘만으로 국경을 관리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수많은 물품과 거래, 기업, 사람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분석해야 한다.
AI가 필요한 이유다. 관세청은 국민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수출입 데이터, 기업 정보, 물류 정보, 여행자 정보 등 방대한 데이터가 관세행정 과정에서 축적된다.
AI와 데이터가 결합하면 관세청은 단순히 세금을 걷고 불법 물품을 단속하는 기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를 예측하고 기업의 수출을 지원하며 경제안보의 위험을 사전에 발견하는 ‘AI 경제안보 기관’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이종욱의 실험이 대한민국 정부를 바꿀 수 있을까
대한민국 정부에는 수많은 공무원이 있다. 이들이 하루에 반복하는 업무도 셀 수 없이 많다.
보고서를 작성한다. 민원을 분석한다. 데이터를 검색한다. 각종 서류를 검토한다.
이 가운데 AI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될까.
관세청의 실험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정부가 거대한 AI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공무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업무에서 AI를 활용하는 것 아닐까.
관세청은 최근 단기 과제와 중장기 전략을 병행한 AX 추진 성과를 인정받아 ‘AI 정부 발전 유공’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이종욱 청장의 AI 정책은 화려한 구호보다 현장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5분 걸리던 업무를 5초로 줄이고, 사람이 놓치던 범죄의 흔적을 AI가 찾아내고, 현장 공무원의 아이디어를 실제 행정에 적용한다.
AI 국가대전환은 거창한 곳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현장의 작은 문제를 AI로 해결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종욱 청장이 이끄는 관세청의 실험이 주목받는 이유다.
대한민국 정부의 AI 대전환.
그 답은 어쩌면 이종욱 청장이 강조하는 것처럼 국민과 가장 가까운 현장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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