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500원 안팎에서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은행권 자본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고환율 여파로 위험가중자산(RWA)이 20조원 넘게 불어나며 핵심 건전성 지표인 보통주자본비율(CET1)에 하락 압력이 커지고 있어서다. 환율 상승세가 장기화할 경우 생산적 금융 확대와 주주환원 정책 추진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올 1분기 말 기준 RWA는 총 886조4588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862조1248억원 대비 3개월 만에 24조3340억원, 2.9% 증가한 규모다.
RWA는 은행이 보유한 자산에 위험도별 가중치를 적용해 산출한 값이다. 은행 건전성을 보여주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과 CET1 비율을 계산할 때 기준이 된다.
RWA가 늘어난 배경에는 기업대출 확대와 함께 원·달러 환율 상승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환율이 오르면 은행이 보유한 외화대출금과 외화 유가증권의 원화 환산액이 커진다. CET1 비율은 보통주자본을 RWA로 나눠 산출하기 때문에 RWA가 증가하면 비율이 낮아진다. 고환율이 은행 건전성 지표를 직접 압박하는 구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원·달러 평균 환율은 1465.16원이었다. 2분기 들어서는 지난 29일까지 평균 환율이 1500.85원으로 뛰었다. 남은 거래일에 환율이 급락하지 않는 한 2분기 평균 환율도 1500원을 웃돌 것으로 보인다. 분기 평균 환율이 1500원대에 오른 것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분기 1596.8원 이후 28년 3개월 만이다.
은행권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은행 CET1 비율이 0.01~0.03%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국내 은행의 평균 CET1 비율은 13.41%로 규제 비율인 8%를 웃돌고 있다. 다만 환율 상승세가 이어지면 자본 완충력이 빠르게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환율 장기화는 기업대출 공급 등 생산적·포용금융 위축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환율 상승이 계속되면 은행은 CET1 비율을 방어하기 위해 더 많은 자본을 쌓아야 한다. 이 경우 위험가중치가 높은 기업대출이나 중소기업 대출 확대에 더 보수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고환율이 수입기업의 원가 부담과 외화차입 기업의 상환 부담을 키우면 기업 건전성 악화가 은행 자본비율 관리에 추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 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CET1 비율이 하락하면 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에 쓸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환율 상승은 단순한 손익 변수를 넘어 은행의 자본비율과 대출 여력에 직접 영향을 주는 요인”이라며 “고환율이 길어지면 은행들은 대출 확대 등 성장 전략보다 자본 관리에 더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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