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의 공정경제] 포용금융의 새로운 길… 절벽 아래도 시장이다

  • 이자는 리스크의 신호등인가, 취약계층의 족쇄인가

이용우 전 국회의원
[이용우 전 국회의원]



금융권의 화두인 포용금융은 저신용·저소득 계층에 대한 적정 이자율 논쟁에서 비롯된 매우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과거 함무라비 법전이 이자율 상한을 강제하여 과도한 부채로 인한 채무노예 전락을 방지하려 했던 반면, 그리스의 솔론 법은 이자율 제한을 철폐하는 대신 신체 담보와 채무노예 자체를 금지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이자율 상한에 대한 구체적 입장은 달랐지만, 취약계층의 자유와 자립을 지키고자 했던 선조들의 역사적 노력은 오늘날 금융권이 지향하는 포용금융의 본질적인 목표로 고스란히 이어진 것이다.

상업적 관점에서 이자율은 채무자의 생활 안정성과 사업 가치를 엄밀하게 평가하여 책정된 돈의 가격이다. 하지만 어려운 채무자는 상응하는 높은 이자율을 부담해야만 겨우 자금을 빌릴 수 있는 모순에 직면한다. 이 높은 이율이 오히려 상환 부담을 가중시켜 파산 위험을 극대화하는 금융의 이중성을 낳기 때문이다. 국가가 이 재원을 모두 감당할 수 없어 출현한 대금업은 자금 조달 비용보다 낮은 이율로는 지속될 수 없었기에, 부실 채무자를 양산하고 사회적 불안을 증폭시킨다는 이유로 근대 이전까지 철저히 부정한 행위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 정체된 사회는 자신의 이익 추구를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는 '프로테스탄트의 윤리'로 바라보는 종교혁명을 거치며 근대의 정신으로 부활했고,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이자는 정당한 정수(正數)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돈의 비용인 이자는 자금을 공급하는 대금업자에게는 지속 가능한 수익의 원천이 됨과 동시에, 돈을 빌리는 차입자에게는 여전히 무거운 재정적 부담으로 작용하여 금융의 포용성을 저해하는 양날의 검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이자의 이중성이 명확히 드러난 계기는 IMF 외환위기였다. 1962년 연 20%로 출발해 25%~40% 사이 시행령 위임 방식으로 운용되던 이자제한법이 위기 대응 정책인 금리자율화로 인해 1998년 전격 폐지된 것이다. 이후 고금리 사채 폭리로 취약계층의 피해가 속출하자, 정부는 제도권 밖 고리대금을 규제하기 위해 2002년 대부업법을 먼저 제정했고 이어 일반 사인 간 거래를 통제하고자 2007년 이자제한법을 부활시켰다.

출범 당시 연 66%에 달했던 대부업법의 최고금리는 서민 부담 경감을 위해 지속적으로 인하되었고, 재지정 이후 한도가 낮아지던 이자제한법과 2018년 동률(24%)을 이룬 뒤, 2021년 두 법 모두 연 20%로 제한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한국의 이자 규제 역사는 시장의 자율화 요구와 취약계층 보호라는 복지적 관점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보완되어 온 과정이다.

우리나라의 이자에 대한 관점은 가격적 성격을 강조하는 쪽으로 이동하면서도 전통적인 복지관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이자는 자금 유통의 기회비용이자 원금 회수의 불확실성(리스크)을 보여주는 신호등 역할을 하며, 이것이 바로 이자의 가격 기능이다. 금융기관이 차입자의 상환 능력을 심사하는 신용평가를 생존 조건으로 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용평가는 차입자의 명확한 과거 금융 기록과 유동적인 미래 성장 가능성을 따져보는 과정이다.

이로 인해 오랫동안 성실히 신용을 쌓은 사람은 낮은 금리의 혜택을 누리지만, 금융 시장의 신규 진입자이자 과거 이력이 부족한 청년층이나 신생 소상공인 같은 소외 계층은 진입 장벽에 막혀 이용이 제한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정책적 의도만으로 저신용자에게 낮은 금리를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이는 부실 손실로 인한 대출 축소 및 중단, 나아가 금융기관의 파산으로 이어져 금융업 자체의 존립 근거를 흔들게 된다.

이자의 가격 기능에만 몰두하다 보면 '돈놀이'에 희생되는 취약계층을 놓치기 쉽다. 이들의 보호는 사회적 기본 비용이지만 국가가 모두 감당하기 어려웠고, 과도한 보호는 가격 기능 자체를 마비시킬 우려가 있었다. 이를 보완하고자 가혹한 추심 금지 등의 조건을 붙여 인가해 준 것이 대부업법이다. 대부업법의 최고이율이 이자제한법보다 높았던 것은 국가의 취약층 보호 재원을 일부 분담하는 대신 손실 충당을 위한 인센티브를 준 결과였다. 그러나 2018년 두 법의 최고금리가 같아지면서, 이제는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을 통해 금융 시스템 소외 계층을 포섭하는 일이 핵심 과제가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포용금융은 기존 금융 체계에 접근하기 어려운 신규 진입자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평등의 문제다. 금융 접근성의 차이가 곧 삶의 기회와 사회 참여의 차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기존 신용평가는 과거의 거래 이력 같은 검증 가능한 데이터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이로 인해 잠재력은 풍부하나 자금이 부족한 청년층이나 신생 소상공인들은 금융권 접근 시 '기존 신용점수'부터 증명해야 하는 장벽에 부딪힌다. 결국 돈을 먼저 빌려서 성실히 갚아야만 신용을 쌓을 수 있다는 모순적인 굴레 속에서 이들은 시장 바깥으로 밀려나게 되는 것이다.

서금원이 기존 금융기관에 위탁해 포용적 자금을 공급하는 것은 소외 계층을 시장금융에 연결한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들이 신용평가 시스템에 정식 편입되어 제도화되지 않는다면 포용의 의미는 퇴색된다. 현재 서금원의 재원이 금융기관의 '상생금융 협조' 출연금으로 이루어진 상황에서, 차입자를 제도권 평가 체계로 유입시키는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 본질적 목표 달성은 어렵다.

결국 핵심은 단순 위탁 지원을 넘어 이들이 기존 금융기관의 정식 고객이 되도록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것이다. 현재의 위탁 방식은 위험을 분담하고 책임을 지는 구조가 없어 양측 모두 시스템적 연결 유인이 낮다. 이를 원활히 하려면 금융기관이 기존 정형 데이터 외에 비정형 데이터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정부가 인터넷전문은행과 핀테크 데이터에 주목한 이유도 이 때문이지만, 이 방대한 자료를 기존 정형 데이터와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올해 서금원은 비금융 데이터를 결합한 '대안신용평가 체계' 적용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거래 데이터의 디지털화 및 실시간 연동과 함께, 영속성이나 거래 관계 등 그동안 자산 평가에서 배제되었던 다차원적 시스템의 결합이 필수적이다. 서금원의 포용금융이 단순 일회성 자금 지원을 넘어, 스스로 제도권 금융에 진입하도록 돕는 '징검다리'로 전환하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변화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비정형 금융을 담당하던 기관으로는 상호신용금고와 신용협동조합이 있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이들은 저축은행 등으로 이름을 바꾸며 대대적으로 개편되었다. 금융이 부실을 극복하기 위해 시장 기능을 중심으로 관점을 이동하면서 전통적인 상생 관점은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 동시에 이에 따른 부작용을 회복하기 위한 복지 기능이 절실한 시점이었지만, 서민금융기관들이 이름을 바꾸어 재출발한 것은 단순한 명칭 변경을 넘어 규제 체계 자체를 바꾼 결과를 낳았다. 즉, 비정형 데이터를 활용하던 대안적 신용평가 체제를 부정하고 기존 대형 금융기관의 평가 방식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본래 비정형 금융은 서민들의 생활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다빈도 금융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한 결과, 저축은행의 대규모 부실 사태가 뒤따르게 되었다.

포용금융이 중요해질수록 시장에 직접 간여해 가격을 흔들기보다, 시장이 다루기 어려운 취약 요소를 가격 기능(리스크 평가)에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정교한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자율적인 금융 노력만으로 회생이 불가능한 소외 계층을 구제하는 복지 기능은 외면할 수 없다. 따라서 금융이 시장 안에서 해결할 일과 재정·복지가 시장 밖에서 감당할 일,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징검다리를 구축하는 일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2023년 「개인채무자보호법」의 제정으로 도입된 '선제적 채무조정제도'는 시장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포용금융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제도는 채무자가 도저히 빚을 갚을 능력이 없을 때 금융기관에 채무조정을 요청하는 행위를 채무자의 정당한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채권자가 이를 의무적으로 심사하도록 명확히 했다. 이는 기업 구조조정(워크아웃 등) 때 기업을 그대로 파산시킬 때의 손실과 부채를 조정해 생존시켰을 때의 가치를 비교하여 채권단이 스스로 결정하는 방식을 개인 채무자에게도 적용한 것이다. 그동안 개인과 금융기관 사이에 존재했던 지독한 정보와 권리의 불균형을 시정하는 획기적인 제도라 할 수 있다.

예컨대 금융기관이 대출한 10억원을 채무자가 상환하지 못하면 원래는 전액 순손실로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채무를 5억 원으로 탕감하고 이자율을 낮춰준다면, 채무자는 정상적 경제 주체로 복귀하고 금융기관 역시 회수 불가능했던 채권을 일부 회수하여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적립된 대손충당금을 활용해 채무자의 실질적 재무 상태를 고려하는 자율적 조치다. 즉, 인위적 재정 출연 대신 금융기관의 재무제표 건전화와 법인세 절감 인센티브를 연동함으로써 시장원리를 적극 활용한 정책 수단인 셈이다.

대손충당금을 적립해 부실 발생 시 상계함으로써 손실 충격을 흡수하는 것은 회계 처리의 기본 원리다. 대출 손실 규모와 충당금 잔액을 비교해 채무조정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순전히 금융기관의 상업적 결정이다. 즉, “당장 부실 자산으로 처리할 것인가, 조정을 통해 장기적으로 회수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행위로, 선진 금융기관들은 일상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담보만 있으면 끝까지 강제 회수에 나서는 우리의 낡은 금융 관행과는 깊은 차이가 있다. 또한, 이 조정은 당기 이익을 조정하여 법인세를 줄이는 효과도 거둘 수 있으므로 정책적 강제 없이 금융기관 스스로 자율적 결정을 내리게 유도한다. 우려되는 도덕적 해이 문제는 허위 자료 제출 시 엄벌하는 「개인채무자보호법」 내부 장치로 충분히 방지할 수 있기에, 이는 리스크 관리에 기반한 스마트한 포용금융 수단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자가 갖는 시장 기능과 부작용을 통제하기 위한 복지 기능의 이중성이야말로 금융의 진정한 본질이다. 금융 접근성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요즘 포용금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포용금융이 중요해질수록 정부의 직접 개입보다는 시장이 다루기 어려운 취약 요소를 가격 기능에 결합하는 정교한 대안신용평가 체계로 나아가야 하며, 이러한 변화가 가시화되는 것은 희망적이다. 아울러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한 금융기관의 자율적인 '선제적 채무조정'이 널리 뿌리내린다면 대한민국의 포용금융은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 박사 ▷제21대 국회의원 ▷카카오뱅크 공동대표 ▷한국투자신탁운용 총괄 최고투자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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