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이란전쟁 이야기] 250년 역사의 미국은 5000년 역사의 페르시아 제국, 이란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③

  • 제3부 : 테헤란로에서 다시 만나는 실크로드, 그리고 공존공영의 길

우리는 제1부에서 미국이 왜 이란을 오판했는지를 살펴보았다. 미국은 군사력을 보았지만 이란은 문명을 보았고, 미국은 현재를 계산했지만 이란은 역사를 계산했다. 제2부에서는 조로아스터교와 시아파 정신, 호메이니 혁명과 혁명수비대, 그리고 핵개발 30년의 역사를 통해 이란이라는 국가를 떠받치고 있는 정신적 토대를 살펴보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질문은 하나다. 전쟁은 끝났는데, 그 다음은 무엇인가.

역사는 전쟁보다 전후 질서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수없이 보여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바꾼 것은 전쟁 자체가 아니라 마셜플랜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을 바꾼 것도 정전협정이 아니라 산업화와 경제개발이었다. 독일과 일본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도 군대가 아니라 공장과 학교, 항만과 철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106일 동안 이어진 이번 이란 전쟁 역시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은 끝났지만 재건이 시작되었고, 파괴는 멈췄지만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거대한 과제가 눈앞에 놓여 있다.

현재 국제사회에서는 전후 이란 복구 사업 규모가 최소 3000억 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원유와 가스 시설, 정유공장과 발전소, 도로와 철도, 항만과 공항, 통신망과 산업단지, 데이터센터와 스마트시티까지 포함하면 실제 규모는 그보다 훨씬 커질 수도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란이 단순히 과거의 국가를 복구하는 데 머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네옴시티를 추진하고 있고, 아랍에미리트가 AI 국가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처럼, 이란 역시 전쟁 이후에는 미래형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할 가능성이 높다. 20세기형 복구가 아니라 21세기형 재건이 필요한 시대인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대한민국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성공 사례를 가진 나라다.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를 경험했고,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에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고, 산업화를 넘어 디지털 혁명과 인공지능 혁명에 도전하는 국가가 되었다. 중동 국가들이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기술력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은 한국의 경험을 배우고 싶어 한다. 어떻게 가난을 극복했고, 어떻게 교육을 통해 인재를 길러냈으며, 어떻게 산업화를 이루고 민주화를 달성했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사실 한국과 이란의 인연은 생각보다 훨씬 깊다. 신라 시대 경주에서 발견된 서역 유물과 페르시아 계통 문화의 흔적은 오래전부터 동서 문명이 교류했음을 보여준다.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하던 상인과 학자, 장인들은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한반도까지 영향을 미쳤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양국은 특별한 관계를 이어왔다. 1962년 수교 이후 한국과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성공적인 경제협력 관계 가운데 하나를 구축했다. 이란은 한국 산업화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했고, 한국은 자동차와 전자제품, 건설 기술과 산업 인프라를 제공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LG전자는 한때 이란 시장에서 매우 높은 신뢰를 얻었다. 미국의 제재 이후 관계가 위축되기는 했지만 양국 국민 사이에 형성된 호감과 신뢰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상징이 바로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외국 수도 이름이 붙은 대로가 국가 경제의 중심축이 된 사례는 흔치 않다. 1977년 서울시와 테헤란시의 우호 관계를 기념하며 이름 붙여진 테헤란로는 오늘날 대한민국 IT 산업과 벤처 생태계, AI 산업과 금융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대한민국 디지털 혁명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이 길은 단순한 도로가 아니다. 그것은 서울과 테헤란, 한국과 이란이 맺었던 우정의 상징이자 미래 협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역사적 공간이다.

돌이켜 보면 이것은 놀라운 상징이다. 과거 실크로드 시대에 동서 문명을 연결했던 페르시아의 수도 이름이 오늘날 대한민국 AI 혁명의 심장부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실크로드가 비단과 향신료, 종이와 도자기를 운반했다면 앞으로의 새로운 실크로드는 데이터와 인공지능, 반도체와 콘텐츠를 운반하게 될 것이다. 과거에는 낙타가 사막을 건넜지만 이제는 광케이블과 위성망이 대륙을 연결한다. 과거에는 대상(隊商)이 문명을 연결했다면 이제는 AI와 디지털 기술이 국가와 국가를 연결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이란은 과거의 실크로드를 미래의 AI 로드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미지챗GPT 제작
이미지=챗GPT 제작


한국이 이란과 중동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은 단순한 경제협력을 넘어선다. 한국은 식민지 지배를 한 적도 없고, 중동 분쟁의 당사자도 아니다. 종교 갈등의 한쪽 편에 서 있었던 역사도 없다. 그래서 한국은 상대적으로 신뢰받는 국가다. 미국은 군사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중국은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한국은 발전 경험과 기술력, 그리고 문화적 소프트파워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중동에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패권국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협력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민족이 오랫동안 지켜온 홍익인간 정신을 떠올린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이 정신은 단순한 건국 이념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문명의 근본 가치다. 힘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번영하는 길을 찾고, 상대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길을 모색하는 철학이다. 흥미롭게도 페르시아 문명 역시 비슷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키루스 대제는 정복보다 관용을 중시했고, 조로아스터교는 궁극적으로 선이 악을 이기고 정의가 승리하는 세상을 추구했다. 표현은 다르지만 ,조로아스터교는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으로 인간과 공동체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했다는 점에서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과 통하는 면이 있다.

한국과 이란은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놀라울 정도로 닮은 점이 많다. 한민족은 수천 년 동안 중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페르시아 역시 로마와 아랍, 몽골과 오스만, 영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한국은 외세의 침략 속에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았고, 이란 역시 수많은 침략과 전쟁 속에서도 페르시아라는 이름을 잃지 않았다. 한국이 단군과  홍익인간 정신을 이야기한다면 이란은 키루스 대제와 조로아스터교를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문명이지만 생존과 공존, 그리고 문화적 자존이라는 공통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은 중동에서 단순한 투자국이나 수출국을 넘어 평화와 번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전후 이란 재건 과정에서 건설과 플랜트, 철도와 항만, 원전과 전력망, 스마트시티와 데이터센터, AI와 피지컬 AI 분야까지 다양한 협력이 가능하다. 특히 대한민국이 추진하는 AI 혁명과 제조업 혁신 경험은 전후 이란이 미래 국가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참고 모델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한국은 중동의 갈등을 완화하고 문명 간 대화를 촉진하는 가교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250년 역사의 미국은 어쩌면 5000년 역사의 페르시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5000년 역사의 한민족은 페르시아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전쟁의 폐허를 경험했고,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았으며, 문명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해 온 역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106일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역사는 이제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총성과 폭격은 멈추지만 문명은 계속된다. 전쟁은 언젠가 끝나지만 사람과 사람, 국가와 국가, 문명과 문명을 연결하는 길은 계속 이어진다. 과거 실크로드가 동서 문명을 연결했듯이 앞으로는 AI와 데이터, 문화와 기술이 새로운 실크로드를 만들 것이다.

그 길의 한쪽 끝에는 테헤란이 있고 다른 한쪽 끝에는 서울이 있다.

그리고 그 길을 비추는 등불은 페르시아의 오랜 지혜와 한민족의 홍익인간 정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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