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도 그랬고, 1987년 6월 민주항쟁도 그랬다.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마다 거리에는 늘 젊은 세대가 있었다. 그들은 기성세대가 만든 제도와 현실에 질문을 던졌고, 더 나은 미래를 요구했다.
최근 서울 잠실 개표소 앞에서 이어진 2030세대 중심의 집회 역시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번 집회의 직접적인 계기는 지방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였다. 일부 시민들은 참정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못했다고 주장했고, 개표소 앞에 모여 문제 제기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정치적 해석과 논쟁이 뒤따랐다.
더 중요한 것은 왜 많은 청년들이 거리로 나오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지금 역사상 가장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산업화 시대에는 열심히 공부하면 직장을 얻을 수 있었고, 직장을 얻으면 집을 마련할 수 있었으며, 집을 마련하면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비교적 명확한 인생의 사다리가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다르다. 인공지능과 자동화는 산업 구조를 바꾸고 있다. 기업들은 신규 채용에 신중해지고 있으며, 청년들은 더 치열한 경쟁 속으로 내몰리고 있다.
주거비는 높아지고 있다. 수도권의 월세와 전세 부담은 청년들의 삶을 압박하고 있다. 결혼과 출산은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부담의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저성장과 고금리, 글로벌 공급망 재편, 미중 경쟁의 장기화는 청년 세대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겨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까지 흔들린다고 느끼게 된다면 그 불안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 집회를 바라보며 우리 사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청년들을 비난하거나 낙인찍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의 문제 제기는 존중받아야 한다. 특히 청년 세대가 느끼는 불안과 좌절은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갈등과 대립이 답은 아니다.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세대 전쟁이 아니라 세대 화해다.
청년 세대는 기성세대를 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산업화와 민주화의 길로 이끌어 온 것도 기성세대의 땀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반대로 기성세대 역시 청년 세대를 단순히 경험이 부족한 세대로 보아서는 안 된다. 오늘의 청년들은 과거 어느 세대보다 높은 교육 수준과 국제적 감각, 디지털 역량을 갖추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은 결국 이들의 창의성과 도전 정신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문제는 세대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대한민국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 가운데 하나는 관료주의와 기득권 구조의 혁신이다.
정권은 여러 차례 교체되었지만 관료 시스템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규제는 늘어나고 행정 절차는 복잡해졌다. 혁신보다 책임 회피가 우선되는 문화도 적지 않다.
정치권 역시 마찬가지다.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 때마다 개혁을 외쳤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노동시장 개혁도, 교육 개혁도, 연금 개혁도, 규제 혁신도 대부분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결국 청년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특정 정당 때문만이 아니다. 기회가 줄어드는 현실 때문이다. 노력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절망감 때문이다. 그 절망감이 누적될 때 사회는 활력을 잃고 갈등은 커진다.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낡은 것은 죽어가고 있지만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못한 상태"를 위기의 시대로 설명했다.오늘날 대한민국 역시 비슷한 갈림길에 서 있는지 모른다.
산업화 시대의 제도는 낡아가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은 아직 충분히 구축되지 못했다.
그 공백 속에서 가장 큰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바로 청년들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분노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희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청년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창업과 혁신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노동시장과 교육 시스템을 미래형으로 바꾸어야 한다. 관료주의와 불필요한 규제를 줄여야 한다.
기득권 역시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 골프장에서 후배 선수들이 새로운 라운드를 시작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처럼, 사회도 다음 세대가 성장할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청년과 기성세대 가운데 어느 한쪽의 승리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할 때 비로소 새로운 도약이 가능하다. 잠실 개표소 앞에서 시작된 2030세대의 목소리가 단순한 분노로 끝나지 않고 대한민국의 제도 혁신과 세대 화해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갈등을 확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목소리를 경청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진영 대결이 아니다. 기득권과 관료주의를 넘어 미래로 나아가려는 용기, 그리고 세대와 세대를 잇는 화해와 혁신의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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