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육조거리에서 시작해 일제강점기와 근현대를 거치며 대한민국 역사의 중심축 역할을 해온 서울 광화문. 수많은 이의 발걸음이 교차하는 이 익숙한 공간 너머에는 굳게 닫혀 있던 '예술의 심장'이 조용히 박동하고 있다. 늘 곁에 두고도 그 내밀한 속살은 좀처럼 마주할 기회가 없었던 세종문화회관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달 28일, 일상처럼 스쳐 지나던 그 거대한 건축물의 은밀한 뒷무대로 걸어 들어가 보는 '백스테이지 투어'에 나섰다. 화려한 무대 뒤편에는 완벽한 찰나를 빚어내기 위한 숨은 노고와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어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전직 아나운서 유정아씨의 차분한 해설을 따라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화려한 조명과 박수갈채에 가려져 있던 무대의 이면이 오롯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반 관객에게는 결코 허락되지 않는 비밀의 공간. 낯섦에 적응하고 나니, 곧이어 묘한 떨림과 뭉클함이 밀려들었다.
서울관광재단이 세종문화회관과 손잡고 마련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공연 예술이 탄생하는 현장과 역사의 흔적을 동시에 짚어볼 수 있었다. 그저 명소를 스쳐 지나가는 관광이 아니라, 도시의 깊숙한 속내를 들여다보는 진짜 여행이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세종문화회관의 자리에는 원래 1961년 완공된 한국 대표 공연장 '서울시민회관'이 있었다. 그러나 1972년 12월 대화재로 전소되는 비극을 겪었고, 제대로 된 공연장이 없던 서울은 이듬해 내한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치러야 했다. 당시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시설에 큰 불만을 터트리며 다시는 내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만큼, 종합 공연장의 건립은 시대적 과제였다.
이에 1974년 착공해 1978년 4월 개관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세종문화회관이다. 건립 당시 분단 상황 속에서 북한 만수대극장을 의식해 3800여 석이라는 압도적인 규모로 지어졌으며, 이후 2004년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의 3022석으로 정돈됐다. 1984년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고 온 세계적 거장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훌륭한 홀"이라며 극찬을 남기기도 했다.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는 고(故) 엄덕문 선생이다. 그는 세종문화회관을 '서울의 사랑방'이라 정의했다. 한옥의 안채와 별채, 이를 잇는 회랑과 마당의 개념을 현대 건축으로 풀어낸 것이다. 예를 들어, 대극장이 안채라면 챔버홀과 M씨어터·S씨어터는 사랑채에 해당한다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강력하게 기와지붕 형태로 설계를 변경할 것을 요청했으나, 엄 선생은 기와를 씌우지 않고도 회랑과 처마의 곡선으로 전통을 살릴 수 있다며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관철했고, 지금의 건물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대를 기준으로 대극장 좌측 벽면을 가득 채운 파이프오르간은 이 공간의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독일 칼슈케사에 주문 제작해 설치부터 조율까지 13개월이 걸렸고, 독일 기술진 연인원 1400명을 포함해 총 4000명의 인력이 투입됐다. 파이프 8098개, 건반 6단, 높이 11m, 폭 7m에 무게만 45t에 달하며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60억원에 이른다. 거문고의 외형과 전통 기와 처마의 곡선을 형상화하고 불교적 범종의 소리까지 음향에 탑재한 이 오르간은, 지금은 공간의 상징이 되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 무대 뒤 1인치의 미학, 그리고 경계를 허무는 'S씨어터'
평소 음향 반사판이 내려와 있을 때는 알 수 없지만, 무대 뒤편에는 눈에 보이는 곳보다 훨씬 넓은 보조 공간이 숨어 있다. 발걸음을 스태프들의 땀방울이 서린 '스테이지 라이트(Stage Right)'로 옮기자, 뮤지컬 '베토벤' 리허설 준비로 분주한 무대 뒤편이 마치 거대한 유기체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지름 17m의 육중한 회전무대는 90도를 도는 데 27초, 180도를 도는 데 55초가 각각 소요된다. 안쪽에는 주인공이 바닥에서 오르내릴 수 있는 리프팅 플랫폼이 숨겨 있다. 천장에 매달린 43개의 현수봉과 지하로 끝없이 이어지는 11개의 분장실은, 화려한 공연을 빚어내기 위해 무대 뒤에서 숨죽여 움직였을 수많은 이들의 치열한 시간을 짐작하게 했다.
대극장을 빠져나와 닿은 곳은 300석 내외의 가변형 블랙박스 극장 'S씨어터'다. 2018년 개관한 이 공간은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과감히 허물어, 관객에게 생동감 넘치는 체험을 선사하고 있다. 객석 의자를 모두 밀어 넣으면 평평한 마루 무대로 변형된다. 해설자는 "푹신한 쿠션에 기대어 공연을 보던 한 관객이 깜빡 잠들었다가 눈을 떴을 때 코앞에 연기자가 서 있어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유쾌한 일화를 전했다. 이 공간의 자유로움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 도심 속 추모 공간 '감사의 정원'과 예술관광의 미래
예술의 여정은 극장 문을 나서 광화문 광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최근 광화문 광장에 새로 문을 연 '감사의 정원'이 마지막 목적지. 감사의 정원은 6·25전쟁 참전국을 기리는 도심 속 추모 공간이다.
미국의 워싱턴 D.C. 참전용사 기념관이나 영국의 국립추모수목원처럼 시민들이 바삐 오가는 일상과 맞닿은 열린 공공장소에 조성됐다는 점이 각별하다. 분단 민족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참전국에 대한 예우를 다하겠다는 의지가 대한민국 역사의 심장부인 광화문에서 피어난 셈이다.
정원 지상에는 한국전쟁 발발일인 6월 25일을 상징하는 6.25m 높이의 조형물 23개가 묵묵히 서 있다. 23이라는 숫자는 당시 피 흘려 이 땅을 지켜낸 참전국(국군과 참전 22개국)들의 숭고한 헌신을 의미한다. 특히 일부 조형물에는 참전국들이 직접 기증한 석재가 사용돼 공간의 상징성을 더했다.
매일 저녁 정해진 시간대에 23개의 상징물에서 하늘을 향해 빛을 쏘아 올리는 레이저쇼 '감사의 빛 23'이 펼쳐진다. 밤하늘을 수놓는 빛줄기 아래를 거닐다 보면, 과거의 희생이 현재의 평화로운 야경으로 이어져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발걸음은 자연스레 지하로 향했다. 지하에 마련된 몰입형 미디어 전시 공간 '프리덤홀'은 전쟁의 뼈아픈 기억과 눈물, 그리고 잿더미에서 일어선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장 과정을 미디어아트로 묵직하게 투영하며 먹먹한 여운을 남겼다.
투어에 동행한 길기연 서울관광재단 대표는 "그간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이 지키던 광화문 광장에 감사의 정원과 지하 미디어아트가 더해지며 새로운 볼거리의 조합이 완성됐다"며 공간의 확장을 짚었다. 이어 "우리가 타국 여행 중 태극기를 마주할 때 반갑고 뭉클하듯, 외국인 관광객들 역시 선조들이 피 흘려 지켜낸 이 자유의 땅에서 자국의 국기를 발견할 때 값진 감동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술과 공간이 어떻게 아픈 역사를 위로하고 일상을 어루만지는지 깊이 공감하게 되는 대목이다.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외신 보도를 보고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이 벌써 60여명에 달한다"고 귀띔했다. 3만원이 넘는 비용과 70여분의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은 이유는, 600년 광화문의 역사와 엄덕문 건축가의 철학, 그리고 예술의 심장부를 온전히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현재는 외국인 전용으로 운영 중이지만 재단은 호응도에 따라 향후 내국인에게도 문을 열어둘 계획이다. 우리도 매일 스쳐 지나가는 이 친숙하고도 낯선 무대 뒤 세계를 기꺼이 탐험하게 될 날이 곧 오겠지. 달뜨는 마음으로 기다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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