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오리나 키울걸"… 삼성發 '성과급 인플레이션' 한국 기업 새 기준 되나

27일 경기도 수원시 삼성전자 본사 모습 2026527 사진연합뉴스
27일 경기도 수원시 삼성전자 본사 모습. 2026.5.27 [사진=연합뉴스]

“박사 학위를 따느니 오리를 키웠어야 했다.” 국내 대기업 LSI 사업부에 재직중인 이 HB(33)씨의 말이다.

최근 직장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자조 섞인 말이 퍼지고 있다. AI 반도체 호황의 수혜를 입은 메모리 사업부에 소속된 일부 지원 인력이 수억원대 성과급을 받는 반면, 적자를 내는 시스템LSI·파운드리 사업부의 박사급 연구원들은 훨씬 적은 보상을 받게 되면서다. 

이씨는 “요즘은 ‘오리 키우는 사람도 반도체 사업부 소속이라는 이유로 4억~5억원대 성과급을 받는다는 말이 돈다”며 “성과보다 어느 사업부에 속했느냐가 보상을 좌우한다니 웃음도 안 나온다”고 말했다.

한국의 수출 주도형 경제는 대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이 협력업체와 하청업체, 중소 제조업체로 흘러내려가는 이른바 ‘낙수효과(trickle-down economics)’ 구조 위에서 작동해왔다. 그러나 최근 산업계에서는 AI 시대 성과급 갈등이 또 다른 형태의 ‘낙수효과’를 만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확대되는 임금 격차와 상대적 박탈감, 심화되는 노동 갈등이 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시작된 성과급 경쟁은 이제 한국 기업 사회 전체의 새로운 분배 기준을 흔들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촉발된 보상 논쟁이 플랫폼·ICT·제조·바이오 업계로 확산되며 노동시장 양극화와 조직 내부 분열, 공급망 전반의 갈등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한양대 경영대학의 박병진 교수는 “삼성전자의 이번 성과급 타결 선례는 한국 노동시장 전체와 주요 대기업의 인사보상 체계에 도미노 효과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며 “국내 최고 기업의 상한선 없는 성과급 구조가 다른 대기업 노조들의 보상 기대 심리를 끌어올리는 기준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흐름이 확산될 경우 산업계 전반의 ‘성과급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져 기업들의 비용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요 기업 성과급 갈등 현황 자료 종합
주요 기업 성과급 갈등 현황 [자료 종합]

산업계에서는 성과급 요구가 갈수록 거세지는 분위기다. 현대차·기아 노조는 올해도 순이익의 30% 수준 성과급을 요구했고,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조선업 호황 속에서 ‘영업이익 30% 성과 공유’를 올해 교섭안에 포함했다. 

카카오 노조는 창사 이후 처음으로 파업 가능성을 내세우며 영업이익의 13~14% 수준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고 있고, LG유플러스에서도 영업이익 30% 수준 성과급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전력기기 호황을 맞은 두산에너빌리티 노조도 올해 교섭에서 성과급 산정 방식 개편을 요구안에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한 대기업 완성차 회사에 재직 중인 책임매니저 SM(33)씨는 “결국 한정된 재원을 어떻게 나누느냐의 문제”라며 “윈윈 구조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 더 가져가면 결국 다른 누군가는 덜 가져갈 수밖에 없다. 결국 어느 한쪽은 양보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누가 돈을 양보하겠냐”고 말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사업부 간 극단적인 성과급 격차를 둘러싼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 공동교섭단은 27일 오전 10시 마감한 잠정합의안 투표 결과 찬성 73.7%(4만6142명)로 가결됐다고 밝혔다. 투표율은 95.5%였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당초 예고됐던 파업 가능성을 일단 피하게 됐다. 이번 합의안에는 평균 6.2% 임금 인상과 함께 DS부문 대상 ‘특별경영성과급’ 신설이 포함됐다. 특별경영성과급은 사업 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자사주(RSU)를 지급하는 구조다. 성과급 재원 배분율은 ‘부문 공통 40%, 사업부 60%’로 정해졌다. 이는 이미 영업이익의 10% 수준 성과급 구조를 도입한 SK하이닉스와 유사한 방식이다.

잠정합의안 기준 메모리사업부 직원들은 특별경영성과급과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을 합쳐 연봉 1억원 기준 최대 6억원 수준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적자를 이어가는 시스템LSI·파운드리 사업부 직원들의 예상 보상 규모는 약 2억1000만원 수준에 그친다. 스마트폰·가전을 담당하는 DX 부문 일부 직원들은 약 60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100배 가까이 벌어진 격차는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이례적인 ‘노노 갈등’을 낳고 있다.

비메모리·DX 부문 직원들을 중심으로 한 내부 반발은 잠정합의안 가결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DX 부문 직원들이 주축인 동행노조 조합원 수는 잠정합의안 발표 이후 기존 2200여명 수준에서 1만2800명 안팎으로 급증한 바 있다.

이 같은 내부 반발은 AI 호황기 한국 기업들이 직면한 구조적 딜레마를 드러낸다. 성과를 낸 사업부를 보상하면서도 조직 내부의 상대적 박탈감과 불신, 분열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SM씨는 “예전에는 회사가 해마다 ‘국민 정서상 어렵다’는 설명을 내놓았지만 이제 직원들은 그런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사업부 간 차이가 지나치게 커지면서 구조 자체에 대한 공정성을 의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한쪽은 ‘우리가 영업 잘해서 돈 벌었다’고 하고, 다른 쪽은 ‘우리가 지원 안 했으면 그 사업 자체가 안 돌아갔다’고 말한다”며 기여도를 정교하게 따지기 시작하면 결국 모두가 억울해지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성과급 갈등은 이제 단순한 노사 갈등을 넘어 사업부 간 경쟁, 직군 간 갈등, 정규직과 협력업체 직원 간 대립, 원청·하청 갈등, 주주와 임직원 간 이해 충돌로까지 번지고 있다.

특히 플랫폼·ICT 기업 내부에서는 개발자와 마케팅·영업·지원 조직, 경영진 사이에서 누가 수익 창출에 더 기여했는지를 정량화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갈등이 복잡해지고 있다.

산업 호황 업종에서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달 초 노사 협상이 결렬되며 창사 이후 첫 파업을 겪었고, 두산에너빌리티 노조 역시 성과급 산정 방식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전자 사업부별 예상 특별성과급 자료삼성전자·업계
삼성전자 사업부별 예상 특별성과급 [자료=삼성전자·업계]

파장은 이미 대기업 담장을 넘어섰다.

고용노동부가 2025년 9월 발표한 기업체노동비용조사에 따르면 성과급은 한국 노동시장 양극화를 키우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2024년 기준 1000인 이상 대기업에서는 상여금과 성과급이 전체 임금의 약 24.7%를 차지한 반면, 중소기업은 약 8% 수준에 그쳤다.

격차를 벌린 것은 성과급이었다. 기본급 등 정액급여 격차는 대기업 471만원, 중소기업 399만원 수준이었지만 월평균 성과급·상여금은 대기업이 133만원으로 중소기업(34만원)의 약 4배에 달했다.

강남구의 한 중소기업 IT회사에 재직 중인 송 데이비드(35)씨는 “누구는 한 달 버티기도 빠듯한데 수억원대 성과급을 두고 갈등이 벌어진다는 것 자체가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진다”며 “중소기업 직원들은 대기업처럼 노조나 목소리를 낼 수도 없다”고 털어놨다.

갈등은 협력업체와 하청업체로도 번지고 있다.

국내 대기업 제조업 현장은 수많은 협력업체와 외주 인력에 의존해 운영된다. AI 호황으로 성과급 규모가 커지면서 구내식당·청소·경비 등 협력업체 직원들에게까지 성과급을 확대 적용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도 커지고 있다.

국내 한 제조업 직원 김 JW(28)씨는 “같은 사업장 안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정규직의 80% 수준 성과급을 지급하는게 합리적인가”라며 “결국 협력업체에 대한 반감만 키우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히 올해 시행된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원청의 사용자 책임 범위를 확대하면서 하청 노조들의 교섭 요구와 파업, 소송이 공급망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실제 SK하이닉스 물류 협력업체 노조는 원청인 SK하이닉스를 상대로 성과급 격차 해소 등을 요구하며 단체교섭을 요구했고, 한화오션에서도 급식업체 노조가 성과급 확대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성과급 논쟁은 주주와 임직원 간 충돌로도 이어지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기업 실적이 악화될 경우 손실은 주주가 부담하는 반면 호황기 이익은 직원 성과급으로 과도하게 배분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박병진 교수 사진박병진 교수 제공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박병진 교수 [사진=박병진 교수 제공]

이에 한양대 박 교수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단순히 영업이익의 몇 퍼센트를 일괄 배분하는 방식보다는 주주들에게 돌아갈 최소한의 자본 비용과 배당 재원을 먼저 반영한 뒤 남은 경제적 부가가치(EVA)를 기준으로 성과급 재원을 산정하는 방식”을 언급했다.

또한, 과도한 현금 성과급 대신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 등 장기 주식 보상 비중을 높이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급은 현금이 아니라 3~5년 뒤 처분 가능한 주식으로 지급해 임직원들도 단기 보상보다 기업 가치와 주가 상승에 더 이해관계를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보상 갈등은 기업 내부 분위기까지 바꾸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이제 회사 간 뿐 아니라 같은 회사 안에서도 사업부·직군·소속 조직별 보상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있다.

적자를 내는 반도체 사업부 엔지니어들은 온라인상에서 “같은 조직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원 인력이 자신들보다 더 많은 성과급을 받게 됐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과거 한국 대기업을 지탱했던 공동체 정체성도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엘리트 코스를 밟아 정유사에 어렵게 입사했다는 현 모(32)씨는 “예전에는 전자공학과 기준으로 정유사나 완성차 회사에 가는게 ‘엘리트 코스'라고 했는데 요즘은 반도체 성과급 뉴스 보면 ‘정신병 올 것 같다’고 신세한탄하는 직원들이 많다”며 탄식했다.

결국 한국 기업들은 AI 시대 ‘조직 안정’과 ‘성과 차등화’ 사이의 갈림길에 섰다.

박 교수는 현재 삼성의 성과급(OPI) 구조는 특정 사업부가 흑자를 내면 그 안의 구성원 전체가 함께 높은 보상을 받는 ‘집단 보상’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핵심 인재 한 명을 지키기 위해 1만 명에게 똑같이 보상해야 하는 구조가 되면서 기업에 엄청난 부담을 지운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집단 성과급 비중을 하향하고 절감한 재원의 일부를 대체 불가능한 핵심 엔지니어와 성과자 개인에게 직접 꽂아주는 타깃형 보너스(Retention Bonus)로 전환해야 기업 전체의 비용 부담을 완화하며 핵심 인재의 이탈을 막을 수 있다” 고 말했다.

삼성전자 잠정합의안에도 이런 흐름이 일부 반영됐다. 특별성과급 일부를 일정 기간 매각이 제한된 자사주(RSU)로 지급하는 방안이 담기면서, 단기 현금 보상 중심 구조에서 장기 주식 연계형 보상 체계로 옮겨가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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