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간이 없다.”
전쟁의 폐허에서 국가를 재건해야 하는 코소보의 디지털화 및 공공행정장관 (Minister of Digitalization and Public Administration) 루레존 자그휘(Lulezon Jagxhiu)가 얼마전 저자에게 탄식하듯 한 말이다. 날로 심해지는 기후위기의 직격탄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동시에 오랜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어야 하는 개발 도상국 정부 관리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 절박함에서 그는 한국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국의 성공 사례를 자신의 조국에서 재현하고 싶은 의지 때문이다.
한국을 주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수백년의 제국주의 정책으로 부를 키우고 마음껏 지구의 자원을 남용하며 부를 축적한 서양국가들은 그에게 소용없다. 그나마 그들이 오랬동안 제공했던 경제 지원도 트럼프 시대에는 미국을 선두로 뒷걸음 치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는 이웃을 침략한 독재정권이다. 일본은 그런 차원에서 안정된 선진국이고 실제로 개발 도상국에게 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개발 경험은 벌써 수 십년 전의 일이라 오늘 날 현실에 맞을지는 의문이 든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당연한, 어쩌면 유일한 개발의 모델 국가로 다가온다. 천연자원이 거의 전무하면서도 불과 한 세대 만에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한 놀라운 경제 발전. 시간이 촉박한 코소보 같은 나라에게는 한국의 '빨리빨리' 스타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한국의 개발 모델은 개발 도상국들이 앞 다투어 벤치마킹하는 대상이다. 시민 중심 도시 건설, 친 환경 산업 단지 구성, 합리적이고 이용이 편한 대중교통 개발 그리고 디지털 생활의 편의와 안전을 동시에 추구하는 공공정책. 한국에 사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기본 인프라, 그리고 이 인프라를 구축한 한국의 정책모델은 어느 개발 자금보다 더 귀중한 지식 플랫폼이 된 것이다.
이런 점은 얼마 전 세종시에서 개최된 세계은행의 한 행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 15년간 한국 정부가 출연하여 운영되어 온 세계은행 산하 한국녹색성장신탁기금 (Korea Green Growth Trust Fund, KGGTF) 행사였다. 재정경제부와 공동 주최한 '한국 녹색혁신의 날' 행사에는 앞서 언급한 코소보 장관을 비롯한 22개국의 대표들과 한국 정부, 공공기관, 민간업체들이 참석하여 한국의 개발 경험을 이들 국가들이 어떻게 배우고 실천하는지 발표했다. 협력 사례를 소개하며 미래의 협력 방안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는 기회도 가졌다.
한국 정부가 그동안 출연한 약 2122억원 (1억 4500만 달러)의 기금은 그간 조용히 마중물 역할을 하여 전 세계 30개국에서 인프라 건설, 행정 시스템 전환 등에 대한 지식 전수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금이 설립된 2011년 이후 이 기금의 지식 공유 프로그램은 대출 및 공동 금융 사업을 통해 실제 대규모 사업으로 연결되었고 그 규모는 약 53조원(359억 달러)에 달한다. 이 기록은 세계은행에서도 보기 드문 성과이다. 이 행사를 위해 방한한 세계은행 플래닛(Planet) 부총재 광저 천(Guangzhe Chen)은 한국이 개발도상국들에게 최고의 성장 모델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 바 있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보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인구가 1,120만 명에 육박하는 온두라스는 농업 의존도가 매우 높은 경제 구조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중요한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데이터베이스가 부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녹색성장신탁기금(KGGTF)의 60만 달러 지원 프로그램은 결정적인 돌파구가 되었다. 프란시스코 하비어 부에소 우클레스 (FransciscoJavier Buesco Ucles) 세계은행 선임 농업 경제학자는 한국의 조기 경보 시스템 덕분에 농민들이 극단적인 기후 이변에 대비할 수 있게 되었고 한국은 작물 모니터링과 수확량 예측 시스템 분야에서도 훌륭한 템플릿을 제공했다고 설명한다.
이제 온두라스는 예측 가능하고 '기후 스마트'한 농업 거버넌스를 실현하며,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모범 사례로 자리 잡았다.
케냐에게 'K-WASH'는 한류(Korean Wave)의 일환은 아니지만, 그 영향력만큼은 한류 못지않다. 케냐의 물·위생·보건(Kenya Water, Sanitation and Hygiene)을 의미하는 K-WASH는 KGGTF의 50만 달러 지원에 힘입어 추진되었다. 케냐는 모든 국민에게 장기적이고 보편적인 물과 위생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했지만, 많은 개발도상국이 공통으로 겪는 두 가지 난제에 부딪혀 있었다. 기후 변화로 가뭄과 홍수, 예측 불가능한 강우 패턴이 악화된 데다, 이를 해결할 정부 기관의 기술적 도구와 기획 시스템마저 고질적으로 부족했던 것이다.
이에 케냐 정부와 관련 기관 관리들은 KGGTF의 지원으로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일부는 직접 한국 대전을 방문해 수자원 관리와 기후 회복력 있는 인프라 분야에서 한국이 쌓아온 경험을 직접 배웠다. 한국 기관들과 같이 물 분야의 거버넌스와 재정 조달 방안을 개선할 수 있는 실무 모델을 함께 모색했다.
결국 이 사업은 2023년 말 승인된 세계은행의 4억 5,000만 달러 규모 케냐 정부 지원 'K-WASH'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데 직접적인 밑거름이 되었다. 이제 케냐는 물론 주변국들까지 지속 가능한 수자원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훌륭한 롤모델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온두라스와 케냐의 사례는 한국 정부의 작은 출연금이 한 국가의 시스템 전체를 바꾼 획기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들은 15년동안 전세계 30개국에서 수백 개에 이르고 있고 앞으로도 수많은 국가에서 계속될 예정이다. 그들에게 한국은 영원히 희망의 나라로 기억될 것이다.
▷전 CNN서울지국 지국장 ▷전 외교부 문화협력대사 ▷국제방송교류재단(아리랑국제방송) 사장 ▷전 대통령실 해외홍보 비서관 ▷전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전 뉴욕타임스 기자 ▷현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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