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 원칙 상식] 수도권 공화국의 위기…노무현 정신은 지역균형발전이었다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여권 인사들이 대거 모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7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공정과 균형, 포용과 인간 존중, 국민주권과 개혁의 가치를 강조한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와 범여권 인사들도 추도식에 참석했다.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기간과 맞물린 만큼 지지층 결집의 정치적 의미가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한국 정치에서 특별한 상징성을 갖는다. 그는 지역주의에 맞섰고, 권위주의적 정치 문화를 바꾸려 했으며,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정치적 이상을 남겼다. 대통령 권력을 낮추고 시민 참여를 강조했던 그의 철학은 지금도 한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자산으로 평가된다. 봉하마을 역시 단순한 추모 공간을 넘어 진보 정치의 상징적 장소가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입장하는 이재명 대통령 권양숙 여사 문재인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입장하는 이재명 대통령, 권양숙 여사, 문재인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계승 선언’이 아니라 실제 내용이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노무현 정신 계승’ 구호가 국민에게 설득력을 가지려면 지금의 정치와 국정 운영이 그 정신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이 남긴 핵심 유산은 특정 진영의 승리가 아니었다.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려 했던 정치 개혁의 의지였다. 그는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지역주의와 권위주의, 기득권 정치에 맞섰다. 권력의 정당성은 국민과의 소통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노무현 정신의 핵심은 결국 국민주권과 상식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지금 한국 정치가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는 점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정책 경쟁보다 진영 대결과 감정 정치가 앞선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AI 가짜뉴스와 음모론, 유튜브 기반 정치 선동, 상대 진영에 대한 낙인찍기가 선거판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지방선거임에도 지역경제와 산업 전략, 청년 일자리와 주거 문제보다 중앙정치의 대리전 구도가 더 부각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은 정권 심판론을 말하고, 국민의힘은 여당 견제론을 내세운다. 그러나 시민이 체감하는 교통·주거·복지·안전 문제는 상대적으로 밀려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시민 참여와 책임 있는 정치를 강조했다. 그러나 지금 국민은 정치 때문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갈등은 커지고, 진영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으며, 정치 언어는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노무현 정신을 말하면서도 정치가 분열과 증오를 키운다면 그것은 진정한 계승이라 보기 어렵다.
 
 
경제 측면에서도 돌아봐야 할 지점이 많다.
 
노 전 대통령은 균형발전을 국가 전략으로 제시했다. 수도권 집중이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지역 소멸을 부를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세종시와 혁신도시 정책 역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지금 한국 경제는 다시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고 있다. 지방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과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지방 대학과 중소도시는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 지방선거 역시 결국 지역경제를 누가 살릴 것인가의 문제여야 한다. 반도체와 AI, 바이오와 배터리 같은 첨단 산업 경쟁이 국가 미래를 좌우하는 시대에 지방정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단순한 토목사업이나 선심성 공약이 아니라 지역 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핵심 과제가 돼야 한다.
 
 
노무현 정신이 진정으로 계승되려면 이 지점에서 답을 내야 한다. 지역균형발전을 다시 국가 전략의 중심에 놓고, 지방정부가 단순 행정기관이 아니라 산업과 혁신의 플랫폼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사람 사는 세상”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하는 길이다.
 
 
권력기관 개혁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기득권의 반발에 흔들리지 않고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개혁은 특정 진영의 이익을 위한 정치적 도구가 아니라 국민 신뢰를 높이는 방향이어야 한다. 검찰 개혁이든 언론 개혁이든 핵심은 권력의 균형과 투명성이지, 또 다른 권력 집중이 되어서는 안 된다.
 
 
노 전 대통령이 남긴 또 하나의 교훈은 권력의 절제였다. 그는 대통령 권한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고, 지방분권과 시민 참여를 강조했다. 지금 정치권이 진정으로 노무현 정신을 말하려면 상대를 악마화하는 정치부터 줄여야 한다. 개혁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국민적 공감과 신뢰 속에서 완성돼야 한다.
 
 
이번 봉하 추도식은 단순한 추모 행사가 아니다.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상징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선거 동원의 감성 코드로만 소비돼서는 안 된다. 노무현 정신은 특정 진영의 독점물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 전체의 자산이어야 한다.
 
 
국민은 묻고 있다. 정치권이 말하는 ‘노무현 정신’이 과연 국민의 삶을 나아지게 만들고 있는가. 정치가 다시 상식과 통합, 실용과 균형으로 돌아갈 때 봉하의 추모도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노무현 정신의 진짜 계승은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로 증명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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