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미·중 정상회담 이야기-부문별 분석2] 이란 핵무기 동결과 호르무즈 해협 통행 공동성명, 언제부터 효력을 가질까
에이브 곽 입력 2026-05-15 10:41
기사공유
폰트크기
2026년 5월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의 진짜 무게는 단순한 미중 관계 관리에만 있지 않았다. 그 이면에는 중동 질서와 세계 에너지 흐름, 그리고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을 잠재우려는 거대한 계산이 함께 깔려 있었다.
특히 이번 회담에서 세계 외교가가 주목한 부분은 이란 핵문제와 호르무즈 해협 안정 문제였다. 공식 발표문은 비교적 절제된 외교 언어로 작성됐지만, 그 안에는 미국과 중국이 최소한 중동의 폭발적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담겨 있었다.
현재 세계경제는 사실상 세 개의 화약고 위에 서 있다. 첫째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이고, 둘째는 인공지능과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며, 셋째가 바로 이란 핵문제와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바닷길이 아니다. 전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약 3분의 1이 지나는 에너지 대동맥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카타르, 이라크, 이란의 원유와 액화천연가스가 이 좁은 해협을 통과해 아시아와 유럽으로 향한다. 만약 이 길이 봉쇄되거나 군사 충돌이 발생할 경우 국제유가와 해상운임, 보험료는 순식간에 폭등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미국과 이란은 핵개발 문제를 둘러싸고 오랜 줄다리기를 이어왔다. 미국은 이란이 핵무기 제조 능력에 근접하는 것을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반면 이란은 핵개발이 평화적 목적의 주권적 권리라고 주장해왔다.
문제는 우라늄 농축 수준과 핵시설 운영 범위였다. 서방은 이란이 실제 핵무기 제조 직전 단계까지 접근했다고 의심했고, 이란은 미국의 일방적 제재와 압박이 오히려 긴장을 키웠다고 반발했다.
여기에 이스라엘 문제가 겹친다. 이스라엘은 이란 핵무장을 국가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문제로 받아들인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필요할 경우 선제타격도 가능하다는 강경론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로 중동의 군사적 긴장은 대부분 이란 핵시설과 이스라엘 안보 문제를 중심으로 움직여왔다.
하지만 이번 베이징 회담 이후 외교가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는 이전과 다소 달라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지금은 중동의 전면 충돌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실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막대한 재정 부담과 대선 정치 일정,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를 안고 있다. 중국 역시 경기 둔화와 수출 감소, 부동산 리스크 속에서 안정적 에너지 공급이 절실하다.
결국 양국 모두 “이란 핵문제의 완전한 해결”보다 “위험한 폭발을 막는 관리 체제”에 더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즉 핵무기의 완전 폐기보다는 일정 수준의 동결과 국제 감시 강화,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적 통행 보장이 현실적 타협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중국과 이란의 관계는 최근 10년 사이 급속히 가까워졌다. 중국은 이미 이란의 최대 원유 수입국 가운데 하나이며, 사실상 이란 경제의 중요한 생명선 역할을 하고 있다.
양국은 장기 경제협력 협정을 체결해 에너지·인프라·철도·항만·통신 분야까지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서도 이란은 중앙아시아와 중동, 유럽을 연결하는 핵심 거점이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이란은 과거 페르시아 제국 시절부터 실크로드와 호르무즈 해협을 연결하는 전략 요충지였다.
중국 입장에서 이란은 단순한 산유국이 아니다. 미국 중심 해양 질서에 대한 전략적 완충지대이며, 에너지 안보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 축이다. 실제로 중국은 국제 제재 속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란산 원유 수입을 유지해왔다. 중국 정유기업들은 할인된 가격의 이란산 원유를 꾸준히 확보해왔고, 이는 중국 산업경제의 에너지 안정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해왔다.
반면 이란 역시 중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미국과 서방 제재로 국제금융망 접근이 제한된 상황에서 중국은 사실상 최대 교역 상대국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투자와 소비재 공급, 인프라 건설 참여는 이란 경제의 중요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도 이란을 무조건적으로 감싸기만 하기는 어렵다. 중국 경제는 여전히 미국과 유럽 시장에 깊이 연결돼 있고, 중동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에너지 가격 급등과 해상 물류 혼란으로 중국 경제 자체도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번 미중 정상회담의 의미가 나온다. 미국은 중국이 이란을 일정 수준 관리해주길 원하고, 중국은 미국이 중동 긴장을 과도하게 확대하지 않기를 원한다. 다시 말해 양국은 경쟁하면서도 동시에 중동 리스크 관리에서는 일정 부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호르무즈 해협 통행 안정과 이란 핵 동결 공동성명은 언제 실제 효력을 가질 수 있을까. 외교가에서는 단계적 접근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군사 충돌 자제와 해협 통행 안전 보장에 대한 비공식 합의가 먼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후 국제원자력기구의 감시 강화와 일부 우라늄 농축 제한, 제한적 제재 완화 등이 교환 조건으로 논의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물론 변수는 여전히 많다. 이스라엘 내부 강경파와 이란 혁명수비대의 입장 차이, 미국 대선 정국, 중동 내 대리전 문제는 언제든 협상을 흔들 수 있다. 특히 작은 군사 충돌 하나만 발생해도 국제유가는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세계는 지금 ‘완전한 승리’보다 ‘위험 관리’를 선택하려 하고 있다.
이는 냉혹한 현실주의다. 미국도, 중국도, 이란도, 심지어 이스라엘조차 전면전의 비용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중동에서 대규모 충돌이 발생하는 순간 세계경제는 다시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충격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게 이 문제는 더욱 절박하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은 나라다. 중동 원유와 액화천연가스 공급이 흔들릴 경우 제조업과 물류, 전력 비용 전체가 동시에 압박받게 된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이 불안해질 경우 한국 경제는 직격탄을 피하기 어렵다.
반대로 해협 안정과 중동 긴장 완화가 이어진다면 한국 경제에도 숨통이 트일 수 있다. 국제유가 안정은 물가와 환율, 무역수지 안정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은 단순한 양국 외교 이벤트가 아니다.
그것은 인공지능과 반도체 패권 경쟁 속에서도 세계경제의 마지막 안전판인 에너지 질서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의 표현에 가깝다. 중동의 사막을 지나가는 원유 수송선과 베이징 회담장의 외교 문장은 겉으로는 전혀 다른 세계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로 연결돼 있다.
세계 패권의 시대에도 결국 문명을 움직이는 것은 에너지이며, 그 에너지의 숨통은 여전히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