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미 간에는 미묘한 인식 차가 누적돼 왔다. 전작권 전환 시기를 둘러싼 시각차는 그 대표적 사례다. 한국은 2028년을 목표로 검토하는 반면, 미군 측에서는 더 늦은 시점을 언급하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일정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방위 체계의 주도권과 직결된 문제다. 전작권은 상징이 아니라 실질적인 군사 운용 권한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기본 원칙은 분명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은 궁극적으로 한국군의 자주적 방위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다만 시기와 속도는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군사적 준비 수준과 동맹의 신뢰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일정을 앞당기는 것은 오히려 안보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 반대로 준비가 충분함에도 전환이 지연된다면 이는 동맹 구조의 비효율을 드러내는 신호가 된다.
핵추진잠수함 문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한 전력 증강이 아니라 해양 전략의 확장과 연결된다. 북한의 잠수함 전력 고도화와 주변 해역의 군사적 긴장 상황을 고려할 때, 수중 억지력 강화는 불가피한 과제다. 그러나 핵추진잠수함은 기술 이전, 핵연료 문제, 비확산 체제 등 복잡한 국제 규범이 얽혀 있다. 한미 간 협의가 지연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이 사안은 단기적 성과보다 장기적 전략과 국제 규범의 균형 속에서 풀어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도전이다. 미국이 한국의 기여를 요청하는 배경에는 동맹의 역할 분담 확대라는 흐름이 자리 잡고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입장에서도 해상 교통로의 안정은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나 중동 지역 개입은 곧 외교적 부담과 군사적 리스크를 동반한다. 참여 여부와 방식은 단순히 동맹 요구에 응답하는 차원을 넘어 국익과 위험의 균형 속에서 결정돼야 한다.
대북 정보 공유 문제 역시 동맹의 신뢰를 시험하는 요소다. 정보는 현대 안보의 핵심 자산이다. 공유가 제한될 경우 작전 효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무조건적 공유는 주권과 직결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결국 핵심은 정보의 범위와 수준을 둘러싼 상호 신뢰의 복원이다. 이번 방미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한 솔직한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
안 장관의 방미가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직접 소통’이다. 동맹은 문서로 유지되지 않는다. 정상 간 합의나 공동 성명도 중요하지만, 실제 작동하는 것은 고위급 간의 지속적인 대화다. 최근처럼 다양한 현안이 동시에 부상하는 상황에서는 오해가 누적되기 쉽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직접 만나 입장을 확인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언급한 “동맹은 정원과 같다”는 표현은 의미를 곱씹을 필요가 있다. 정원은 방치하면 금세 흐트러진다. 잡초가 자라고 균형이 깨진다. 반대로 꾸준히 관리하면 다양한 요소가 조화를 이루며 유지된다. 한미 동맹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구조가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와 조정이 필요한 관계다.
이번 방미는 그 관리의 한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단기 성과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다. 모든 현안을 한 번의 회담에서 해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신 각 사안에 대한 입장 차를 명확히 하고, 향후 협의의 틀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동맹은 일회성 합의가 아니라 지속적 협의의 구조 위에서 작동한다.
또한 안보 협력은 군사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에너지, 반도체, AI 등 전략 산업과도 깊이 연결돼 있다. 조현 장관이 강조한 경제·기술 협력은 단순한 산업 정책이 아니라 안보의 연장선이다. 데이터센터 확장과 전력 수요, 핵연료 공급 문제까지 연결되는 구조 속에서 한미 협력은 더욱 복합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이 점에서 이번 방미는 군사 동맹을 넘어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의 전환을 점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안보와 경제, 기술이 결합된 새로운 동맹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양국 간 협력 범위를 넓히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전략적 공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와 직결된다.
결국 핵심은 균형이다. 자주성과 동맹, 속도와 신중함, 참여와 거리두기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정책은 지속 가능성을 잃는다. 동맹을 강화하는 과정에서도 우리의 판단 기준과 국익은 분명히 유지돼야 한다.
안규백 장관의 이번 방미는 이러한 균형을 점검하는 자리다. 동맹은 흔들릴 때 더욱 관리가 필요하다. 갈등이 드러났다는 것은 오히려 조정의 기회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덮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조율하는 과정이다.
한미 동맹은 여전히 한국 안보의 핵심 축이다. 그러나 그 형태와 내용은 시대 변화에 맞게 조정돼야 한다. 이번 방미가 단순한 의례적 방문을 넘어, 변화하는 안보 환경 속에서 동맹의 방향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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