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의 발 지킨 발명왕"…권동칠, 가난 딛고 연 매출 3000억 신화

  • 초경량 등산화·전투화 혁신 이끈 토종 신발 브랜드 창업자

신발에 미친 남자로 불리는 권동칠은 군인 경찰 소방관 등의 신발을 제작해 연간 50만60만 켤레를 국가에 납품하고 있다 사진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신발에 미친 남자'로 불리는 권동칠은 군인, 경찰, 소방관 등의 신발을 제작해 연간 50만~60만 켤레를 국가에 납품하고 있다. [사진=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가난을 딛고 연 매출 3000억원 신화를 일군 '신발 백만장자' 권동칠의 인생사가 공개됐다.

6일 방송된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는 '군인의 발을 지키는 신발 발명왕' 권동칠 편으로 꾸며졌다.

자타공인 '신발에 미친 남자'로 불리는 권동칠은 군인, 경찰, 소방관 등의 신발을 제작해 연간 50만~60만 켤레를 국가에 납품하고 있다. 특히 기존의 무겁고 딱딱했던 군 전투화를 가볍고 편안하게 개선하며 국군 장병들의 발을 지켜온 인물이다.

이날 방송에서는 권동칠이 개발한 다양한 신발 컬렉션이 공개됐다. 그중 거미의 발 구조를 응용해 만든 이른바 '거미 신발'에 얽힌 비화가 눈길을 끌었다. 해당 제품은 출시 직전 전량 폐기됐다고. 탈옥수 신창원이 도피 과정에서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가 물건을 훔쳤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벽에 달라붙는 기능을 지닌 신발이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권동칠은 서장훈의 신발만 보고도 그의 습관을 짚어내 감탄을 자아냈다. 그는 서장훈에게 "신발 신고 벗는 걸 싫어하시죠?"라고 물었고, 서장훈은 "선수 시절 신발 끈을 꽉 묶어야 해서 손에 굳은살이 박일 정도였다. 그게 너무 힘들어서 지금은 웬만하면 슬리퍼를 신는다"고 전했다.

그의 성공 뒤에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권동칠은 "방학 때는 하루 세끼를 제대로 먹지 못했고, 신발도 달랑 한 켤레뿐이었다"고 회상했다. 돈을 벌기 위해 대학 졸업 전 신발 회사에 입사한 그는 해외 유명 브랜드의 위탁생산을 담당하며 20대에 해외 영업 책임자 자리까지 올랐다.

권동칠의 성실함과 능력을 눈여겨본 해외 바이어의 투자로 그는 1988년 창업에 나섰다. 1994년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토종 신발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자체 브랜드를 설립했다. 이후 1998년 계란 4개 무게에 불과한 290g 초경량 등산화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제품은 등산화에 대한 기존 인식을 바꾸며 브랜드 성장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권동칠은 한때 연 매출 최대 3000억원을 기록하며 신발 업계의 성공 신화를 썼다 사진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권동칠은 한때 연 매출 최대 3000억원을 기록하며 신발 업계의 성공 신화를 썼다. [사진=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한때 연 매출 최대 3000억원을 기록하며 신발 업계의 성공 신화를 쓴 권동칠. 하지만 화려한 성과 뒤에는 끊임없는 연구개발에 따른 부담도 있었다. 그는 "새롭고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다 보니 개발비로만 수백억 원을 썼다"며 "'신발 개발하다 회사 망한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서장훈이 "그 돈으로 빅 모델을 썼다면 더 큰돈을 벌 수도 있지 않았겠냐"고 묻자, 권동칠은 "돈을 스타에게 쓰기보다 제품에 투자하는 것이 소비자에 대한 보답"이라고 답하며 기업 철학을 드러냈다.

최근 인생 최대 위기도 겪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유럽 수출이 급감하면서 회사가 큰 타격을 입었고, 결국 회사 건물까지 매각해야 했다. 그러나 이 소식이 전해지자 부산 시민들이 "향토 기업을 살리자"며 자발적인 구매에 나섰다. 매장 앞에는 오픈런이 이어졌고, 그의 전투화를 신고 복무했던 예비역들도 "이런 기업이 잘돼야 한다", "절대 망하면 안 된다"며 응원을 보냈다.

권동칠 역시 받은 사랑을 다시 사회에 돌려줬다. 2024년 영남 지역에 대형 산불이 발생하자 그는 이재민들을 위해 신발 수천 켤레를 기부했다. 이 밖에도 산악인 후원 활동과 '평생 A/S' 서비스 등을 이어가며 기업인의 책임을 실천하고 있다.

방송 말미 권동칠은 "한국 신발 브랜드가 세계적인 브랜드를 뛰어넘어 세계 1위에 오르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가난했던 소년에서 대한민국 신발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성장한 그의 이야기가 깊은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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