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웰컴, KB저축은행 매출채권 사기, 제도 허점과 관리 실패 동시에 바로잡아야

웰컴저축은행과 KB저축은행에서 발생한 자동차 부품 매출채권 담보 대출 사기는 단순한 금융사고로 보기 어렵다. 누적 취급액 3000억원, 피해 규모 1000억원 안팎이라는 수치보다 더 심각한 것은 금융 시스템의 취약한 고리가 그대로 노출됐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는 제도의 허점과 현장의 관리 실패가 결합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다.


먼저 원인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1차 책임은 제도 설계에 있다. 자동차 수리비 견적서를 매출채권으로 인정하고 이를 근거로 대출을 실행하는 구조는 본래 중소업체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한 취지였다. 그러나 거래 실체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서류 기반 채권’으로 간주한 순간, 사기의 여지는 이미 열려 있었다.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거래의 진정성이 보장된다고 본 판단 자체가 구조적 취약점이었다.


그 위에 2차 문제로 금융회사의 심사 관리가 얹혔다. 매출채권 금융은 단순 담보대출이 아니다. 거래의 실재성과 회수 가능성을 함께 검증해야 하는 고난도 영역이다. 그럼에도 일부 금융사는 시스템 자료에 대한 의존에 치우쳐 개별 거래의 실질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영업 확대 과정에서 위험 신호를 충분히 걸러내지 못한 책임 역시 분명하다. 결국 문은 열려 있었고, 관리도 허술했다.

금융감독원 사진연합뉴스
금융감독원 [사진=연합뉴스]


이번 사건의 핵심 수법인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한 한도 회피 역시 가볍게 넘길 수 없다. 동일인 대출 규제를 피하기 위해 법인을 쪼개는 방식은 오래된 금융 기법이다. 문제는 이러한 ‘형식적 분산’이 실제로는 동일한 실체라는 점을 사전에 걸러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 단순한 서류 검증만으로는 이런 구조를 차단할 수 없다.


따라서 해법도 이중으로 설계돼야 한다. 첫째는 거래 자체의 진위를 가리는 검증 체계다. 보험개발원의 견적, 실제 수리, 보험금 지급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을 교차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 연계 시스템이 필요하다. 둘째는 차주의 실체를 추적하는 관리 체계다. 법인 명의가 아니라 최종 지배자 기준으로 대출을 통합 관리해야 한다. 거래 검증과 차주 추적이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구조적 사기를 막을 수 있다.


이번 사건은 ‘신뢰’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한다. 그동안 금융은 시스템과 서류에 기반한 신뢰 위에서 작동해 왔다. 그러나 이번 사례는 검증 없는 신뢰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제 필요한 것은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검증을 전제로 한 신뢰다. 데이터와 교차 확인을 통해 구축된 신뢰만이 금융을 지탱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규제 강화만을 해법으로 제시하는 것도 위험하다. 매출채권 담보 대출은 본래 자금 조달이 어려운 중소업체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다. 심사 기준과 절차를 일률적으로 강화할 경우, 정작 필요한 기업들이 금융에서 배제될 수 있다. 범죄 차단과 금융 접근성이라는 두 목표가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해법은 정밀한 차등 설계에 있다. 거래 이력이 축적된 우량 업체에는 절차를 간소화하되, 신규 거래나 위험 징후가 있는 경우에는 정밀 심사를 적용해야 한다. 공공 데이터와 민간 데이터를 연계해 검증 비용을 낮추면서도 정확도를 높이는 방식도 필요하다. 모든 문을 닫는 규제가 아니라, 위험한 곳만 정확히 걸러내는 체계가 요구된다.


감독 당국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금융감독원은 개별 금융회사 검사에 그치지 말고, 매출채권 금융 전반에 대한 기준을 재정비해야 한다. 특히 데이터 연계, 차주 통합 관리, 이상 거래 탐지 시스템 등 새로운 감독 수단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금융 환경이 변한 만큼 감독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이번 사태는 금융의 기본을 다시 묻는다. 금융은 신뢰를 기반으로 하지만, 그 신뢰는 철저한 검증 위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고, 현장의 책임을 강화하며, 규제와 접근성의 균형을 맞출 때 비로소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는다.


눈앞의 손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금융이 다시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원점에서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매출채권 금융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점검해야 할 때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