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초집적 기술 경쟁의 시대 … 삼성전자 노사갈등에 쏠린 세계의 시선

곽재원 논설위원장
[곽재원 논설위원장]
 
세계 증시의 열기와 한국의 불안한 속살

요즘 글로벌 증시 뉴스를 보면 마치 축제 분위기다. 미국의 S&P 500 지수는 2022년 10월 바닥을 찍은 이후 불과 3년 반 만에 두 배로 뛰어올랐다. 미국의 저명한 시장 분석가 라이언 데트릭이 1950년부터 74년간의 강세장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주가가 바닥 대비 두 배가 되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은 3년 9개월이다. 지금 미국 증시는 그 역사적 평균보다도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더욱이 강세장이 정점에 도달하기까지는 평균 6년 9개월이 걸린다는 통계를 감안하면, 아직도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는 낙관론—이른바 '업사이드 크러시(Upside Crush)'—이 전 세계 투자자들의 심리를 지배하고 있다.

한국도 이 흐름에 탑승한 것처럼 보인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이 가파르게 회복되고, 개인 투자자들은 다시 '반도체 대장주'를 외치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그런데 잠깐, 한 걸음 물러서서 냉정하게 따져보자. 과연 한국 경제의 내부 체력은 미국이나 일본처럼 탄탄한가? 화려한 지수와 실적이라는 외피 뒤에서, 세계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지켜보는 한국만의 '구조적 모순'이 똬리를 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상승은 '운'이 아니다

미국과 일본 증시의 강세를 단순히 ‘돈이 많이 풀렸으니까’라고 설명하면 본질을 놓친다. 그 이면에는 'AX(AI 전환, AI Transformation)'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 앞에서 국가와 기업이 방향을 하나로 맞추고 단행한 과감한 거버넌스 개혁과 천문학적 인프라 투자가 자리한다. 엔비디아를 보자. 이 회사의 주가가 3년 새 수십 배로 뛴 것은 단순한 투기 수요 때문이 아니다. GPU 설계에서 소프트웨어 생태계(CUDA)까지 AI 산업 전반을 장악하는 전략을 수십 년에 걸쳐 집요하게 실행한 결과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에 수조 원을 투자하면서 클라우드와 AI를 융합하는 사업 모델을 재편했고, 구글은 자체 AI 칩(TPU) 개발과 제미나이 모델 고도화에 막대한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 이 기업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번 돈의 상당 부분을 다시 미래에 투자한다. 주주 배당이나 직원 임금 인상보다 기술 우위를 지키는 데 우선순위를 둔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의 '잃어버린 시간'에서 깨어난 일본은 정부 주도로 반도체 국산화 프로젝트(라피더스)를 추진하고, 해외 자본 유치를 위해 기업 지배구조를 대대적으로 손질했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이하 기업에 개선 계획을 요구하는 이례적인 조치를 단행했고, 이것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신호탄이 됐다. 국가가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고, 기업이 그 방향을 따라 내부 체질을 바꾼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세계적 수준의 기업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그 기업들이 힘껏 날개를 펼치도록 국가가 환경을 조성해주고 있는가? 솔직히 말하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금 한국이 세계에 생중계하고 있는 장면은 정반대다.
 
번 돈을 미래에 쓸 것인가, 현재에 나눌 것인가

삼성전자는 2023년 반도체 부문에서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폭락하면서 재고가 쌓이고, 이익이 증발했다. 그러나 삼성은 이 어려운 시기에도 28조 원이 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연구개발(R&D) 투자를 집행했다. 매출액 대비 10%를 훨씬 웃도는 이 투자는, 당장의 손익보다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절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적자 속에서도 미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생존형 투자'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삼성전자 노조가 최근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요구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단순한 임금 인상 요구를 넘어선다. 영업이익의 상당 비율을 성과급으로 고정하라는 요구, 휴가 체계 확대, 각종 복지 강화—이것들이 한데 묶여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 개별 항목만 보면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전체 그림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문제의 핵심은 '타이밍'과 '규모'다. 지금 이 순간, 전 세계 AI 경쟁은 문자 그대로 초단위로 진행되고 있다. 엔비디아는 새로운 칩 아키텍처를 설계하고, 인텔과 AMD가 추격을 가하며, TSMC는 2나노 이하 공정에서 기술 장벽을 높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뒤처지고, 파운드리 사업에서 TSMC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잇따르는 상황이다.

이 국면에서 기업이 집중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자본을 아껴 첨단 설비에 투자하고, 최고 인재를 확보하며, 기술 격차를 좁히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삼성은 노조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에너지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사들이 1달러를 아껴 서버와 전력망에 투자할 때, 한국의 초규모 노조는 기업의 '미래 체력'을 헐어 '현재의 지갑'을 채우자고 압박하고 있다. 이 대비가 너무도 선명하다.
 
삼성, 진짜 괜찮은 건가?’

글로벌 기관 투자자들, 즉 연기금과 헤지펀드와 자산운용사들은 한국 기업에 투자할 때 재무 지표만 보지 않는다. 그들은 기업의 거버넌스(지배구조)와 내부 리스크를 꼼꼼히 살핀다. 노사 관계의 안정성, 경영진의 의사결정 속도, 내부 갈등이 전략 실행에 미치는 영향—이런 것들이 투자 판단의 중요한 변수가 된다. 이 관점에서 지금 삼성전자가 세계에 보내고 있는 신호는 우려스럽다. 최첨단 HBM을 설계하고 파운드리 2나노 공정을 다투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기업이 19세기적 계급 투쟁의 언어로 무장한 노조의 파업 위협과 대치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노출하고 있다. 한 외국계 운용사 관계자의 말이 상징적이다. "삼성이 기술 면에서는 세계 톱이지만, 경영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노사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포지션을 재검토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이미지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 특히 삼성전자에 대한 비중을 줄이는 흐름이 지속되는 배경에는 이런 구조적 불안 요인이 자리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기업의 주가가 글로벌 동업종 대비 낮게 평가받는 현상—의 원인을 따질 때 노사 리스크가 빠지지 않는 이유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노조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인가? 물론 아니다. 근로자의 권익 보호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가치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권익 보호'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에 개입하고, 미래 투자 재원을 현재의 분배로 전환하도록 구조적으로 압박하며, 경영의 불확실성을 주기적으로 높이는 방식은 더 이상 '노동권'의 영역이 아니다. 이것은 '기업 경쟁력의 지속 가능성' 문제이고, 나아가 국가 산업의 미래 문제다.
 
AI 시대의 속도전과 한국의 내부 크러시

AI 산업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속도'다. 기술이 6개월~1년 단위로 세대 교체되고, 시장의 주도권이 순식간에 바뀐다. 2년 전까지만 해도 AI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의 HBM 경쟁력에 의문을 다는 목소리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를 굳히는 동안, 삼성은 품질 이슈와 공정 지연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는 투자 결정이 빨라야 하고, 내부 에너지가 기술 개발에 집중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삼성전자 경영진이 노조와의 협상에서 소모하는 시간과 자원이 결코 작지 않다. 파업이 실제로 발생하면 생산 차질은 물론, 고객사들의 신뢰가 흔들린다. 협상 과정에서 내부 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위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내부 크러시(Internal Crush)'—외부의 경쟁 압력이 아니라 내부의 구조적 갈등이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현상—의 전형적인 징후다.

비교를 해보자.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는가. 젠슨 황엔비디아 CEO가 새 칩 아키텍처를 발표하기로 결정하면, 그 결정이 실행으로 이어지는 데 조직 내부의 저항이 거의 없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AI와 파트너십을 맺고 수조 원을 집행하기로 했을 때, 그 결정을 되돌리거나 지연시키는 내부 압력은 없었다. 이 기업들이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전략적 투자 결정'과 '내부 분배 갈등'이 서로 뒤엉켜 경영의 발목을 잡는 구도는 아니다.

한국의 구도는 다르다. 초집적 기술—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설계와 제조 역량—을 보유한 기업이, 그 기술을 지탱할 자본 축적을 구조적으로 방해받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것은 마치 세계 최고의 스프린터가 발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는 형국이다.
 
분배인가, 성장인가 — 이분법을 넘어서

이 시점에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분명히 해두자. 이 글은 노동자의 권리를 부정하거나, 기업이 이익을 독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속 가능한 성장 없이는 지속 가능한 분배도 없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져 수익성이 무너지면, 그 피해를 가장 먼저 받는 것은 누구인가? 주주들도, 경영진도 아니다.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들이다. 협력업체들이다. 삼성 생태계에 기대어 살아가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다. 더 넓게 보면, 삼성의 경쟁력 약화는 한국의 수출과 세수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그 여파는 전 국민에게 돌아온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의 노사 갈등은 단순히 '사용자 대 노동자'의 대립이 아니다. '현재의 이익'과 '미래의 생존' 사이의 갈등이다. 그리고 이 갈등의 해법은 어느 한쪽의 완전한 승리가 아니라,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을 보전하면서도 성과를 합리적으로 나누는 새로운 틀의 마련에 있다. 문제는 그 새로운 틀을 만들 주체가 기업과 노조만의 협상으로는 등장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협상의 구조 자체가 단기적 이해관계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은 결국 정부로 넘어간다.
 
정부의 역할 — 중재자가 아닌 설계자로

지금까지 한국 정부의 노사 문제 접근 방식은 대체로 '중재자' 역할에 머물렀다. 갈등이 표면화되면 개입하고, 타협을 유도하고, 사태가 진정되면 물러서는 방식이다. 이 방식이 통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AI 시대, 초집적 기술 경쟁의 시대에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정부는 이제 '설계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노사 관계의 판 자체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새로 설계하는 것이다. 첫째, 노동 유연성의 확대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기업이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려면 인력 운용의 유연성이 필수다. 지금처럼 인력 구조조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환경에서는, 기업이 장기 투자를 꺼리게 된다. 채용을 줄이고 자동화와 해외 이전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내몰린다. 둘째, 전략 자산 보호 원칙의 명문화다. 국가 안보와 경제 핵심에 해당하는 기업의 경우, 집단행동으로 인한 생산 차질이 국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제도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것은 노동권의 제한이 아니라, 국가 전략 자산 보호라는 또 다른 공익의 실현이다.

셋째, 성과 공유 모델의 혁신이다. 단기 임금 인상이나 성과급 고정이 아니라, 기업의 장기 성과와 연동되는 주식 기반 보상, 성과 공유 펀드 등 새로운 분배 모델을 정부가 적극 설계하고 제도화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도 기업의 장기 성공에 이해관계를 갖게 되고, '현재 분배 vs 미래 투자'의 갈등 구도가 완화된다. 넷째, 명확한 메시지다. 정부는 시장과 투자자, 그리고 국민에게 분명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 한국은 기술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내부 구조를 과감히 바꿀 의지가 있다는 것을, 그것을 뒷받침할 법과 제도를 갖출 것이라는 것을. 이 메시지 하나가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어떤 구체적 정책보다 강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진정한 '업사이드 크러시'를 위하여

라이언 데트릭의 74년치 데이터가 말하는 강세장의 조건은 단순하다. 탄탄한 이익 성장과 기술 혁신,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거버넌스의 신뢰. 이 세 가지가 맞물릴 때 강세장은 오래 지속된다. 한국에는 이미 세계가 부러워하는 기술이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역량, POSCO의 소재 기술, 현대차의 전동화 속도—이것들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수십 년의 투자와 인내, 수많은 엔지니어들의 헌신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 소중한 자산을 지키고 더 키우기 위해서는, 지금 내부를 갉아먹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직시해야 한다. 초집적 기술 기업이 구시대적 분배 논리에 발목 잡히는 기형적 구도를 방치하는 한, 한국의 '업사이드 크러시'는 신기루에 그칠 것이다.

삼성전자의 자화상이 눈물로 얼룩지기 전에, 기업과 노조와 정부 모두가 한 발씩 물러서서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 오늘의 더 많은 나눔이 내일의 나눌 것 자체를 없애버릴 수 있다는 역설, 지금 한국 경제가 마주한 이 냉혹한 현실을 우리 모두가 직시해야 할 때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광주과기원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 교수, 가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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