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보다 도드라진 영상미로 ‘스타일리스트’라는 칭호를 갖고 있는 이명세 감독이 다큐멘터리에 도전했다.
시네마틱 다큐멘터리로 명명된 영화 ‘란 12.3’은 2024년 12월 3일 밤을 촘촘하게 되살린 영상 기록물이면서 거장 이명세 감독이 엮은 거대한 콜라주다.
이명세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라면 으레 있을 내레이션이나 인터뷰 컷을 전혀 쓰지 않고 오직 음악과 자료화면, 그리고 연출된 약간의 추가 영상들을 짜깁기 해 96분짜리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다큐멘터리로서는 가히 파격적인 형식이다. ‘시네마틱’이라는 수식어를 굳이 붙인 이유도 영화를 보는 내내 이해할 수 있다. 8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광주 한 단관극장의 스크린을 2번이나 열어젖히는 것으로 시작된 영화는 이것이 다큐인 동시에 시네마이며 영화 속 영화라고 선언하고 있다.
여기에서 ‘시네마틱’이라는 것은 ‘란 12.3’이 픽션이라는 뜻이 아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관객들에게 그날 밤을 집단 체험토록 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1년이 넘도록 방송·신문과 유튜브, SNS 등 각종 매체를 통해 수많은 보도와 콘텐츠들로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대해 관객들은 그 경위를 대체로 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새삼스럽게 계엄의 그날 밤을 관객들에게 이제 와 어떻게 마주하게 할 것인가.
이명세 감독은 머뭇거리지 않는 조롱과 엄중한 현실에 짓눌리지 않는 위트, 빈틈없이 채워진 기록의 구성과 혁명의 빛을 향한 무한한 경외 등 계엄 시국과 관련된 다방면의 감정을 절제하지 않고 오히려 과잉해서 표현한다.
뉴스를 통해 수십 번 본 비상계엄 선언 중계 장면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자막이 슬그머니 끼어들 듯 화면으로 들어오고 대통령을 뒤따르는 수행원의 묘한 표정이 클로즈업 되는 오프닝을 보면 이 영화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인지 짐작이 된다.
몸을 푸는 듯 조롱으로 시작된 영화는 장중한 오케스트라를 배경으로 귀가 찢어질 듯한 효과음이 얹어진다. 이어서 무성영화에서나 보던 검은 화면에 계엄에 동조했던 세력들의 대화가 자막으로 찍혀 나온다.
그리고 당시 야당 대표의 라이브, 경악하는 실시간 유튜버의 반응, 국회로 모여든 시민들의 고함소리, 국회 안을 사수했던 보좌관들과 국회 직원들의 일사불란한 대응, 본회의장에 집결한 국회의장과 국회의원들의 초조하기 이를 데 없는 생생한 대화와 반응들.
익히 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날 밤의 내막이, 이명세 감독이 고른 갖가지 재료들과 조성우 음악감독이 만들어낸 음악들이 어우러져 과잉된 영화적 언어로 재조립돼, 마침내 다큐멘터리 장르 사상 아마도 가장 거대할 콜라주로 재탄생됐다.
96분짜리 감각적인 팝아트 작품을 보는 듯한 ‘란 12.3’은 영화적이기도 한데 한 걸음 더 나아가 회화적이기까지 하다. 그날 밤 여의도로 출동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히어로물을 주로 그렸던 미국의 코믹스처럼 표현한 부분이 특히 그렇다.
이 영화를 보고자 하는 관객들은 각자의 이유와 목적이 있을 테다. 하지만 적어도 2024년 12월 3일 밤에서 4일, 양일간의 사건을 차분히 정리해놓은 기록물을 보려했다면 이 영화는 틀린 선택이다. 한편의 첩보, 스릴러, 블랙코미디, 난장 소동극을 보고 싶다면 그 편이 오히려 더 맞다. 그리고 ‘난장·소동·첩보·스릴러’를 볼 때의 장르적 쾌감을 부족하지 않게 이 영화는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만큼 ‘란 12.3’은 내용보다는 형식이 눈에 띄는 영화다. 아무리 이명세 감독이 ‘스타일리스트’로서 명성이 자자했더라도,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기존의 것과 얼마나 다르겠냐는 염려는 기우였다. 이토록 새로운 다큐멘터리 영화가 칠순을 앞둔 이명세 감독에게서 비로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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