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선거판 흔드는 사법 리스크, 정치가 법 위에 설 수는 없다
아주경제 입력 2026-04-2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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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다가오면 정치는 국민 앞에 미래를 제시해야 한다. 지역경제를 어떻게 살릴지, 청년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지, 저출생과 고령화 같은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풀지 경쟁해야 한다. 유권자가 투표소로 향하는 이유도 결국 더 나은 삶에 대한 선택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의 선거판은 번번이 다른 길로 흐른다. 정책과 비전은 뒤로 밀리고, 공천 잡음과 재판 일정, 전과 논란과 당내 갈등이 앞자리를 차지한다. 선거가 민주주의 축제가 아니라 사법 리스크 경연장처럼 비치는 이유다.
최근 여야를 막론하고 각 당의 재보궐선거와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 후보자의 전력과 재판 이력, 도덕성 문제가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특정 인물의 출마를 둘러싸고 당 지도부와 지역 조직이 충돌하고, 경선 결과에 반발하는 단식과 공개 비판도 이어진다.
일부 후보는 법적 논란이 선거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다른 후보는 상대 진영의 사법 문제를 집중 공격하며 선거 전략으로 활용한다. 국민이 보고 싶은 것은 미래 청사진인데, 정치권은 과거의 문제를 들춰내는 데 더 익숙해 보인다.
정당 공천은 단순한 내부 인사가 아니다. 공천장은 국민에게 보내는 추천서다. 이 사람에게 입법권과 행정권, 예산 심의권을 맡겨도 된다고 보증하는 정치적 약속이다. 그렇다면 정당은 후보자의 전문성뿐 아니라 준법 의식과 도덕성, 지역사회 평판까지 엄정하게 살펴야 한다.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만 보고 검증을 느슨하게 한다면, 정당은 스스로 공적 책임을 포기하는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법의 잣대가 진영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우리 편 인사가 수사를 받으면 정치 탄압이라 주장하고, 상대편 인사가 같은 처지에 놓이면 정의 실현이라 말한다. 자당 후보의 전과는 과거의 실수라 감싸면서 상대 후보의 흠결은 정치 생명을 끊어야 할 중대 사안처럼 몰아간다. 법적 원칙보다 정치적 유불리가 먼저 작동하는 구조다. 이런 선택적 법치가 반복되면 국민은 어느 주장도 믿지 않게 된다.
무죄 추정 원칙은 존중돼야 한다.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 혐의를 사실로 단정해선 안 된다. 그러나 무죄 추정이 곧 정치적 면책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공직 후보자는 일반인보다 더 높은 윤리 기준을 요구받는다. 법원 판결과 별개로 국민 눈높이에서 설명해야 할 책임도 있다. 반대로 단순 의혹 제기만으로 정치적 사형선고를 내리는 풍토 역시 경계해야 한다.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선거철마다 특정 사건의 수사 속도와 기소 시점, 재판 일정이 정치적 해석의 대상이 되는 현실은 바람직하지 않다. 법 집행은 오직 증거와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정치 일정에 흔들린다는 의심을 받는 순간 기관의 권위와 신뢰는 훼손된다. 법은 정치의 무기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안전장치여야 한다.
정당 내부 민주주의 역시 바로 서야 한다. 경선에 참여하고도 결과에 승복하지 못해 거리 투쟁과 단식, 공개 비난으로 이어지는 모습은 유권자에게 피로감만 준다. 정당이 내부 규칙조차 지키지 못하면서 국가 운영 능력을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공천 때마다 반복되는 계파 충돌과 원칙 없는 전략공천은 정치 혐오를 키우는 대표적 원인이다.
또 유권자들의 “우리 편이면 괜찮다”는 태도는 결국 정치 전체의 수준을 떨어뜨린다. 선거는 응원전이 아니라 공적 책임자를 선출하는 절차다. 능력과 비전, 도덕성, 준법 의식이 함께 평가돼야 한다. 한 표는 진영의 방패가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를 정하는 권한이다.
선거는 권력을 나누는 절차지만, 법치는 국가를 지탱하는 질서다. 권력은 바뀔 수 있어도 법의 권위까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정치가 법 위에 서려는 순간 민주주의는 특권 경쟁으로 변질된다. 이번 선거만큼은 사법 리스크와 공천 파동이 아니라 원칙과 책임의 경쟁으로 기록돼야 한다. 누구도 법 위에 설 수 없다는 가장 단순한 원칙부터 다시 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