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의 공정경제] 공급망 쇼크가 앞당긴 뉴노멀 …AI와 지배구조의 만남

이용우 전 국회의원
[이용우 전 국회의원]



2026년 미국의 이란 공격과 그에 따른 종전 협상은 현대 경제 체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전략적 가치를 극명하게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의 봉쇄는 단순히 에너지 가격의 상승을 넘어 전 세계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공급망 쇼크로 전이되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에서 30%가 통과하는 핵심 동맥일 뿐만 아니라 석유화학 제품과 중간재 공급의 22%를 담당하는 중추적인 결절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에너지와 원자재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지장학적 위기에 가장 크게 노출된 국가다. 최근 수년간 한국의 석유화학 산업은 중국 기업들의 공격적인 설비 증설과 저가 물량 공세로 인해 심각한 수익성 악화와 존폐의 기로에 서 있었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로 인해 중국산 나프타와 기초 원료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역설적으로 한국 제조업의 생산 역량과 글로벌 가치사슬(GVC) 내에서의 역할이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호르무즈 쇼크는 이 고정관념을 흔든다. 구조적 공급과잉으로 '존폐'가 거론되던 산업도 원료 조달 경로가 막히는 순간 ‘공급 부족’과 ‘가동률 저하’가 동시에 발생하며 산업 지형이 단기간에 바뀐다. 이 변화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가치사슬은 미리 설계해 박제할 대상이 아니라 상황 변화에 따라 유동적으로 최적화해야 하는 ‘전략의 연속’이 되는 것이다.

이는 급격한 가치사슬의 재편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전략적 방향을 미리 선제적으로 정의하는 것의 문제를 드러낸다. 변화하는 국제 정세와 시장 환경에 대응하여 유동적이고 탄력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기존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제조업 기반을 현대화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한국은 세계 5대 제조업 강국으로서 GDP의 약 27%를 제조업에서 창출하고 있으며, 고용의 25%가 이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는 견고한 기반을 갖추고 있다. 이 기반 위에 인공지능(AI) 기술을 결합하여 생산성을 극대화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제조업의 가치'가 단지 ‘공장’이 아니라 전쟁·제재·봉쇄 같은 불연속 충격 속에서 수급·가격·원료·물류·보험·금융비용이 재배열될 때 살아남는 능력으로 재정의되고 있음을 보고 있다. 그 능력은 결국 생산기술, 대체조달, 재고·운전자본 관리, 그리고 빠른 의사결정 체계이다.
 
  1. 제조업 도약을 위한 도구로 거론되는 것은 AI다. 한국은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소버린 AI(Sovereign AI)'를 구축하는 동시에 특정 산업 분야에 특화된 '물리적 AI'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소버린 AI는 한 국가가 자체 인프라와 데이터를 활용해 독립적으로 AI 역량을 갖추는 전략으로, AI 기술의 통제권을 외부 거대 기업에 의존하지 않음으로써 국가 안보와 데이터 주권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다. 미국과 중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AI 혁신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범용 AI 시장에서 정면 승부를 펼치기에는 언어 시장 규모와 자본력 측면에서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반면 한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한 제조, 의료, 금융 등의 도메인 특화 데이터를 활용한 물리적 AI는 비교적 빠르게 상용화하여 성과를 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물리적 AI는 모델 크기가 작더라도 특정 분야에서 전문가 수준의 정확도와 신뢰도를 제공하며 프라이버시 문제에서도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양한 자원을 극대적으로 사용하는 소버린 AI보다 물리적 AI에서 우리의 고유한 영역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기도 한다.
  2. 문제는 소버린 AI의 모든 영역을 시도하지 않은 채 미리 한계를 긋고 할 수 있는 것에만 주력한다는 자세는 문제가 있다. 직접 모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여 그 과정에서 학습을 통해 장단점을 체득하고 이걸 바탕으로 산업 전체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연계 부문을 발전시켜야만 물리적 AI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직접 핵심 기술을 개발하며 부딪쳐보는 경험이 필수적이며, 이러한 도전이 제조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버티컬 AI의 발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요컨대 AI 풀스택(Full-stack) 생태계 구축에 뛰어들어 하드웨어(AI 반도체)부터 소프트웨어(모델, 프레임워크) 및 최종 서비스까지 AI 개발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기술 스택 개발을 시도하여야 하며. 이를 통해 제조업 도메인에 특화된 버티컬 AI도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제조업 특유의 기술뿐만 아니라 기초영역도 동반 발전하는 것이다.

2025년 상법 개정을 통한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자본 시장의 정상화는 제조업 AI를 위한 소프트웨어적 기반을 만들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명시함으로써 한국 자본시장 역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주주 가치'는 단순한 권고나 구호의 영역을 넘어 이사회의 법적 책임과 공시 규율이 적용되는 실질적인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제조업 AI를 위한 전략적 투자가 '정말로 돈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자본 비용(Cost of Capital)을 명확히 인식하는 공시 제도 확립이 필요하다. 자본 비용을 모른 채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은 수익과 비용에 대한 판단 근거 없이 자원을 배분하는 것과 다름없다.

기업은 공시를 통해 자본 비용과 목표 ROE(Return on Equity)를 명시해야 하며 배당, 자사주 매입, 유상증자 등 중요한 자본 거래 시 '자본 비용 대비 수익률'의 산출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정책 당국이 해야 할 역할은 비용을 숨길 수 없게 강제하고, 판단은 시장에 맡기며, 결과에 대한 책임은 명확히 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 시각을 대규모 물리적 자산을 늘리는 하드웨어 확장 방식을 벗어나 기존 자산을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운영 체계를 최적화하는 소프트웨어 재편 방식으로 이끈다. 이 사고의 전환이 고금리와 고비용 환경에서 자본 비용을 낮추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 접근법의 모범 사례는 뉴욕·뉴저지항만청(PANYNJ)의 뉴욕 인근 공항(JFK, LGA, EWR) 현대화 계획이다.

과거 뉴욕 공항들은 연착률이 높고 시설이 낙후되어 이용객들에게 '지옥'과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당국은 단순히 공항을 새로 짓는 막대한 비용을 들이는 대신 기존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연계하는 소프트웨어적 접근을 취해 획기적인 성과를 보여줬다. 1) 각 공항을 잇는 에어트레인(AirTrain) 현대화 및 지역 교통망 연계 강화를 추구한 인프라 연결, 2) AI 도구 및 자율 주행 기술을 통한 여객 흐름 관리 및 효율화를 추구한 디지털 전환, 3) 민관 협력을 통한 자금 조달 및 고효율 터미널 중심의 재건축 추진의 재원조달계획, 4) 고객 만족도 평가(ASQA) 최상위권 도약 등 질적 성장 측정을 통한 성과지표 개발로 소프트웨어 중심, 비용효율 성과를 가져온 것이다. 우리도 역시 자본 비용을 고려한 투자 결정을 통해 기존의 제조 역량에 AI라는 소프트웨어를 결합하고 기업 지배구조라는 운영 체제(OS)를 혁신함으로써 적은 자본으로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하는 구조로 변화를 꾀할 때가 된 것이다. 탈바꿈해야 한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지정학적 위기와 인구구조의 변화, 그리고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은 우리에게 기존의 성장 방정식을 폐기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제조업의 르네상스는 단순히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 주권(Sovereign AI)을 확보하고 이를 현장의 버티컬 데이터와 결합하여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구현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동시에 이러한 산업적 도약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가 주주 권익을 보호하고 자본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상법 제382조의3 개정은 그 시작일 뿐이며, 이제는 기업이 스스로 자본 비용과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주총회를 진정한 소통의 장으로 만드는 문화적 진보가 필요하다.

정책 당국은 비용을 숨길 수 없게 하는 엄격한 공시 규율을 유지하되, 기업 경영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은 시장과 주주에게 맡기는 유연함을 보여야 한다. 기업은 '임자, 해봤어'라는 정신으로 AI 기술에 도전하고, 이사회는 '그 사업이 자본 비용보다 높은 수익을 내는가'라는 질문에 정직하게 답해야 한다. 이러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조화로운 혁신이 이루어질 때 한국 자본주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넘어 글로벌 가치사슬의 핵심적인 역할을 지속하는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제조업 르네상스는 결국 사람과 시스템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숙련공의 기술과 AI 에이전트의 지능, 그리고 투명한 지배구조가 맞물려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2026년 정기주주총회에서 확인한 변화의 싹이 한국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어 다시 한번 한국 제조업이 세계 경제의 주역으로 우뚝 서기를 기대한다.

▷서울대 경제학 박사 ▷제21대 국회의원 ▷카카오뱅크 공동대표 ▷한국투자신탁운용 총괄 최고투자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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