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4세 미만이라는 현행 기준을 13세 또는 그 이하로 조정하자는 주장과, 여전히 미성숙한 연령대에 형사책임을 지우는 것은 위험하다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수년째 반복된 논쟁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단순히 ‘나이를 몇 세로 낮출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접근하는 한, 해답은 나오지 않는다.
이 문제의 본질은 나이가 아니다. 인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 안에 내재된 몸나의 탐·진·치(貪·瞋·癡), 곧 동물적 본성이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사회가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다.
집단폭행, 잔혹한 영상 공유, 죄의식 없는 행동은 모두 이 몸나의 통제 실패에서 비롯된다. 이는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인간 발달의 구조적 문제이며, 동시에 사회가 방치해온 교육의 공백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먼저 분명히 할 것은, 처벌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형벌은 공포를 줄 수는 있지만 인간을 바꾸지는 못한다. 반대로 보호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책임 없는 보호는 오히려 폭력을 학습시키고 반복을 낳는다. 결국 이 문제는 ‘처벌이냐 보호냐’가 아니라 '어떻게 인간을 다시 세울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유럽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유럽 국가들은 형사책임 연령을 일률적으로 정하지 않는다. 영국은 10세로 낮지만 초기 단계에서 교육적 개입과 비사법적 처분을 적극 활용한다. 독일은 14세를 기준으로 하되 행위 통제 능력 여부를 따져 형사책임을 제한한다. 프랑스는 13세 기준을 두면서도 10세 전후부터 교육적·보호적 개입을 병행한다. 즉, 유럽은 나이를 낮추는 문제보다 '책임과 교육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에 더 집중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우리 역시 연령 논쟁을 보다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첫째, 형사책임 연령은 일정 부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13세 전후 청소년의 신체적·정보 접근 수준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범죄 수법 역시 점점 지능화되고 집단화되고 있다. 최소한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일정 수준의 책임을 묻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둘째, 그 책임은 반드시 교육과 회복을 전제로 해야 한다. 단순히 소년원에 보내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범죄의 학교가 될 위험이 있다. 필요한 것은 전혀 다른 접근이다. 철학·윤리 교육, 피해자 공감 프로그램, 공동체 노동, 심리 치료를 결합한 ‘인간 재구성 시스템’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형벌이 아니라 수성(修性), 곧 인간의 성품을 다시 세우는 제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셋째, 더 근본적인 대책은 조기 교육이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들은 이미 유아기부터 도덕과 공감, 사회적 책임을 가르치는 교육을 체계화하고 있다. 5세 전후부터 시작되는 이러한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감정 조절, 타인 이해, 공동체 의식 형성에 초점을 맞춘다. 한국 역시 이 단계에서부터 교육 체계를 전환해야 한다. 입시 중심 교육으로는 몸나를 통제할 수 없다. 얼나를 키우는 교육, 곧 인성·영성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넷째, 가족과 사회의 책임 구조를 분명히 해야 한다. 청소년 범죄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환경의 산물이다. 방치된 가정, 무력한 학교, 무책임한 사회가 결합될 때 비로소 폭력이 발생한다. 따라서 일정 범위 내에서 부모의 책임을 묻고, 학교의 관리 기능을 강화하며, 지역사회가 개입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 촉법소년 문제는 법률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의 문제다.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길러내며,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나이를 낮추는 것만으로 해결될 문제였다면 이미 해결됐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보다 깊은 성찰과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다.
동양의 사상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본성을 경계해 왔다.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은 인간 안에 본래 존재하는 것이며, 이를 제어하지 않으면 사회는 언제든 혼란에 빠진다. 반대로 진리와 선, 아름다움은 훈련과 교육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결국 국가는 이 두 힘 사이의 균형을 설계하는 역할을 맡는다.
촉법소년 논쟁은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 단순히 연령을 낮추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인간을 길러낼 것인가의 문제다. 법은 몸나를 막아야 하고, 교육은 얼나를 깨워야 한다. 이 두 축이 동시에 작동할 때만 비로소 사회는 안전해지고, 미래는 열릴 수 있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몇 세부터 처벌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인간을 다시 세울 것인가”로.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어떤 법도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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