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이란전쟁 이야기 | 진리·정의·자유] 달러 대신 비트코인과 위안화 결제를 요구하는 이란

  • -전쟁의 화폐, 한국의 선택

이란 수도 테헤란 엔겔랍 광장에서 8일현지시간 시민들이 휴전 소식에 반응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설정한 공격 시한을 약 1시간 앞두고 2주간의 휴전에 전격 합의했으며 이에 따라 이란은 핵심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일시적으로 재개방하기로 했다 AFP연합뉴스
이란 수도 테헤란 엔겔랍 광장에서 8일(현지시간) 시민들이 휴전 소식에 반응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설정한 공격 시한을 약 1시간 앞두고 2주간의 휴전에 전격 합의했으며, 이에 따라 이란은 핵심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일시적으로 재개방하기로 했다. (AFP/연합뉴스)

전쟁은 총과 미사일로만 치러지지 않는다. 전쟁은 언제나 화폐로도 치러진다. 누가 돈을 찍고, 누가 결제망을 쥐며, 누가 거래를 승인하는가에 따라 승패의 윤곽이 달라진다. 이란을 둘러싼 최근의 전쟁 국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변화는 바로 이 지점이다.
 
이란이 달러를 벗어나 비트코인과 위안화, 그리고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새로운 결제 체계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금융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제재를 우회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자, 동시에 기존 국제 금융 질서에 대한 도전의 성격을 지닌다.
 
이란의 암호화폐 시장 규모는 약 78억 달러, 우리 돈으로 11조 원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와 관련된 활동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제재로 달러 기반 금융망 접근이 막힌 상황에서 이란은 암호화폐를 무기·원자재 거래와 결제 수단으로 활용하고, 비트코인 채굴에도 깊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대해 암호화폐로 통행료를 부과하는 방안까지 검토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정책 실험이 아니라, “제재를 받는 국가가 어떻게 살아남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여기서 우리는 전쟁과 암호화폐의 관계를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암호화폐는 본래 국가를 벗어난 탈중앙화 화폐로 출발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장 빠르게 확산된 곳은 국가가 약하거나 제재를 받는 지역이었다. 전쟁과 위기 상황에서는 기존 금융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거나 정치적 이유로 차단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국경을 넘는 결제 수단이자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암호화폐는 특유의 생명력을 발휘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2022년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로부터 수억 달러 규모의 암호화폐 기부를 받았다. 기존 은행 시스템이 마비된 상황에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사실상 전쟁 자금의 일부로 기능했다. 반대로 러시아 역시 서방 제재로 국제결제망에서 차단되면서 암호화폐를 통한 거래 가능성을 탐색했다. 전쟁은 암호화폐를 투기의 대상에서 생존의 도구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베네수엘라도 중요한 사례다.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통화가치 붕괴 속에서 국민들은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암호화폐를 선택했다. 정부 역시 석유를 기반으로 한 암호화폐를 시도하며 제재 회피를 모색했다. 통화가 붕괴한 국가에서 암호화폐는 단순한 투자 자산이 아니라 일상의 화폐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 역시 탈레반 집권 이후 국제 금융망에서 고립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암호화폐가 생존 수단으로 활용됐다. 국제 원조가 막히고 은행 시스템이 제한되자, 개인 간 거래와 해외 송금에서 암호화폐의 역할이 커졌다. 이처럼 전쟁과 제재, 국가 기능의 약화가 겹칠 때 암호화폐는 언제나 등장했다.
 
이란의 경우는 이 세 사례가 결합된 형태다. 제재, 통화가치 하락, 지정학적 충돌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암호화폐는 국가와 국민 모두의 ‘생명줄’이 됐다. 일반 시민은 인플레이션을 피하기 위해 자산을 테더로 바꾸고, 해외 송금을 위해 개인 지갑을 활용한다. 정부는 달러 결제망을 우회하기 위해 암호화폐를 사용하고, 군사 조직은 이를 무기 거래와 연결한다.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제재를 받는 국가는 결국 제재를 우회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낸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는 단순히 암호화폐의 활용이 아니라, 국제 금융 질서의 균열 가능성이다. 달러는 여전히 세계 기축통화이며, 국제 무역과 금융의 중심이다. 그러나 제재가 강해질수록, 그 제재를 피하려는 국가들은 달러 밖의 길을 찾게 된다. 위안화 결제 확대, 양자 간 통화 스와프, 암호화폐 활용은 모두 그 연장선에 있다. 이란의 선택은 특수한 사례이지만, 그 방향성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첫째,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한국은 달러 기반 국제 금융 질서에 깊이 편입된 국가다. 동시에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산업국가다. 이 두 가지 조건은 한국이 이란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한국은 제재 체계를 무시할 수도 없고, 금융 신뢰를 훼손할 수도 없다. 따라서 암호화폐를 통한 결제 확장은 전략적 대안이 아니라 제한적 보완 수단에 머물 수밖에 없다.
 
둘째, 공급망과 결제망을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이란이 암호화폐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결제망이 막혔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런 상황을 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 도입선 다변화와 함께 결제 통화의 다양화, 무역금융 안전망 확보가 필요하다. 위안화 결제 확대나 제3국 결제 구조는 일부 보완책이 될 수 있지만, 핵심은 금융 시스템 전체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있다.
 
셋째, 암호화폐를 위협이 아닌 변수로 관리해야 한다. 암호화폐는 더 이상 주변적 존재가 아니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는 그 영향력이 커진다. 한국은 이를 투기 규제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위기 대응 수단으로서의 가능성과 위험을 함께 분석해야 한다. 에너지 수입 기업의 결제 리스크 관리, 환율 변동성 대응, 디지털 자산 규제 체계 정비가 동시에 필요하다.
 
넷째, 외교의 언어를 재정립해야 한다. 이란은 비트코인과 위안화를 요구하고, 미국은 달러 질서를 유지하려 한다. 이 사이에서 한국은 선택을 강요받는 구조에 놓여 있다. 그러나 선택은 단순한 편 가르기가 아니다. 한국은 동맹과 국제 규범을 존중하되, 자국 경제의 안정성을 최우선에 두는 실용적 외교를 펼쳐야 한다.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대응해야 한다.
 
제재를 받는 국가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제 질서는 어떻게 흔들리는가. 비트코인은 이란에게 자유의 화폐가 아니라 생존의 화폐다. 위안화는 대안이라기보다 우회로다. 이 현실을 도덕의 잣대로만 재단하면 해답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달러 질서 안에서 얼마나 안전한가, 그리고 그 질서가 흔들릴 때를 대비하고 있는가. 이란은 제재 속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었고, 그 길은 거칠고 불안정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한국은 그런 길을 따라갈 필요는 없지만, 그 길이 왜 만들어졌는지는 이해해야 한다.
 
전쟁은 언제나 새로운 무기를 낳는다. 지금 이 전쟁이 낳은 무기 중 하나가 바로 화폐다. 총성이 멎어도 화폐의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한국이 준비해야 할 것은 바로 그 다음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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