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전시 추경’을 꺼냈고, 정책 책임자들은 환율을 ‘밴드 회귀’로 설명한다. 숫자는 아직 점잖다. 그러나 물가는 이미 방향을 틀었다. 지금의 국면은 충격이 아니라 전이의 시작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6조2천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두고 “민생 경제 전시 상황”을 선언했다. “비상 상황에는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덧붙였다. 위기 인식 자체는 타당하다. 다만 문제는 그 위기의 성격이다. 전쟁은 물량의 부족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격을 바꾸고, 기대를 바꾼다. 물가의 전쟁은 이미 시작됐고, 그 파장은 지표보다 늦게, 그러나 더 깊게 나타난다.
3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2.2% 상승했다. 겉으로는 안정 범주에 머문다. 그러나 구성은 전혀 다르다. 에너지가 다시 중심으로 올라섰다. 석유류 가격은 9.9% 상승했고, 경유는 17%, 휘발유는 8% 올랐다. 이는 일시적 가격 변동이 아니라 비용 구조의 변화다. 전쟁이 유가를 밀어 올리고, 환율이 그 충격을 증폭시키는 전형적인 수입 인플레이션 경로다.
환율은 이미 경고를 보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1,520원대를 넘어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시장에서는 고환율이 ‘뉴노멀’이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외국인 자금 유출과 달러 강세가 맞물리며 원화 약세는 구조적 압력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진단은 틀렸다기보다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지금의 환율은 단순한 수급 왜곡을 넘어, 전쟁발 에너지 가격 상승과 글로벌 달러 강세, 자본 유출이 결합된 복합 국면 위에 있다. 특히 원화 약세가 수입물가를 자극하는 상황에서 환율은 결과 변수가 아니라 정책 변수다. 이를 일시적 변동으로만 해석할 경우, 물가로 이어지는 전이 경로에 대한 대응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정책 신호의 불일치다. 한쪽에서는 전시 상황을 전제로 재정을 확대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환율과 물가에 대해 상대적으로 완화된 인식을 드러낸다. 재정은 확장되고, 통화는 사실상 정지된 상태에서 환율은 상승 압력을 받는다. 이 조합은 균형이 아니라 긴장을 낳는다.
이미 시장은 그 긴장을 반영하고 있다. 유가 상승과 달러 강세, 원화 약세가 동시에 나타나는 구조는 수입 인플레이션의 전형이다. 더 중요한 점은 3월 물가가 초기 충격만 반영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생산자물가를 거쳐 외식·가공식품·서비스로 이어지는 2차 파급은 이제 막 시작됐다.
여기에 재정이 더해진다. 전시 추경은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러나 공급 충격 국면에서의 재정 확장은 단기 완충과 동시에 기대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 특히 통화정책 여력이 제한된 상황에서는 재정이 정책 공간을 넓히기보다 오히려 좁힐 가능성이 크다.
성장·물가·환율은 동시에 만족시키기 어려운 목표다. 그런데 정책 당국은 여전히 세 방향을 모두 지향하는 듯 보인다. 물가는 안정적이고, 환율은 일시적이며, 재정은 확장적이라는 서사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
환율은 물가로, 물가는 기대로, 기대는 다시 환율로 이어진다. 이 고리가 강화되는 국면에서는 정책의 속도와 방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유가의 전쟁이 아니라, 물가의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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