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지만 함께, 무알콜 '어드민 나이트'에 빠진 Z세대

“군고구마.” “네.” 

“햄스터 왕자!” “네.” 

화요일 밤 8시,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

이름 대신 닉네임이 불릴 때마다 짧은 대답이 돌아온다. 어색한 웃음이 스치고 지나가지만, 분위기는 금세 가라앉는다. 

“오늘 할 일 하나씩 말씀해 주세요.” 

“지난주에 시작한 책 끝낼게요.” 

"블로그 글 마무리하겠습니다.” 

“논문 수정이요.” 

각자의 선언이 끝나자 진행자가 마지막으로 말한다. 

“지금부터 두 시간 동안 대화 없습니다.” 

그 순간 공기가 바뀐다. 
 

3월31일 오후 서울 관악구 한 카페에서 참석자들이 어드민 나이트 모임을 마치고 인증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AJP유나현
3월31일 오후 서울 관악구 한 카페에서 참석자들이 '어드민 나이트' 모임을 마치고 인증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AJP유나현

노트북이 동시에 열리고, 이어폰이 꽂히고, 손이 분주해진다. 방금까지 낯선 사람들이었던 이들은 순식간에 ‘각자의 세계’로 들어간다. 카페 안에는 키보드 소리와 종이 넘기는 소리만 남는다. 

이른바 ‘어드민 나이트(Admin Night)’. 이름은 가볍지만, 분위기는 묘하게 긴장감이 흐른다. 단순한 모임이 아니다. 

미뤄둔 일을 ‘반드시 해내기 위해’ 모이는 자리다. 이 모임을 운영하는 최경원(28) 씨는 핵심을 이렇게 설명한다.

“혼자 있을 때는 미루기 쉬운데, 여기서는 달라요.  한 번 ‘하겠다’고 말하면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거든요.” 
 

2 3월31일 오후 서울 관악구 한 카페에서 진행되는 어드민 나이트 모임 안내문이 책상 위에 놓여있다 AJP유나현
3월31일 오후 서울 관악구 한 카페에서 진행되는 '어드민 나이트' 모임 안내문이 책상 위에 놓여있다. AJP유나현

실제로 두 시간 동안 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 참가자도 많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도 드물다. 

공동 운영자인 조현준(32) 씨는 이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했다. 

“두 시간 내내 아무도 자리 안 뜨고 집중하는 걸 보면, 이런 공간이 정말 필요했구나 싶어요.” 

 

어드민 나이트 공동운영자 조현준이 사용자들에게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유나현
3월31일 오후 서울 관악구 한 카페에서 '어드민 나이트' 모임을 마치고 모임 운영진 조현준(32)씨가 소감을 나누고 있다. (AJP 유나현)

참가자들이 가져오는 일도 다양하다.  여행 계획, 영상 편집, 취업 준비, 학업 과제까지.

공통점은 하나다.  혼자서는 계속 미뤄왔던 일이라는 점이다. 

이 모임의 묘미는 ‘함께 있지만, 철저히 각자’라는 구조다. 대화는 시작과 끝에만 허용된다. 

닉네임만 쓰고, 서로를 깊이 묻지 않는다. 그 대신 생기는 건 묘한 감각이다. 

“누가 직접 보는 건 아닌데, 계속 지켜보는 느낌이 있어요.” 

참가자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이를 ‘사회적 촉진’으로 설명한다. “사람은 타인의 존재만으로도 수행 능력이 높아집니다.
낯선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지만 완전히 단절된 상태는 아닌 것이죠.” 

이 현상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청년 세대의 관계 방식 변화와 맞닿아 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감정 소모가 큰 관계를 피하려는 경향은 있었지만, 팬데믹을 거치며 그 흐름은 더욱 강화됐다. 대면 접촉이 줄고, 비대면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관계는 더 ‘선택적’이고 ‘관리 가능한 형태’로 바뀌었다.

모임 참가자 최경원 씨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은 목적이 분명한 만남을 선호해요. 수다가 길어지면 오히려 집중이 흐트러지거든요.”

이 변화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사일런트 스터디, 코워킹 모임, ‘딥워크’ 세션 같은 형태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원격근무의 확산은 자유를 키운 동시에 고립감을 키웠고, 이에 따라 ‘느슨하게 연결된 협업’ 수요가 늘고 있다. 

실제로 원격근무자의 약 25%가 매일 외로움을 느낀다는 조사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약 4만2000개의 코워킹 공간이
500만 명 이상을 수용하고 있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곽 교수는 한국 청년들이 이 변화의 선두에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의 젊은 세대는 실용적입니다. 관계의 경계를 유지하면서도 필요한 연결은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효율적이면서도 성숙한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3월31일 오후 서울 관악구 한 카페에서 어드민 나이트 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AJP유나현
3월31일 오후 서울 관악구 한 카페에서 '어드민 나이트' 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AJP유나현

밤 9시 50분. 타이머가 울린다. 

“오늘 어땠는지 한 분씩 말씀해 주세요.” 

“8주 걸릴 줄 알았던 책을 절반이나 읽었어요.” 

“집에 가서도 계속 할 것 같아요.” 

짧은 공유가 끝나자 사람들은 조용히 짐을 챙긴다. 

길게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며, 다시 혼자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혼자지만 함께.’ 어드민 나이트는 관계를 최소화하면서도 연결을 포기하지 않는 방식이다. 

깊이 얽히지 않고도 함께할 수 있는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 더 잘 일하고 싶은 욕구. 

조용한 카페 안에서 지금 청년 세대의 새로운 사회적 균형이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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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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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햄스터 왕자 귀여워요. 햄스터 최고
  • 요즈음에 정말 술 안 마시는 분위기이긴 하더라고요. 코로나가 세상을 크게 바꾼 건 맞나 봐요.
  • 의지력이 약한 탓인지 혼자서는 뭘 완성하기 어려운 사람으로서 관심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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