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고양시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소 입구에서 유조차가 오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동 사태 장기화와 석유제품 수출 제한 조치가 겹치면서 국내 정유산업에 경고등이 켜졌다. 수출 회복 흐름을 보이던 휘발유·경유 물량이 묶이면서 업황 둔화 우려가 빠르게 확산되는 모습이다.
수출 품목 4위인 석유제품이 흔들리면 7400억 달러 수출 목표 달성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유업 부진이 수출 감소로 이어지며 한국 경제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관세청에 따르면 석유제품 수출은 2022년 633억 달러로 정점을 기록한 뒤 지난해 460억 달러까지 줄어들며 3년 연속 감소세를 나타냈다. 전체 품목 가운데 네 번째로 수출액이 크지만 저유가 상황에서 수출 단가가 하락한 영향이 컸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1~2월 석유제품 수출액은 75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2% 증가했다. 유가 하락으로 수출 단가는 떨어졌지만 정제마진 개선에 따라 가동률이 상승한 영향이다.
이에 따라 수출 물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0% 수준으로 묶였고 필요시 추가 조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문제는 핵심 수출 품목이 직접적인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의 지난해 석유제품 수출액 가운데 경유가 43.0%, 휘발유가 21.3%를 차지했다. 전체 중 약 60%를 차지하는 주력 품목이 동시에 통제 대상이 된 셈이다.
정유업계에서는 오랜만에 나타난 수출 회복 흐름이 꺾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한국무역협회 통계서비스(K-stat)에 따르면 올해 1~2월 경유(MTI 133200)와 자동차휘발유(MTI 133120) 수출 중량은 전년 대비 각각 11.4%, 12.5% 증가했다.
국내 정유업계 매출 중 절반 이상이 수출에서 발생하는 구조라는 점도 부담이다. 내수는 수요가 제한적인 반면 아시아·태평양 지역 수요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수출이 실적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 특히 고유가 국면에서는 제품 가격 상승과 함께 정제마진이 확대되는 경향이 있어 수출 확대가 기대됐던 상황이었다.
여기에 석유제품 수출 통제가 확대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에너지 수출 통제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차량 부제 시행 등이 민간으로 확대되면 내수 감소까지 겹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 보상 체계에서도 한계가 드러난다. 산업부는 △손실 보전 △정유사 입증 책임 △분기별 정산 등을 원칙으로 재정을 투입할 계획이지만 수출 감소에 따른 손실은 보상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 관계자는 “석유 사업자는 법에 따라 국내 공급 의무가 있다”며 “수출 감소 영향에 대한 보상은 현재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유업계는 최고가격제 시행에 따른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분기별 정산 구조로 현금 흐름이 악화될 수 있는 만큼 세금 납부 유예나 원유 할당관세 도입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사후 정산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 같은 정유업 타격은 수출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석유제품은 반도체·자동차와 함께 주요 수출 품목 중 하나로, 수출 감소는 곧바로 외화 수입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중동발 원유 공급 불안이 현실화하면 국제 유가 상승으로 제조업 전반에 걸쳐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수출 경쟁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외 환경도 변수다. 중동 정세 불안이 확산되면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과의 교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의 관세 정책 역시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법 301조 등을 통한 추가 압박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처럼 에너지 수급 불안과 정책 변수, 통상 리스크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정유업을 넘어 한국 경제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중동 사태가 장기화되면 에너지 수급 불안에 고환율, 금융 부실, 내수 경기 침체 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며 "유가 불안이 지속되면 한국 경제의 올해 목표 성장률 달성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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