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럴당 120달러까지 올랐던 국제 유가가 80달러 선까지 내려왔지만 전쟁이 끝나더라도 고유가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전반에 직격타를 입힐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계부채 부담과 고금리 여파로 국내 소비 여력이 위축된 상황에서 고물가 압력까지 더해지면서 정부의 통화·재정 정책 운용 폭도 좁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유가 쇼크, 한국 경제 구조적 타격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쟁 조기 종식을 언급했지만 고유가 기조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선까지 하락했지만 전쟁이 종료되더라도 60달러대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이 올해 연평균 유가를 배럴당 60달러 수준으로 전망했던 것과 비교하면 20달러 이상 높은 수준이다.
전쟁이 이른 시일 내에 종식되더라도 고유가 현상이 단기간에 안정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고유가 기조가 장기화하면 물가뿐 아니라 한국 경제 전반에 걸쳐 타격을 줄 수 있다. 유가 상승이 에너지 가격을 자극하면 제조업과 운송·물류 산업의 생산비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석유화학을 비롯해 철강, 항공, 해운 등 에너지 사용 비중이 높은 산업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비중은 원유 34%, 액화천연가스(LNG) 20%에 달한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우리나라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국내 정유사 설비 특성상 원유 수급 다변화가 쉽지 않아 중동산 원유 공급에 차질이 발생하면 경제 전반으로 충격이 확산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는 원유 의존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1만 달러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원유 사용량은 5.63배럴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급증하는 비용 부담에 대응하기 위해 제품 가격 인상이나 비용 절감 전략을 선택한다면 연구개발(R&D)이나 장기 투자 역시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또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하면 기업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 인상이 동반되면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도 상승하기 때문이다. 설비 투자나 신규 사업이 위축되면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 원유의 약 70%를 중동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도 27.6%에 달한다. 제조업과 수출 중심인 경제 구조는 에너지 가격 상승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진퇴양난에 놓인 통화·재정 정책
경기 회복을 위해 확장 재정을 추진해온 정부의 정책 운용에도 부담이 커지고 있다. 경기 부양이 필요한 시점에 물가 상승 압력이 확대되면서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이 동시에 제약을 받는 상황에 놓였다는 분석이다.
국가데이터처 등에 따르면 최근 국내 소비는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본격적인 내수 반등 단계에는 진입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올해 연간 민간소비 증가율은 1.7~1.9%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최근 100을 소폭 웃돌았지만 소비지출 전망 지수는 110 수준에서 정체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부채 부담도 소비 회복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올해 1월 기준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1조4000억원 늘며 증가세로 전환됐다. 장기화된 고금리와 가계부채 부담으로 가계의 실질 소비 여력이 위축됐기 때문이다.
통상 경기 회복 흐름이 미약하고 내수가 부진할 때는 기준금리 인하 등 완화적 통화 정책을 통해 가계의 이자 부담을 낮추고 기업 투자를 유도한다. 하지만 고유가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섣부른 금리 인하는 오히려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고물가와 경기 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도 제기된다. 물가 안정을 위한 긴축 정책은 실물 경기를 더 위축시킬 수 있고, 반대로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지출 확대는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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