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컬럼-병력에서 두뇌로] 3회 군 과학화의 성패는 시스템에 달려 있다

  • ― 기술이 아니라 산학연 시스템이 승부를 가른다

군 과학화는 특정 기관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교육, 연구, 실증, 조달, 산업화가 끊김 없이 이어질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분리되는 순간, 군 과학화는 구호로 남는다. 지금 한국 국방이 직면한 문제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술을 축적하고 순환시키는 시스템이 분절돼 있다는 데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제시한 군 과학화 구상은 방향이 분명하다. 병력과 숫자 중심의 군에서 장비·무기·기술 중심의 군으로 전환하고, 군 복무를 첨단 기술을 익히는 기회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향은 제도나 예산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문제는 군 과학화가 작동할 구조가 갖춰져 있는가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해외 군사 강국들의 경험은 한 가지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군사과학은 분리될수록 약해지고, 결합될수록 강해진다. 미국에서 군 과학화의 상징으로 거론되는 DARPA의 핵심은 조직명이 아니다. 군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정의하고, 대학과 기업이 공동으로 개발하며, 군이 초기 수요자가 되어 실증까지 책임지는 일련의 흐름이다. 이 흐름은 단절된 기관들의 느슨한 협력이 아니라, 물리적·제도적으로 맞물린 캠퍼스형 생태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해왔다.


이스라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Israel Defense Forces에서 군 교육, 연구, 실증, 창업은 하나의 경로로 이어진다. 군 복무 중 수행한 기술 개발이 전역 후 곧바로 민간 산업으로 연결된다. 이 연속성이 가능한 이유는 군이 연구실이자 테스트베드로 기능하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군은 기술을 사는 조직이 아니라, 기술을 키우는 플랫폼이다.


유럽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난다. 프랑스는 파리 인근 Paris-Saclay 지역에 군 연구기관, 대학, 민간 연구소를 집적해 국방·우주·AI 연구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특정 기관의 성과가 아니라, 교육–연구–실증–산업화가 하나의 공간 구조 안에서 맞물려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이 사례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군 과학화는 ‘좋은 연구소’ 하나로 이뤄지지 않는다. 교육기관은 교육만 하고, 연구소는 연구만 하며, 시험장은 시험만 하고, 조달은 따로 움직이는 구조에서는 혁신이 쌓이지 않는다. 기술은 이동 중에 죽는다. 결합되지 않은 시스템에서는 실패가 반복되고, 성공은 축적되지 않는다.


이 관점에서 보면, 육사와 태릉CC를 분리된 공간으로 바라보는 현재의 시각 자체가 문제다. 육사는 교육기관으로, 태릉CC는 개발 대상지로 따로 취급되는 한, 군 과학화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육사에서 배운 이론은 현장과 분리되고, 현장에서 얻은 실증 결과는 다시 교육과 연구로 환류되지 않는다.


육사와 태릉CC를 하나의 군사과학 복합캠퍼스로 묶자는 제안의 핵심은 바로 이 단절을 끊자는 데 있다. 육사는 군이 필요로 하는 기술과 작전 개념을 정의하는 두뇌다. 태릉CC는 그 개념을 실제 환경에서 시험하고, 민간과 함께 구현하는 몸통이다. 교육–연구–실증–조달–산업화가 하나의 동선으로 이어질 때, 군 과학화는 비로소 속도를 낸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노트북LM]


이 구조는 단순한 공간 통합이 아니다. 인사와 평가, 조달 방식까지 바꾸는 시스템 전환이다. 연구 성과가 순환 보직으로 끊기지 않고 축적될 수 있어야 하고, 실증 결과가 조달과 산업화로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한다. 군이 기술의 ‘최종 구매자’가 아니라 ‘초기 공동 개발자’로 참여할 때, 실패는 학습으로 남고 성공은 체계로 쌓인다.


지금까지 한국 군은 민간 기술을 뒤쫓아 구매하는 소비자에 가까웠다. 이 방식에서는 기술 주도권을 가질 수 없다. 반면 군사과학 복합캠퍼스가 작동하면, 군은 기술을 정의하고 검증하는 생산자로 전환된다. 국방비는 소모 비용이 아니라, 국가 기술 경쟁력을 축적하는 투자로 재해석된다.


상징성도 중요하다. 육사 인접 공간이 아파트 단지로 채워질 경우, 육사는 개발지 주변 시설로 인식될 위험이 있다. 반대로 육사와 태릉CC가 하나의 군사과학 복합캠퍼스로 결합된다면, 육사는 장교 양성기관을 넘어 국가 안보와 기술 경쟁을 설계하는 핵심 캠퍼스로 재정의된다. 공간은 국가의 의지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다.


군 과학화의 성패는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핵심은 결합이다. 육사와 태릉CC를 하나의 구조로 묶는 선택은 개발 계획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방의 작동 방식을 바꾸는 설계도다.


군 과학화는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결합된 시스템 위에서만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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