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밀라노] 김상겸·유승은, 한국 설상 새역사 쓰다

  • 김상겸, 절치부심 4번 도전 끝에 은메달

  • 실업팀 없어 일용직 노동하며 훈련 병행

  • 한국 올림픽 통산 400번째 메달 금자탑

  • 유승은, 부상 딛고 女 설상 첫 메달 쾌거

  • 기술·연기 중심 프리스타일서 성과 주목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 대회전 결승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따낸 김상겸이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9일(한국 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 대회전 결승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따낸 김상겸이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불모지’라 불리던 한국 설상 스포츠의 지형도가 이탈리아 리비뇨의 설원에서 새로 그려졌다. 생계를 위해 건설 현장을 오가며 훈련을 이어온 37세의 베테랑은 은빛 질주로 ‘대한민국 올림픽 통산 400번째 메달’이라는 이정표를 세웠고, 부상의 고통을 딛고 일어선 10대 선수는 한국 여자 설상 종목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었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종목에서 김상겸(37)과 유승은(18)이 하루 차이로 따낸 은메달과 동메달은 단순한 입상을 넘어 한국 겨울 스포츠의 외연을 넓힌 성과로 기록됐다.

◆ 일용직 노동자에서 은메달리스트로… 김상겸의 ‘3전 4기’

김상겸은 지난 9일(한국 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 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결승에서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올림픽 한국 선수단을 통틀어 처음 나온 메달이다.

김상겸이 써 내려간 '은빛 드라마'는 한 편의 영화와도 같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천식으로 고생하던 '허약한 소년'은 건강을 위해 육상을 시작했고, 중학교 2학년 때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스노보드와 운명처럼 만났다. 그러나 2011년 한국체대 졸업 후 선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실업팀이 없어 생계유지가 어려웠던 그는 훈련 기간 중 주말 하루는 아르바이트, 비시즌에는 공사장 일용직 노동에 뛰어들어야 했다.

김상겸은 2011년 튀르키예 에르주름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평행대회전 우승을 차지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하지만 올림픽의 벽은 높았다. 2014년 소치 대회에선 한국 선수 최초로 이 종목에 출전했으나 예선 17위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2018년 평창 대회에선 16강전에서 바로 고배를 마셨다. 2022년 베이징 대회에서도 예선 24위로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세계선수권대회 최고 성적은 2021년 평행대회전 4위였다.

하지만 김상겸은 포기하지 않았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며 기량이 만개했다. 지난 2024년 11월 중국 메이린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에서 데뷔 15년 만에 은메달을 딴 데 이어 지난해 3월 폴란드 크르니차 대회에선 동메달을 추가했다.

절치부심해 나선 네 번째 올림픽에서 김상겸은 예선을 8위로 통과해 16강 토너먼트에 올랐다. 16강을 통과한 뒤 8강에서 이번 시즌 FIS 월드컵 평행대회전 랭킹 1위인 롤란드 피슈날러(이탈리아)를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4강을 거쳐 결승에서도 베냐민 카를(오스트리아)과 치열한 접전 끝에 0.19초 차로 아깝게 패해 은메달을 확정했다.

김상겸은 경기 후 방송사 인터뷰를 통해 "마침내 해냈다. 정말 행복하다. 네 번째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게 돼 너무 기쁘다. 오늘 90점 이상의 라이딩을 했다"며 벅찬 소감을 전했다. 아내를 언급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기다려줘서 고맙다. 가족들이 힘을 많이 실어줬다. 믿어준 많은 분들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면서 "이 메달은 엄마, 아빠, 아내에게 걸어주겠다"며 미소 지었다.

끝으로 김상겸은 "스노보드는 제 인생"이라면서 "앞으로도 헤쳐나갈 일이 많다. 하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김상겸의 이번 메달은 한국 스포츠 역사에도 큰 획을 그었다. 한국 스키·스노보드는 2018년 평창 대회에서 이상호가 이 종목 은메달을 획득해 사상 첫 올림픽 입상에 성공한 지 8년 만에 같은 종목에서 메달을 추가하는 기쁨을 누렸다.

아울러 한국 올림픽 역사상 400번째 메달이라는 금자탑도 쌓았다. 1948 런던 하계 올림픽에서 김성집(역도)의 동메달로 올림픽 첫 메달을 획득한 한국은 2024 파리까지 하계 올림픽 메달 320개(금 109, 은 100, 동 111), 2022 베이징까지 동계 올림픽 메달 79개(금 33, 은 30, 동 16)로 도합 399개의 메달을 기록 중이었다. 김상겸의 은빛 질주로 한국 스포츠는 마침내 '올림픽 메달 400개' 고지를 밟게 됐다.
 
 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빅에어 시상식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유승은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0일(한국 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빅에어 시상식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유승은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빅에어 결선에서 유승은이 묘기를 펼치고 있다 사진유승은
10일(한국 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빅에어 결선에서 유승은이 묘기를 펼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즐기고 오겠다”… 편견 깬 10대의 비상, 유승은

김상겸이 ‘땅’에서 속도로 묵직한 역사를 썼다면, 다음 날인 10일(한국 시간) 유승은은 ‘하늘’에서 기술로 새로운 장면을 만들었다. 이탈리아 리비뇨의 밤하늘을 가른 것은 작은 체구가 뿜어낸 거대한 용기였다.

여자 스노보드 빅에어 결선에서 유승은은 1·2차 시기 합계 171.00점을 기록하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는 한국 여자 스키·스노보드 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자, 0.01초를 다투는 알파인 계열이 아닌 기술과 연기를 겨루는 프리스타일 종목에서 나온 의미 있는 성과였다. 한국 스노보드가 특정 종목 편중에서 벗어나 경쟁력을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 결정적 장면이기도 했다.

시상대에 선 2008년생 소녀의 미소 뒤에는 긴 재활의 시간이 숨겨 있었다. 유승은은 2024년 월드컵 무대 데뷔 직후 발목 부상으로 장기간 설원을 떠나 있어야 했고, 올림픽 시즌을 앞두고는 훈련 도중 손목이 골절되는 불운까지 겹치며 또 한번 시련을 겪었다. 빅에어는 대형 점프대에서 도약하는 종목 특성상 낙상 위험이 크고 부상도 잦은 만큼, 주변에서 올림픽 출전 자체를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주저앉는 대신 다시 비상하는 길을 택했다. 결선 1차 시기, 유승은은 몸을 뒤로 비틀며 네 바퀴를 회전하는 고난도 기술 ‘백사이드 트리플 콕 1440’을 완벽하게 성공시키며 87.75점의 고득점을 획득해 기선을 제압했다.

이어진 2차 시기 점수를 더해 합계 171.00점을 완성한 그는 3차 시기 착지에서 흔들렸음에도, 앞선 1·2차 시기의 압도적인 점수를 지켜내며 시상대에 올랐다. 

동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유승은은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환하게 웃었다. 그는 시상식 직후 인터뷰에서 “아직도 안 믿긴다. 존경하는 선수들과 같은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며 벅찬 소감을 전했다. 이어 “1년 동안 부상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없었는데, 이번 경험은 제게 ‘다음에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줬다. 저 자신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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