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을 민요로만 이해하면 K-헤리티지는 감상의 대상에 머문다. 그러나 아리랑을 ‘집단 기억 데이터’로 읽는 순간, K-헤리티지는 관리와 활용의 대상이 된다. BTS의 ‘아리랑’이 던진 핵심 질문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전통을 노래로 다뤄왔는가, 아니면 사회가 축적해온 기억의 데이터로 인식해왔는가.
아리랑은 하나의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반복된 경험의 축적물이다. 이별과 이동, 상실과 재회의 감정이 세대를 건너 누적되며 만들어진 기억의 층위다. 특정 작곡가도, 단일한 가사도 없다는 사실은 결핍이 아니라 강점이다. 수백 년 동안 아리랑은 한국 사회가 겪어온 사건과 감정을 흡수하며 끊임없이 업데이트돼 왔다. 이 점에서 아리랑은 음악이기 이전에 데이터다. 감정이 기록된 데이터다.
데이터의 본질은 축적과 재사용에 있다. 한 번 쓰이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호출되며 새로운 맥락을 얻는다. 아리랑이 수천 개의 변주를 허용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같은 이름 아래 서로 다른 경험이 덧붙여졌고, 그 축적이 오늘의 아리랑을 만들었다. BTS는 이 집단 기억 데이터에 접속했고, 이를 현대의 언어로 다시 호출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K-헤리티지를 둘러싼 기존 논의의 한계도 분명해진다. 우리는 전통을 ‘원형 보존’의 문제로 다뤄왔다. 무엇이 진짜인가, 어디까지가 정통인가를 가려내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그러나 데이터는 고정될수록 가치가 줄어든다. 업데이트되지 않는 데이터는 곧 사장된다. 전통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변주와 재해석을 차단해온 방식은 집단 기억을 스스로 동결시킨 셈이다.
해외 사례는 다른 선택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미국은 블루스와 재즈를 보존 대상이 아니라 재해석 가능한 문화 데이터로 다뤄왔다. 교육과 공연, 산업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호출되며 새로운 장르를 낳았다.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 역시 하나의 의례에 머물지 않았다. 애도와 기억의 감정을 공유하는 데이터로 작동하며 예술과 콘텐츠, 관광으로 확장됐다. 전통이 살아남은 이유는 보호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계속 사용됐기 때문이다.
이제 K-헤리티지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전통을 데이터로 다룰 준비가 돼 있는가. 기록은 충분한가. 디지털화는 단순한 아카이빙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진정한 데이터화란 저장이 아니라 재사용을 전제로 한 구조화다. 다시 불러 쓰고, 재조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데이터는 자산이 된다.
이 지점에서 AI와의 결합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생성형 AI는 개별 작품보다 패턴과 구조를 학습한다. 아리랑이 수백 년에 걸쳐 축적한 감정의 구조는 그 자체로 학습 가능한 집단 기억 데이터다.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한다면 K-헤리티지는 미래 기술 환경에서 주변부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제대로 구조화한다면, K-헤리티지는 새로운 문화 창작의 원천 데이터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통제의 유혹을 경계하는 일이다. 집단 기억 데이터는 특정 기관이나 세대의 소유물이 아니다. 국가가 독점해서도 안 되고, 시장에만 맡겨서도 안 된다. 필요한 것은 통제가 아니라 개방과 연결이다. 공공은 기록과 접근성을 보장하고, 민간은 해석과 확장을 맡으며, 글로벌 파트너는 새로운 사용 방식을 더해야 한다. 데이터는 닫히는 순간 가치가 사라진다.
이제 선택은 분명하다. K-헤리티지를 민요나 유물의 범주에 계속 가둘 것인가, 아니면 집단 기억 데이터로 재정의할 것인가. 후자를 선택할 때 비로소 K-헤리티지는 과거의 자산이 아니라 미래의 자원이 된다.
아리랑은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축적해온 감정의 데이터다.
BTS는 그 데이터에 접속했고, 세계는 그 결과를 받아들였다.
이제 남은 과제는 하나다.
이 집단 기억 데이터를 어떻게 기록하고, 어떻게 열어두며, 어떻게 다음 세대와 세계가 다시 쓰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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