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금속활자에서 BTS아리랑까지, K-헤리티지 글로벌로 나아가야

황은순 신임 국립청주박물관장이 “청주박물관의 핵심 브랜드인 금속 문화를 중심으로 전통과 현대를 잇는 전시와 콘텐츠를 선보이겠다”고 밝힌 것은, 지역 박물관의 운영 방향을 넘어 K-헤리티지가 가야 할 좌표를 짚은 발언이다. 금속활자로 상징되는 청주의 유산은 단순한 전시 소재가 아니라, 한국이 오래전부터 기술과 문화의 결합을 선택해 온 사회였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이기 때문이다.


청주의 금속활자 유산은 과거의 인쇄 기술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지식을 소수의 전유물에서 공공의 자산으로 확산시키려는 문명적 결단이었고, 오늘날 콘텐츠와 플랫폼, 나아가 AI로 이어지는 한국 문화 산업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K-헤리티지는 이렇게 축적된 선택의 역사다. 문제는 이를 여전히 ‘보존해야 할 유물’로만 다룰 것인지, 아니면 지금 작동하는 자산으로 재해석할 것인지다.
 

청주시 고인쇄박물관에 전시된 직지 활자사진연합뉴스
청주시 고인쇄박물관에 전시된 직지 활자[사진=연합뉴스]

이 지점에서 문화의 작동 방식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 있다. 방탄소년단(BTS)이 새 앨범과 공연의 이름으로 ‘아리랑’을 선택한 순간이다.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에 선 BTS가 전통 서사를 전면에 불러낸 선택은  K-헤리티지가 박물관의 설명문을 넘어 세계가 체험하는 문화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아리랑’은 장식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별과 재회, 반복과 변주를 품어온 정서의 운영체제다.


금속활자와 아리랑은 서로 다른 시대의 산물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같다. 기술과 서사, 제도와 감정이 결합될 때 문화는 오래 살아남는다. 금속활자가 지식의 질서를 바꿨다면, 아리랑은 감정과 기억의 질서를 이어왔다. K-헤리티지는 바로 이 결합의 역사이며, 그래서 세계와 통한다.
 

이 흐름을 전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가유산을 여전히 ‘보존의 대상’으로만 인식한다면, K-헤리티지는 내부 소비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를 산업과 관광, 외교와 교육으로 연결하는 자산으로 바라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금속활자 유산은 콘텐츠와 디자인, 전시와 교육으로 확장될 수 있고, 전통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다.


이 전환 과정에서 민간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행정의 손이 닿기 어려운 국외 유산과 디아스포라의 흔적, 환수가 불가능한 부동산형 유산은 시민 기반의 유연한 네트워크가 더 효과적이다. 제3섹터로서의 민간은 정부를 대신하는 조직이 아니라, 정부가 할 수 없는 영역을 가능하게 만드는 파트너다. K-헤리티지가 세계 전략이 되려면 이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시민 참여 역시 핵심 축이다. 전문가 중심의 지정 체계만으로는 21세기의 유산을 담아낼 수 없다. 우리가 쓰는 언어와 걷는 도시, 즐기는 공연과 놀이, 사용하는 기술은 모두 미래의 유산이 된다. 시민이 발굴하고 기록하는 체계는 유산의 범위를 일상으로 확장하고, 기록의 주체를 넓힌다. 모두가 사관이 될 때, 문화는 비로소 축적된다.


올해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이 전략을 세계 앞에 제시할 무대다.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한국이 문화유산을 어떻게 관리하고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종합 설계가 요구된다. 조사·보존·교육·홍보 전반에 AI를 접목하는 시도는 한국이 기술 강국을 넘어 문화 관리의 선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현실적 해법이다.

 

금속활자에서 시작된 한국의 문화적 선택은 아리랑을 거쳐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까지 이어졌다. BTS의 ‘아리랑’은 출발선이었고, 이제 남은 과제는 이 흐름을 일회성 상징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국가 전략으로 만드는 일이다. K-헤리티지는 배경음이 아니다. 이미 주선율로 울리고 있다. 이 선율을 제도로 남길 때, 한국은 문화 강국을 넘어 문명적 기준을 제시하는 국가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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