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국제질서 이탈의 비용, 동맹과 규범은 선택지가 아니다

  • 트럼프, 66개 국제기구서 탈퇴

국제질서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예측 가능성이다. 국가와 시장은 상대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을 때 불안을 최소화하고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규범과 협약은 이러한 예측 가능성을 제도화한 장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 산하기관과 국제 협약 다수에서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을 포함해 60여 개 국제기구와 조약이 대상이다. 백악관은 이들 기구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제 규범에서의 이탈은 정책 자율성을 높이기보다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선택에 가깝다. 규범이 약화될수록 국가 간 행동은 규칙이 아니라 힘과 거래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이는 외교뿐 아니라 금융, 통상, 에너지 시장 전반의 변동성을 키운다. 

국제기구는 단순한 협의체가 아니다. 국가 간 행동의 범위를 미리 예고하는 사전 신호 장치다. 이 틀이 흔들릴 경우, 상대국의 행동 기준은 불투명해지고 분쟁 예방 비용은 오히려 급증한다. 규칙이 사라질수록 자유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이 구조화된다. 

시장 역시 예외가 아니다. 기후·에너지·통상 규범은 기업의 투자 판단과 직결된다. 다자 규범이 약화되면 글로벌 기업과 금융시장은 정책을 제도보다 정치 일정과 발언에 의존해 해석하게 된다. 이는 자본 비용 상승과 투자 지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기후 협약에서의 이탈 비용은 장기적이다. 기후 협약은 환경 규제가 아니라 에너지 전환, 산업 보조금, 탄소 가격, 기술 표준이 결합된 경제 협상이다. 협상 테이블을 떠나는 순간 규제 부담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국 기업이 따라야 할 기준을 외부에서 통보받는 위치로 밀려난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같은 무역 규제가 확대될수록, 규칙을 설계하지 못한 대가는 관세와 비관세 장벽으로 되돌아온다. 

동맹국의 부담도 커진다. 주요 동맹국들이 다자 협력 체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한 나라만 이탈할 경우 정책 공조는 느슨해지고 조정 비용은 증가한다. 동맹은 자동으로 작동하는 장치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규칙 위에서만 유지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베네수엘라 석유 통제 구상이나 그린란드 영유권 시사는 이러한 불확실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국제 규범보다 거래와 압박을 앞세울 경우, 다음 행동의 기준은 원칙이 아니라 힘이 된다. 이는 국제사회에 가장 불안정한 신호를 보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접근은 미국의 전략적 경쟁국에 유리한 환경을 만든다. 미국이 빠진 다자 협의 테이블은 계속 돌아간다. 규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규칙을 설계하는 주체만 바뀐다. 기후·에너지·기술 표준에서 중국과 유럽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이유다. 

이제 시선은 한국으로 향한다. 한국은 안보에서는 동맹에 의존하고, 경제와 통상에서는 다자 규범에 기대 성장해온 전형적인 중견국이다. 국제질서의 예측 가능성이 흔들릴수록 한국이 감당해야 할 외교·통상 비용은 급격히 커진다. 힘의 논리가 앞서는 환경은 선택지가 아니라 위험이다. 

따라서 한국의 대응은 분명해야 한다. 안보는 동맹, 경제는 규범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외교·안보·통상을 하나의 전략 틀로 관리해야 한다. 규칙 기반 질서가 약화될수록 동맹의 실효성 역시 함께 흔들린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동시에 한국은 다자 규범의 수동적 수용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기후, 에너지, 디지털, 기술 표준 등 핵심 분야에서 규칙을 따르는 나라가 아니라 규칙 형성에 참여하는 나라로 역할을 전환해야 한다. 국제기구와 다자 협의체에서 발언권을 넓히고, 규범이 만들어지는 초기 단계부터 참여할수록 불확실성 비용은 줄어든다. 

기업의 규범 리스크 역시 국가 전략 차원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규범 변화는 개별 기업의 대응 역량을 넘어선 문제다. 정부는 통상·환경·기술 규범의 변화 방향을 예측하고 공유해 기업들이 정치적 발언이 아닌 제도 환경을 기준으로 투자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국제 규범은 이상이 아니다. 불안을 관리하기 위한 비용 절감 장치다. 규범 안에 있을 때 불확실성은 관리 가능하지만, 규범 밖에서는 정치 리스크로 증폭된다. 국제기구는 완벽하지 않다. 개혁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탈로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동맹과 규범은 선택지가 아니다. 한국이 국제질서 속에서 감당해야 할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구글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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