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美 우선주의'? 결국은 '트럼프 중심주의'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트럼프가 관세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하면서 이를 전가의 보도처럼 막 휘둘러 여러 나라와 관계를 악화시키고 세계 경제에 충격파를 보내고 있다. 그는 자기가 세계 분쟁 8건을 종결시켰고 곧 러·우 전쟁까지 종식하겠다 한다. 그는 자신을 ‘평화의 사도(Peace- maker)’로 자임하며 노벨 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 여긴다. 그는 돌출적인 대외정책을 ‘미국 우선주의’라고 표방하면서 막 밀어붙이고 있다. 그런데 미국 대외정책들을 자세히 뜯어보면 서로 모순되는 면도 많고 미국의 장기적 국익에 도움이 될지 의문스러운 구석도 많다. 그래서 그의 대외정책을 ‘미국 우선주의’라는 잣대로 분석했을 때 이해가 잘 안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미국 우선주의’ 대신 ‘트럼프 중심주의’라는 잣대로 대외정책을 분석하면 어긋나는 정책들이 잘 이해가 된다는 냉소적인 평가도 있다.

트럼프는 관세 압박으로 한국, 일본과 좋은 협상을 이루었고 중국과도 고관세를 유예하는 방식으로 일단 상황을 봉합하였다고 주장한다. 겉으로는 미국의 승리처럼 보인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을 포함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초기에는 나름대로 특정 목적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들이 있었다. 첫째, 관세 부과를 통하여 미국이 당면한 쌍둥이 적자, 즉,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해소하려 한다고 보였다. 그러나 관세를 통하여 미국의 재정수입은 늘어나겠지만 미국의 인플레가 심화하고 경기가 둔화하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재정적자 축소가 목적이라면 미국의 억만장자와 대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더 거둬들이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오히려 부자 감세법인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OBBA)’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법을 통과시켜 세금 수입을 줄이는 조치를 취했다. 그의 정책 목적이 재정적자 축소라면 이와 상충되는 조치를 한 것이다.

둘째, 중국을 견제하여 미국 패권을 유지하는 게 목적이라는 분석이 있지만 트럼프는 중국과 협상에서 계속 정면 대결을 피하고 모종의 타협을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 앞에만 서면 계속 물러선다는 표현의 영어 약자인 ‘TACO’라는 오명을 달고 있다. 대신 미국의 동맹국과 우방국에게 아주 가혹한 거래적, 약탈적 교역체계를 강요하여 미국의 대중 견제 전선에 균열을 초래하고 있다. 미국의 동맹, 우방국들이 당장은 미국의 위세에 눌려 울며 겨자 먹기로 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에서 오는 리스크를 회피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하려 할 것이다. 또한 미국과 거리를 어느 정도 두려 할 것인데 이러면 중국 견제는커녕 미국의 고립만 심화될 것이다.

셋째, 미국의 제조업 부흥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으나 수십년에 걸쳐 이루어진 미국 제조업의 기반 붕괴를 남은 3년 임기 내에 이루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미국이 외국 공장의 미국 내 이전을 강요해도 미국 자체 숙련공과 부품생산 인프라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제조업 부흥은 요원한 일이다. 외국기업도 이를 알고 수출용 제품에 대한 관세 회피를 위해 미국 내 공장은 짓더라도 공정의 자동화, 로봇화를 통해 관세만 우회하려 할 것이다. 미국이 중국의 제조업에 대항할 만한 정도로 산업경쟁력을 되살리는 일은 연목구어가 될 것이다.

넷째, 각종 분쟁해결 노력에서도 트럼프는 분쟁의 근본원인을 짚어가며 분쟁이 재발되지 않도록 그 뿌리를 제거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보다 양쪽에 압력을 가하여 분쟁을 단기간 봉합하는 데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분쟁이 종식되는 듯 보이다가 조만간 재발하더라도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리고 분쟁의 해결방식이 장기적으로 미국 국익과 전략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별 고려가 없어 보인다.

다섯째, 트럼프 정부는 가상화폐와 스테이블 코인을 장려하고 앞으로 이를 통해 미국 재정의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 가상화폐들이 힘을 얻기 시작하면 미국의 달러 가치는 계속 하락할 것이다. 그러면 미국의 패권적 지위는 정말 솜털처럼 가벼워질 것이다. 지금 국제 금값의 급격한 상승은 이미 달러에 대한 신뢰가 약해졌다는 시장의 신호로 읽힌다. 달러 지위가 약해지면 미국은 패권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미국 우선주의'로 해석되지 않는 상호모순적인 정책들이 왜 동시다발로 진행되는지를 따지다 보면 이 모든 정책이 한 지점을 향해 수렴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트럼프 자신과 그 일족들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모아져 있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일족은 이런 상황을 틈타 트럼프 코인을 만들고 트럼프 얼굴이 새겨진 투자이민을 위한 소위 '골드카드'를 내놓고 있다. 또한 각종 트럼프 브랜드 상품 출시에다 심지어 인종 청소가 발생한 비극의 가자지구에 리조트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광산이나 다른 나라의 각종 개발권을 확보하고 여기에 트럼프 일족이 지분참여를 하고 있다. 부자 감세법은 이렇게 해서 엄청난 돈을 번 자신의 일족의 조세 부담을 덜어주게 된다. 그리고 각종 분쟁해결에 관여한 보상으로 그는 노벨 평화상까지 받으려 한다. 결국 모든 정책의 초점이 트럼프 본인과 일족의 부귀영화에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외정책 결정과정을 분석하는 데 있어 여러 학설이 존재하고 그중에서 대통령의 성격이 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방법론이 있다. <대통령의 성격>이라는 책을 펴낸 미국의 제임스 바버 교수는 '긍정적-부정적' 성향과 '적극적-소극적' 성향이라는 두 세트의 판별기준으로 대통령의 성격 분석틀을 만들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닉슨을 좋아하고 닮기를 원하는 트럼프는 닉슨과 마찬가지로 '적극적-부정적' 타입으로 분류된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자신이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 적극적 행동을 하지만 그들의 동기는 세상을 좋게 변화시키려는 비전보다는 현재 상태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에 기반한다고 본다. 이런 유형의 지도자들이 자신 이익을 중심으로 상당히 즉흥적이고 위험한 리더십을 보이게 된다고 한다. 게다가 트럼프는 '자기도취적 성향'까지 가지고 있어 더욱 자신을 뽐내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를 간파한 각국 지도자들은 트럼프의 공명심과 이익에 부합하는 찬사와 선물을 내주면서 역으로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 이후 재집권하게 되면서 지난 4년 동안 더 많이 내공이 단단해지고 주변 참모들도 더 센 팀으로 구성하여 돌아왔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래서 중국에 제대로 대적하며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 것이란 기대가 처음에는 존재하였다. 지금 보면 트럼프의 실력이 더 나아진 것도 없고 나이가 들면서 자기 확신과 자기 공명심만 더 높아져 돌아왔다. 주변에도 제대로 된 조언을 해줄 참모도 없고 내각도 모두 예스맨들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을 위대하게 재건함으로써 중국을 굴복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미·중 갈등의 틈바구니에 낀 다른 나라들은 정말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며, 일본은 돌아온다'라는 광복 직후 길거리 노랫말이 현실이 되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정말 각 나라는 자기 살길을 알아서 찾아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중심주의가 세상을 아주 불안한 방식으로 바꿀 것 같고 미국의 쇠락을 촉진할 것 같다는 느낌이다. 우리도 한·미동맹이 중요하지만 한 바구니에 모든 계란을 담아두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기에 냉철한 판단과 행동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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