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대 금품 수수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졌던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장정석 전 단장과 김종국 전 감독이 최종 무죄를 확정받았다. 검찰은 광고계약 편의를 대가로 돈을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금전의 실질을 ‘후원금 또는 격려금’으로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형사상 배임수재죄 성립 요건인 ‘직무 관련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돈은 있었지만 청탁은 없었다”
사건의 핵심은 외식업체 대표 김모 씨가 장 전 단장과 김 전 감독에게 각각 돈을 건넨 사실이다. 금액은 총 1억 원. 검찰은 이를 광고계약 편의를 대가로 한 ‘배임수재’로 봤다. 그러나 법원은 달리 봤다.
1심과 2심 모두 “김씨가 지급한 돈은 기아 구단 후원자로서 격려 차원에서 건넨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광고 계약이나 선수 유니폼 견장 협찬 과정에서 실제 부당한 이익이 제공됐다는 증거가 없었고, 금품 전달 과정에서도 ‘특정 계약을 청탁하는 명시적 발언이나 합의’가 없었다는 것이다.
즉, “돈이 오갔다”는 사실만으로 ‘청탁’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결론이었다. 형사법상 배임수재죄가 성립하려면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 명확히 입증돼야 하지만, 단순한 금전 수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원칙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후원과 청탁 사이, 법원이 본 ‘의도’의 문제
2심 재판부는 특히 김씨의 행위가 “청탁보다는 팬심 또는 후원자로서의 격려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김씨는 과거에도 구단 행사에 참여하거나 광고 협찬을 해온 인물이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재판부는 “장 전 단장과 김 전 감독이 받은 돈이 구단 운영이나 선수단 관리와 관련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다만 판결문은 “도덕적·사회적 정당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청탁이 아니라 하더라도, 직무 관련자에게 금품을 받는 행위가 윤리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형사재판은 ‘도의’가 아닌 ‘법리’로 판단한다. 형법상 ‘청탁의 합의’가 입증되지 않은 이상 무죄라는 논리다.
장 전 단장은 별도로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앞둔 포수 박동원(현 LG 트윈스)에게 “최소 12억 원의 계약금을 받게 해주겠다”며 2억 원을 요구했다는 혐의(배임수재 미수)도 받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장 전 단장이 금전 요구를 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를 ‘청탁을 전제로 한 금품 요구’로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두 사람의 대화 녹취록을 근거로, “장 전 단장이 실제 계약 조건을 조작하거나 구단 내부 결정을 좌우할 권한을 행사하려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이 본 관건은 “직무상 권한을 이용해 타인에게 이익을 약속하거나 요구했는가”였다. 단순히 구단 협상 과정에서의 언급이나 개인적 기대 수준의 대화는 배임수재 미수로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스포츠 금전 수수’의 경계
검찰은 항소와 상고를 통해 “돈의 규모와 전달 시점, 경위로 볼 때 명백한 청탁 관계”라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흥구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대법원 3부는 지난달 상고를 기각하면서 “원심의 사실인정과 법리 적용에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결국 장정석 전 단장과 김종국 전 감독, 그리고 돈을 건넨 김씨 모두 무죄가 확정됐다.
이번 사건은 프로스포츠 단체의 금전 수수에 대한 형사적 판단 기준을 명확히 보여준 사례다.
스포츠계에서 ‘후원’과 ‘청탁’의 경계는 늘 모호하지만, 법원은 대가성·직무관련성이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는 한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법조계에서는 “금전 수수가 있었더라도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면 형사책임은 별개”라며 “다만 윤리 규정상 징계나 제재의 문제는 별도로 남는다”고 지적한다.
이번 무죄 확정은 ‘후원자의 격려금’을 형사범죄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법리적 판단과 함께, 프로스포츠 조직이 스스로 투명한 후원·광고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을 다시 부각시킨 판결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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